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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淸나라 시기 方東樹(1772~1851)의 시각을 통해 본 중국 郡望制度의 한 성격 = Fangdongshu’s Viewpoint on the Chinese Choronym System in the Qi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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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paper focuses on the “Chinese Choronym System”(Chün-wangzhidu) during the Qing dynasty through Fangdongshu(1772~1851) and his family. During Fangdongshu's period, there was no social meaning of the Chinese Choronym System. The people of that time did not use Choronyms to reveal their lineage, and they also did not try to distinguish their own lineage from other lineages by using the Choronym. The people of Fangdongshu's period used their Choronyms only in folk customs, such as genealogies and marriage documents.
    In his article, Fangdongshu explained the reasons the people did not know their own Choronyms. According to him, China had experienced many social transformations and book declines in their history, so there was no long history lineage in Chinese society, and many people did not know what the Choronym was. Through the explanation of Fangdongshu, we can recognize that there were many other lineages among one Choronym in the Qing dynasty. And such a lineage system of the Qing dynasty is clearly different from the lineage system before the late T’ang dynasty and the lineage system of the Chosŏn dynasty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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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focuses on the “Chinese Choronym System”(Chün-wangzhidu) during the Qing dynasty through Fangdongshu(1772~1851) and his family. During Fangdongshu's period, there was no social meaning of the Chinese Choronym System. The people of that...

    This paper focuses on the “Chinese Choronym System”(Chün-wangzhidu) during the Qing dynasty through Fangdongshu(1772~1851) and his family. During Fangdongshu's period, there was no social meaning of the Chinese Choronym System. The people of that time did not use Choronyms to reveal their lineage, and they also did not try to distinguish their own lineage from other lineages by using the Choronym. The people of Fangdongshu's period used their Choronyms only in folk customs, such as genealogies and marriage documents.
    In his article, Fangdongshu explained the reasons the people did not know their own Choronyms. According to him, China had experienced many social transformations and book declines in their history, so there was no long history lineage in Chinese society, and many people did not know what the Choronym was. Through the explanation of Fangdongshu, we can recognize that there were many other lineages among one Choronym in the Qing dynasty. And such a lineage system of the Qing dynasty is clearly different from the lineage system before the late T’ang dynasty and the lineage system of the Chosŏn dynasty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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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淸나라 시기에 활동하였던 方東樹(1772~1851)라는 인물을 통하여 淸나라 사회에서 郡望制度가 차지하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方東樹가 살던 시대에는 郡望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된 氏族을 밝힐 때에도 郡望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또 郡望을 통하여 서로의 氏族을 구별하려 하지도 않았다. 方東樹가 살던 시대의 郡望은 그저 族譜에서 간단히 기록되는 수준이거나 또는 婚姻 문서를 작성하는 것과 같은 민간 풍습에서 형식적으로 언급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심지어 자신들의 郡望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氏族도 많이 있었다.
    그 이유는 중국 역사상 郡望이라는 것이 魏晉南北朝 시대부터 唐나라 시기까지 크게 성행하다가 宋나라 시기에 들어서는 사실상 그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明나라 시기 楊愼은 “(지금 남아 있는) 姓氏書들을 살펴보면 姓氏와 함께 郡望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郡望이라는 것은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 된다”라고 하였고, 淸나라 시대의 錢大昕은 “(宋나라에 들어서면서 郡望이 사실상 그 자취를 감추게 되어) 현재 중국인들은 郡望이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온 지가 이미 5백년 내지 6백년이 되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郡望에 대한 方東樹의 견해도 楊愼이나 錢大昕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중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의 ‘世變’을 겪어야만 했으며 또 이러한 ‘世變’을 거치는 동안 가계 기록이 사라지는 ‘書失’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世變’과 ‘書失’을 거치면서 중국 사회에는 더 이상 ‘千年可徵之氏族’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 천년 이전에 생겨난 郡望을 논한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라고 方東樹는 생각하였다.
    아울러, 方東樹가 살았던 桐城 지역의 方氏들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淸나라 사회에서는 동일한 姓氏와 동일한 郡望을 칭하더라도 별도의 氏族으로 존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唐나라 말기 이전의 중국 사회에 존재하던 氏族의 모습 그리고 淸나라 사회와 동일한 시기에 있었던 한국 사회에 존재하던 氏族의 모습과는 그 존재 형태부터가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方東樹가 자기 집안의 郡望을 논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던 이유나 자기 집안을 河南方氏의 支派가 아닌 魯谼方氏라 칭하였던 이유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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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淸나라 시기에 활동하였던 方東樹(1772~1851)라는 인물을 통하여 淸나라 사회에서 郡望制度가 차지하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方東樹가 살던 시대에는 郡望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의...

