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金昌業의 明末淸初 戰爭 記憶 = Kim ChangUp’s memory of the war during the end of Ming and the beginning of Qing Dynasty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3685662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While NaoKaJai Kim ChangUp was traveling to China during the Ming and Qing dynasties , he saw the prosperity of the Kang Xi Period by his own eyes and had been left a deep impression. It was a great chance for him to abandon the dated ideas of Ming dynasty , as well as to form a sound view towards China in Qing Dynasty based on the reality.
      During the war betwee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NaoKaJai realized that the Qing dynasty, especially the area out of Shanhai Pass was still in a mess. What was more, the contradiction between Manchu and the Han nationality had become a threat of the society. He knew that the collapse of the Ming Dynasty and the prosperity of the Qing Dynasty was inevitable. However, he had never analyzed how it came into being .By writing down just his own experience, he made many readers feel as if they were there.
      NaoKaJai traveled to China 30 years before the Kangxi Emperor unified the country. Therefore the loyalty and revolt of Wu Sangui was still a sensitive political issue at that time. However NaoKaJai was deeply concerned about it and made an objective evaluation as well. The failure of Wu made the Korean royal government and many scholars recognize the irreversiblility of history and the inevitability of the Ming dynasty’s prosperity, so that they decided to give up some old theories and began to face the reality. It laid the foundation for the future of the Practical Science.
      번역하기

      While NaoKaJai Kim ChangUp was traveling to China during the Ming and Qing dynasties , he saw the prosperity of the Kang Xi Period by his own eyes and had been left a deep impression. It was a great chance for him to abandon the dated ideas of Ming dy...

      While NaoKaJai Kim ChangUp was traveling to China during the Ming and Qing dynasties , he saw the prosperity of the Kang Xi Period by his own eyes and had been left a deep impression. It was a great chance for him to abandon the dated ideas of Ming dynasty , as well as to form a sound view towards China in Qing Dynasty based on the reality.
      During the war betwee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NaoKaJai realized that the Qing dynasty, especially the area out of Shanhai Pass was still in a mess. What was more, the contradiction between Manchu and the Han nationality had become a threat of the society. He knew that the collapse of the Ming Dynasty and the prosperity of the Qing Dynasty was inevitable. However, he had never analyzed how it came into being .By writing down just his own experience, he made many readers feel as if they were there.
      NaoKaJai traveled to China 30 years before the Kangxi Emperor unified the country. Therefore the loyalty and revolt of Wu Sangui was still a sensitive political issue at that time. However NaoKaJai was deeply concerned about it and made an objective evaluation as well. The failure of Wu made the Korean royal government and many scholars recognize the irreversiblility of history and the inevitability of the Ming dynasty’s prosperity, so that they decided to give up some old theories and began to face the reality. It laid the foundation for the future of the Practical Science.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노가재 김창업은 연행을 통해 명청환대기의 역사적 현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전환을 확인하고 강희 성세의 번영상에도 큰 충격을 받아, 기존의 대명의리론을 파기하고 현실을 직시한 새로운 대청관을 형성하였다.
      노가재는 명·청 교체기 청나라가 전쟁의 폐허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였고 만인, 한인 간의 모순도 사회 안정의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는 명나라 멸망의 불가피성과 청나라의 강성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역사의 대전환이라는 것을 몸소 직감하고 있지만 이러한 전환의 심층적 원인 규명보다 구체적 현상과 사례의 진술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노가재의 연행은 강희제가 강력하게 추진한 중국대통일이 완성된 지 불과 30여년밖에 안된 시기였다. 그래서 강희제에게 반란자로 각인된 오삼계란 현실적인 인물에 대한 정치적 내지 역사적 평가를 제기한 것은 민감한 정치과제가 되었다. 청나라의 문인학자와 사가들이 문자옥을 의식해 가능한 한 피하려는 화제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개 포의로서의 노가재는 이 문제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오삼계에 대한 평가를 역사적 사실 문헌 자료와 현장에서 확인한 자료를 토대로 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오삼계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이것을 명청 환대기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대의명분론적인 대명관을 청산하고 새로운 대청관을 수립하는 계기로 삼기도 하였다. 노가재의 이와같은 현실을 直視한 새로운 대청관의 형성은 그때 당시 뿐만 아니라, 후세의 북학파와 같은 실학자들의 대청 의식과 주장의 출현에 先驅的 역할과 중요한 啓示가 되었다.
      번역하기

      노가재 김창업은 연행을 통해 명청환대기의 역사적 현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전환을 확인하고 강희 성세의 번영상에도 큰 충격을 받아, 기존의 대명의리론을 파기하고 현실을 직시...

