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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9년 왕전王倎-쿠빌라이 만남의 의미 = The Significance of the Meeting of Wang Jeon and Qubilai in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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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7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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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this paper, the significance of the meeting of Wang Jeon, the crown prince of Goryeo, and Qubilai in 1259 was investigated, and how Goryeo government created memories of this and how it used them for the diplomacy with Mongol was examined. First, Wang Jeon’s route was restored, and the possibility that he had intentionally visited Qubilai was raised. In addition, it was assumed that he had been able to meet Qubilai because he had visited Bianliang early enough and been waiting for him. Wang Jeon may have decided to visit Qubilai after he had enquired about the situation of Mongol since Möngke Qa’an’s death. Qubilai had been ruling wisely in his enfeoffed land, jingzhao, and admired by residents a lot. In particular, many Confucians placed high expectations on him as a Chinese monarch who protected Han people and Confucianism. Wang Jeon seems to have selected Qubilai as the one for submission in order to establish Chinese peaceful relations with Mongol. The administration of Goryeo achieved significant diplomatic results by creating new memories of the meeting and using it actively for the diplomacy with Mongol. Therefore, it can be evaluated as an example of Goryeo’s active and successful diplomatic activity regarding Mo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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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is paper, the significance of the meeting of Wang Jeon, the crown prince of Goryeo, and Qubilai in 1259 was investigated, and how Goryeo government created memories of this and how it used them for the diplomacy with Mongol...

      In this paper, the significance of the meeting of Wang Jeon, the crown prince of Goryeo, and Qubilai in 1259 was investigated, and how Goryeo government created memories of this and how it used them for the diplomacy with Mongol was examined. First, Wang Jeon’s route was restored, and the possibility that he had intentionally visited Qubilai was raised. In addition, it was assumed that he had been able to meet Qubilai because he had visited Bianliang early enough and been waiting for him. Wang Jeon may have decided to visit Qubilai after he had enquired about the situation of Mongol since Möngke Qa’an’s death. Qubilai had been ruling wisely in his enfeoffed land, jingzhao, and admired by residents a lot. In particular, many Confucians placed high expectations on him as a Chinese monarch who protected Han people and Confucianism. Wang Jeon seems to have selected Qubilai as the one for submission in order to establish Chinese peaceful relations with Mongol. The administration of Goryeo achieved significant diplomatic results by creating new memories of the meeting and using it actively for the diplomacy with Mongol. Therefore, it can be evaluated as an example of Goryeo’s active and successful diplomatic activity regarding Mo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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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1259년 고려 태자 왕전과 쿠빌라이 만남의 배경・양상을 고찰하여 그 의의를 규명하고고려가 이에 관한 기억을 생산하여 대몽 외교에 활용하는 모습을 조명했다. 우선 왕전의 사행로를복원하여 그가 연경에서 동관으로 통하는 직행로를 밟고, 귀환할 때 변량을 지나는 새로운 길을택하여 쿠빌라이를 방문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한 그가 일찌감치 변량에 가서 악주에서 빠르게 북상하던 쿠빌라이를 기다려 만남이 성사되었다고 추정했다. 왕전의 쿠빌라이 방문은 뭉케 사망 후 몽골의 정세에 관해 탐문하고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뭉케 시기 쿠빌라이는 경조를 분봉지로 받아 측근 막료를 파견하여 선정을 베풀어 사대부・백성으로부터 크게 칭송받았다. 왕전도 탐문과정에서 한인・유학을 보호하는 쿠빌라이에게 큰 매력을 느끼고, 몽골과 중국적 세계질서에 입각한 화평관계를 맺기 위해 그를 귀부의 대상으로 선택했다고 보인다. 고려는 그 만남에 관해 몇가지 새로운 기억을 생산하여 대몽 외교에 적극 활용했다. 몽골도 오래도록 그 만남의 의미를 높이평가했으므로 그러한 고려의 외교활동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 기억을 앞세운 외교활동을 통해 고려는 몇 가지 중요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따라서 그러한 기억의 생산・활용은 몽골에 대한 고려의 능동적・성공적 외교활동의 사례로 평가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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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1259년 고려 태자 왕전과 쿠빌라이 만남의 배경・양상을 고찰하여 그 의의를 규명하고고려가 이에 관한 기억을 생산하여 대몽 외교에 활용하는 모습을 조명했다. 우선 왕전의 사행로...