    본고는 淸나라 시기에 활동하였던 方東樹(1772~1851)라는 인물을 통하여 淸나라 사회에서 郡望制度가 차지하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方東樹가 살던 시대에는 郡望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된 氏族을 밝힐 때에도 郡望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또 郡望을 통하여 서로의 氏族을 구별하려 하지도 않았다. 方東樹가 살던 시대의 郡望은 그저 族譜에서 간단히 기록되는 수준이거나 또는 婚姻 문서를 작성하는 것과 같은 민간 풍습에서 형식적으로 언급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심지어 자신들의 郡望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氏族도 많이 있었다.
    그 이유는 중국 역사상 郡望이라는 것이 魏晉南北朝 시대부터 唐나라 시기까지 크게 성행하다가 宋나라 시기에 들어서는 사실상 그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明나라 시기 楊愼은 “(지금 남아 있는) 姓氏書들을 살펴보면 姓氏와 함께 郡望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郡望이라는 것은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 된다”라고 하였고, 淸나라 시대의 錢大昕은 “(宋나라에 들어서면서 郡望이 사실상 그 자취를 감추게 되어) 현재 중국인들은 郡望이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온 지가 이미 5백년 내지 6백년이 되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郡望에 대한 方東樹의 견해도 楊愼이나 錢大昕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중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의 ‘世變’을 겪어야만 했으며 또 이러한 ‘世變’을 거치는 동안 가계 기록이 사라지는 ‘書失’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世變’과 ‘書失’을 거치면서 중국 사회에는 더 이상 ‘千年可徵之氏族’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 천년 이전에 생겨난 郡望을 논한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라고 方東樹는 생각하였다.
    아울러, 方東樹가 살았던 桐城 지역의 方氏들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淸나라 사회에서는 동일한 姓氏와 동일한 郡望을 칭하더라도 별도의 氏族으로 존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唐나라 말기 이전의 중국 사회에 존재하던 氏族의 모습 그리고 淸나라 사회와 동일한 시기에 있었던 한국 사회에 존재하던 氏族의 모습과는 그 존재 형태부터가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方東樹가 자기 집안의 郡望을 논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던 이유나 자기 집안을 河南方氏의 支派가 아닌 魯谼方氏라 칭하였던 이유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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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歷史事典" 平凡社

    2 안광호, "현대 漢字語 辭典에 나오는 ‘郡望’의 의미 검토" 동양학연구원 (67) : 21-45, 2017

    3 이수건, "한국의 성씨와 족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4 안광호, "전통기 韓·中 姓氏制度를 바라보는 두 知識人의 시각- 宋나라 시대 鄭樵와 朝鮮 시대 柳馨遠을 중심으로 -" 한국사학회 (113) : 125-166, 2014

    5 宮崎市定, "구품관인법의 연구" 소나무 2002

    6 方金友, "魯谼方氏族譜的歷史社會學解讀" (6) : 2013

    7 唐長孺, "魏晉南北朝史論拾遺" 中華書局 2011

    8 岑仲勉, "隋唐史" 中華書局 1982

    9 최진열, "隋唐 本籍地封爵의 性格 ― 門閥·郡望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 중국고중세사학회 (20) : 377-430, 2008

    10 凌迪知, "萬姓統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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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광호, "현대 漢字語 辭典에 나오는 ‘郡望’의 의미 검토" 동양학연구원 (67) : 21-45, 2017

    3 이수건, "한국의 성씨와 족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4 안광호, "전통기 韓·中 姓氏制度를 바라보는 두 知識人의 시각- 宋나라 시대 鄭樵와 朝鮮 시대 柳馨遠을 중심으로 -" 한국사학회 (113) : 125-166, 2014

    5 宮崎市定, "구품관인법의 연구" 소나무 2002

    6 方金友, "魯谼方氏族譜的歷史社會學解讀" (6) : 2013

    7 唐長孺, "魏晉南北朝史論拾遺" 中華書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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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최진열, "隋唐 本籍地封爵의 性格 ― 門閥·郡望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 중국고중세사학회 (20) : 377-4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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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積溪城南方氏宗譜"

    12 "祁門方氏宗譜"

    13 "祁門方氏宗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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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漢語大詞典" 上海辭書出版社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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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桐城魯谼方氏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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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桐城桂林方氏族譜"

    21 金衛國, "桐城桂林方氏家族與明淸政治及文化硏究" 中國南開大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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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池田溫, "唐代の郡望表(上)-九ㆍ十世紀の敦煌寫本を中心として-" 42 (4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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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馮爾康, "中國宗族制度與譜牒編纂" 天津古籍出版社 2011

    54 谷川道雄, "中國中世社會と共同體" 國書刊行會 1976

    55 王力平, "中古杜氏家族的變遷" 商務印書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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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David G. Johnson, "The Last Years of A Great Clan:The Li Family of Chao Chün in Late T'ang and Early Sung" 37 (37):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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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Charles O. Hucker, "China's Impeial Past" Stanford Univ. Press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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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章群, "(中華叢書)唐代硏究論集" 中國唐代學會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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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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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76 1.76 1.3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7 0.99 1.779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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