조선의 사대부들은 명산을 찾아 유람을 즐겼다. 이들은 산수 유람을 통해 안목을 넓히고 浩然之氣를 기르고자 하였다. 이런 유람의 목적은 時流와 상황에 따라 遊樂의 성향이 강조되기도 하...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T15168959
순천: 순천대학교 대학원, 2019
2019
한국어
526 판사항(5)
전라남도
p; 26cm
참고문헌 : p.
I804:46008-000000009466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조선의 사대부들은 명산을 찾아 유람을 즐겼다. 이들은 산수 유람을 통해 안목을 넓히고 浩然之氣를 기르고자 하였다. 이런 유람의 목적은 時流와 상황에 따라 遊樂의 성향이 강조되기도 하...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산을 찾아 유람을 즐겼다. 이들은 산수 유람을 통해 안목을 넓히고 浩然之氣를 기르고자 하였다. 이런 유람의 목적은 時流와 상황에 따라 遊樂의 성향이 강조되기도 하고, 修身이나 省察을 중시하는 경향을 띠기도 하였다.
그 목적이 어디에 있건 산수 유람은 사대부라는 특권층의 문화였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가면서 차츰 일반 대중이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黨爭 등의 정치적 요소와 상업의 발달이라는 경제적 요소가 맞물린 것이 그 원인이었다.
士禍와 朋黨, 換局에 이은 세도정치로 인해 중앙 정계로의 진출이 차단된 지방의 士族들이 유람을 하면서 유람계층이 확대되었다. 또한 시장의 발달로 교통 요지마다 주막이 들어서자 숙식처가 늘어났으며 화폐의 유통으로 장거리 여행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원인은 결국 유람인구의 증가로 歸着되었다. 그러나 향유 계층이 확대되고 유람인구가 증가 할수록 산수 유람의 본 취지는 퇴색되고 勝景 玩賞이나 遊樂의 성향이 강해졌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즐기는 대중문화로 정착될 때는 관광과 오락의 목적만 남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문화가 유입되거나 생성되어 일부 계층이 향유하다가 대중문화로 정착될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멀게는 踏靑이나 登高 등의 풍속과 오늘 날의 성탄절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유람은 觀光이라는 단어로, 현대에는 여행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어 어휘조차 실생활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산수 유람이 가진 학습적 성향의 여행은 답사와 체험학습 등의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