      본고는 1259년 고려 태자 왕전과 쿠빌라이 만남의 배경・양상을 고찰하여 그 의의를 규명하고고려가 이에 관한 기억을 생산하여 대몽 외교에 활용하는 모습을 조명했다. 우선 왕전의 사행로를복원하여 그가 연경에서 동관으로 통하는 직행로를 밟고, 귀환할 때 변량을 지나는 새로운 길을택하여 쿠빌라이를 방문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한 그가 일찌감치 변량에 가서 악주에서 빠르게 북상하던 쿠빌라이를 기다려 만남이 성사되었다고 추정했다. 왕전의 쿠빌라이 방문은 뭉케 사망 후 몽골의 정세에 관해 탐문하고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뭉케 시기 쿠빌라이는 경조를 분봉지로 받아 측근 막료를 파견하여 선정을 베풀어 사대부・백성으로부터 크게 칭송받았다. 왕전도 탐문과정에서 한인・유학을 보호하는 쿠빌라이에게 큰 매력을 느끼고, 몽골과 중국적 세계질서에 입각한 화평관계를 맺기 위해 그를 귀부의 대상으로 선택했다고 보인다. 고려는 그 만남에 관해 몇가지 새로운 기억을 생산하여 대몽 외교에 적극 활용했다. 몽골도 오래도록 그 만남의 의미를 높이평가했으므로 그러한 고려의 외교활동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 기억을 앞세운 외교활동을 통해 고려는 몇 가지 중요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따라서 그러한 기억의 생산・활용은 몽골에 대한 고려의 능동적・성공적 외교활동의 사례로 평가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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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라시드 앗 딘, "칸의 후예들" 사계절 2005

      2 김호동, "몽골제국과 고려"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3 고명수, "몽골의 ‘복속’ 인식과 蒙麗관계" 고려사학회 (55) : 43-79, 2014

      4 고명수, "김구의 대몽 외교활동에 관한 두 가지 문제" 전북사학회 (67) : 163-192, 2023

      5 이남희, "고려시대의 유교적 공공성(公共性) 시론: 인재선발과 교육을 중심으로" 원불교사상연구원 (65) : 51-79, 2015

      6 하정승, "고려시대 유학 교육과 여말선초 학맥의 형성" 동방한문학회 (82) : 167-200, 2020

      7 이개석, "고려-대원 관계 연구" 지식산업사 2013

      8 박찬수, "高麗後期 國學의 變遷"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10 : 1993

      9 金宗瑞, "高麗史節要" 亞細亞文化社 1981

      10 鄭麟趾, "高麗史" 亞細亞文化社 1975

      1 라시드 앗 딘, "칸의 후예들" 사계절 2005

      2 김호동, "몽골제국과 고려"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3 고명수, "몽골의 ‘복속’ 인식과 蒙麗관계" 고려사학회 (55) : 43-79, 2014

      4 고명수, "김구의 대몽 외교활동에 관한 두 가지 문제" 전북사학회 (67) : 163-192, 2023

      5 이남희, "고려시대의 유교적 공공성(公共性) 시론: 인재선발과 교육을 중심으로" 원불교사상연구원 (65) : 51-79, 2015

      6 하정승, "고려시대 유학 교육과 여말선초 학맥의 형성" 동방한문학회 (82) : 167-200, 2020

      7 이개석, "고려-대원 관계 연구" 지식산업사 2013

      8 박찬수, "高麗後期 國學의 變遷"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10 : 1993

      9 金宗瑞, "高麗史節要" 亞細亞文化社 1981

      10 鄭麟趾, "高麗史" 亞細亞文化社 1975

      11 張進德, "郝經集編年校箋" 人民文学出版社 2018

      12 黨寶海, "蒙元驛站交通硏究" 昆侖出版社 1996

      13 陳得芝, "蒙元史與中華多元文化論集" 上海古籍出版社 2013

      14 李齊賢, "益齋亂藁" 민족문화추진회 1988

      15 고명수, "潛邸시기 쿠빌라이의 漢地경영과 세력형성 -그의 漢化문제에 대한 재검토-" 한국몽골학회 (31) : 87-120, 2011

      16 徐居正, "東文選" 慶熙出版社 1970

      17 蕭啓慶, "忽必烈“潛邸舊侶”考" 大陸雜誌社 25 (25): 1962

      18 查洪德, "姚燧集" 人民文學出版社 2011

      19 周淸澍, "內陸亞洲歷史文化硏究:韓儒林先生紀念文集" 南京大學出版社 1996

      20 蘇天爵, "元朝名臣事略" 中華書局 1996

      21 蘇天爵, "元文類" 安徽大學出版社 2020

      22 陳得芝, "元史論叢 第1輯" 中國元史硏究會 1982

      23 宋濂, "元史" 中華書局 1976

      24 熊夢祥, "≪析津志・天下站名≫校釋" 三秦出版社 2018

      25 黙書民, "≪析津志・天下站名≫成文時間考" 中國社會科學院古代史硏究所 (3) : 2008

      26 Wang, Sixiang, "What Tang Taizong Could Not Do: The Korean Surrender of 1259 and the Imperial Tradition" Brill 104 : 2018

      27 李春圓, "1260年前後蒙麗關係轉折補論: 以高麗<與張學士書>爲線索" 南京大學元史硏究室 33 :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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