      노가재 김창업은 연행을 통해 명청환대기의 역사적 현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전환을 확인하고 강희 성세의 번영상에도 큰 충격을 받아, 기존의 대명의리론을 파기하고 현실을 직시한 새로운 대청관을 형성하였다.
      노가재는 명·청 교체기 청나라가 전쟁의 폐허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였고 만인, 한인 간의 모순도 사회 안정의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는 명나라 멸망의 불가피성과 청나라의 강성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역사의 대전환이라는 것을 몸소 직감하고 있지만 이러한 전환의 심층적 원인 규명보다 구체적 현상과 사례의 진술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노가재의 연행은 강희제가 강력하게 추진한 중국대통일이 완성된 지 불과 30여년밖에 안된 시기였다. 그래서 강희제에게 반란자로 각인된 오삼계란 현실적인 인물에 대한 정치적 내지 역사적 평가를 제기한 것은 민감한 정치과제가 되었다. 청나라의 문인학자와 사가들이 문자옥을 의식해 가능한 한 피하려는 화제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개 포의로서의 노가재는 이 문제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오삼계에 대한 평가를 역사적 사실 문헌 자료와 현장에서 확인한 자료를 토대로 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오삼계론’을 제기하였다. 그는 이것을 명청 환대기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대의명분론적인 대명관을 청산하고 새로운 대청관을 수립하는 계기로 삼기도 하였다. 노가재의 이와같은 현실을 直視한 새로운 대청관의 형성은 그때 당시 뿐만 아니라, 후세의 북학파와 같은 실학자들의 대청 의식과 주장의 출현에 先驅的 역할과 중요한 啓示가 되었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老稼齋集"

      2 전미자, "金昌業『燕行日記』中的中國形象" 29 : 2002

      3 정혜중, "조선 선비의 청국 수도 北京見聞―김창업의 『稼齋燕行錄』을 중심으로―" 명청사학회 (23) : 33-66, 2005

      4 김태준, "연행록의 교과서 『노가재연행일기』" (창간) : 2003

      5 朴智鮮, "김창업의 『노가제연행일기』연구" 高麗大學校 大學院 1996

      6 李君善, "金昌業 [燕行日記]의 敍述視角과 手法에 대한 고찰" 성균관대학교 1997

      7 "燕行錄에 나타난 ‘幻術’과 ‘演劇’硏究"

      8 "燕行壎篪錄"

      9 조성을, "朝鮮後期 韓國과 中國의 相互 認識-肅宗末?英祖初 兩國의 使行記錄을 中心으로-" 한국사상사학회 27 : 1-25, 2006

      10 위홍, "『노가재연행일기』 연구 : 대청의식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2011

      1 "老稼齋集"

      2 전미자, "金昌業『燕行日記』中的中國形象" 29 : 2002

      3 정혜중, "조선 선비의 청국 수도 北京見聞―김창업의 『稼齋燕行錄』을 중심으로―" 명청사학회 (23) : 33-66, 2005

      4 김태준, "연행록의 교과서 『노가재연행일기』" (창간) : 2003

      5 朴智鮮, "김창업의 『노가제연행일기』연구" 高麗大學校 大學院 1996

      6 李君善, "金昌業 [燕行日記]의 敍述視角과 手法에 대한 고찰" 성균관대학교 1997

      7 "燕行錄에 나타난 ‘幻術’과 ‘演劇’硏究"

      8 "燕行壎篪錄"

      9 조성을, "朝鮮後期 韓國과 中國의 相互 認識-肅宗末?英祖初 兩國의 使行記錄을 中心으로-" 한국사상사학회 27 : 1-25, 2006

      10 위홍, "『노가재연행일기』 연구 : 대청의식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2011

      11 유재임, "『노가재연행』에 나타난 대청의식 연구" 충남대학교 2001

      12 김아리, "「老稼齋燕行日記」 硏究" 서울대학교 1999

      13 전혜숙, "<燕行日記>의 服飾觀을 통해 본 對淸認識- 金昌業의 <燕行日記>를 중심으로 -" 한복문화학회 7 (7): 113-124, 2004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6 0.36 0.3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37 0.36 0.746 0.11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