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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960-70년대 이천일대 재현자기再現磁器 장인 활동과 그 의미 = The activities and meaning of Master of reproduced Ceramic in the Icheon area in the 1960s and 19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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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73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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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After the Japanese occupation, the masters who produced porcelain were scattered all over the country, and factories were operated by Japanese in Joseon. The production of reproduced porcelain was reconstructed in the early to mid-1960s, when new ceramics activities began in Icheon and Yeoju, Gyeonggi-do, after the liberation and the Korean War. At this time, Yoo Geun-hyung and Ji Sun-taek came down and settled down in the Icheon area.
      They newly settled in Icheon after retiring from the Seongbuk-dong kiln and Daebang-dong kiln, which were operated in the late 1950s. After coming down to find a lacquer kiln located in Sugwang-ri, Icheon, they become enthusiastic about experimenting with reproduction. In addition to these people at the time, figures such as Shin Sang-ho, Jo So-su, and Bang Cheol-ju also came to Icheon for the sake of reproduction, but there are somewhat different parts in their roles and transmission methods, so it is necessary to distinguish their personalities and pay attentio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how the process of reproducing Korean ceramics and forming a new succession and restoration structure after the 1960s developed in the Icheon area and to organize its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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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 the Japanese occupation, the masters who produced porcelain were scattered all over the country, and factories were operated by Japanese in Joseon. The production of reproduced porcelain was reconstructed in the early to mid-1960s, ...

      After the Japanese occupation, the masters who produced porcelain were scattered all over the country, and factories were operated by Japanese in Joseon. The production of reproduced porcelain was reconstructed in the early to mid-1960s, when new ceramics activities began in Icheon and Yeoju, Gyeonggi-do, after the liberation and the Korean War. At this time, Yoo Geun-hyung and Ji Sun-taek came down and settled down in the Icheon area.
      They newly settled in Icheon after retiring from the Seongbuk-dong kiln and Daebang-dong kiln, which were operated in the late 1950s. After coming down to find a lacquer kiln located in Sugwang-ri, Icheon, they become enthusiastic about experimenting with reproduction. In addition to these people at the time, figures such as Shin Sang-ho, Jo So-su, and Bang Cheol-ju also came to Icheon for the sake of reproduction, but there are somewhat different parts in their roles and transmission methods, so it is necessary to distinguish their personalities and pay attentio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how the process of reproducing Korean ceramics and forming a new succession and restoration structure after the 1960s developed in the Icheon area and to organize its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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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 모여 작업을 재개한 재현자기 장인들이 1960년대를 기점으로그들의 활동무대를 이천으로 옮겨가게 된 배경 및 원인과 활동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이천일대에형성된 인・물적 인프라를 통하여 1960년대 이후 한국도자가 재현되고 새로운 계승과 복원구조를형성시키는 과정들이 당시 이천의 재현자기 장인들에 의하여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피고 그의미를 정리하는 것에 본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재현자기의 생산이 다시금 일정 틀을 갖추고 재건된 시점은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친 이후로, 경기도 이천과 여주 등지에서 새로운 요업활동이 시작되던 1960년대 초중반 무렵에 이르러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천일대에는 1950년대 후반 서울의한국조형문화연구소(성북동가마)와 한국미술품연구소(대방동가마) 등에서 근무하던 유근형, 지순택 등이 퇴직 후 내려와 자리를 잡는다. 이들이 여주나 광주가 아닌 이천에 정착한 이유는 이천수광리에 위치한 칠기가마의 존재 여부에 있었다. 특히 칠기가마의 구조는 자기가마와 동일하였다.
      따라서 대방동가마에서 나와 재현자기 작업을 지속하고자 했던 장인들에게는 바로 활용 가능한시설과 환경이 갖추어진 곳으로 제격이었다. 당시 이들 외에도 이천일대에는 재현자기 제작에 있어 주축이 되었던 많은 장인들이 모여 전통도자를 전승함에 있어 각기 다른 역할로 매진하였다. 실질적인 제작, 판로개척과 유통 등 각각의 역할은 조금씩 달랐으나 상호 이해관계 속에서 공생하며 재현자기 제작, 요장의 운영 그리고 기술 전파를 통한 계보 형성에 힘썼다. 특히 이들은 1980년대 이후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천 도예 역사의 일면을 형성하는데 초석이 되었다는 것에 있어매우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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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 모여 작업을 재개한 재현자기 장인들이 1960년대를 기점으로그들의 활동무대를 이천으로 옮겨가게 된 배경 및 원인과 활동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이천일대...

      본 연구는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 모여 작업을 재개한 재현자기 장인들이 1960년대를 기점으로그들의 활동무대를 이천으로 옮겨가게 된 배경 및 원인과 활동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이천일대에형성된 인・물적 인프라를 통하여 1960년대 이후 한국도자가 재현되고 새로운 계승과 복원구조를형성시키는 과정들이 당시 이천의 재현자기 장인들에 의하여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피고 그의미를 정리하는 것에 본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재현자기의 생산이 다시금 일정 틀을 갖추고 재건된 시점은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친 이후로, 경기도 이천과 여주 등지에서 새로운 요업활동이 시작되던 1960년대 초중반 무렵에 이르러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천일대에는 1950년대 후반 서울의한국조형문화연구소(성북동가마)와 한국미술품연구소(대방동가마) 등에서 근무하던 유근형, 지순택 등이 퇴직 후 내려와 자리를 잡는다. 이들이 여주나 광주가 아닌 이천에 정착한 이유는 이천수광리에 위치한 칠기가마의 존재 여부에 있었다. 특히 칠기가마의 구조는 자기가마와 동일하였다.
      따라서 대방동가마에서 나와 재현자기 작업을 지속하고자 했던 장인들에게는 바로 활용 가능한시설과 환경이 갖추어진 곳으로 제격이었다. 당시 이들 외에도 이천일대에는 재현자기 제작에 있어 주축이 되었던 많은 장인들이 모여 전통도자를 전승함에 있어 각기 다른 역할로 매진하였다. 실질적인 제작, 판로개척과 유통 등 각각의 역할은 조금씩 달랐으나 상호 이해관계 속에서 공생하며 재현자기 제작, 요장의 운영 그리고 기술 전파를 통한 계보 형성에 힘썼다. 특히 이들은 1980년대 이후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천 도예 역사의 일면을 형성하는데 초석이 되었다는 것에 있어매우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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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경기도자박물관, "흑자: 익숙하고도 낯선, 오烏" 경기도자박물관 2022

      2 경기도자박물관, "한반도 근·현대도자의 향방" 경기도자박물관 2008

      3 방병선, "한국도자제작기술사" 아카넷 2020

      4 신상호, "한국도예"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1996

      5 신상호, "한국 현대도예 30년" 국립현대미술관 1994

      6 정규, "한국 現代 陶磁工藝 運動 序說" 경희대학교 (6) : 1969

      7 "조선일보"

      8 엄승희, "일제 강점 전반기 일본인의 고려청자 수집과 재조일본인의 재현청자 제작에 따른 상관성 연구" 한국도자학회 18 (18): 49-69, 2021

      9 이천시, "이천시지 6, 개인생활과 마을" 이천시 2001

      10 이천시지편찬위원회, "이천시지 2" 이천시 2001

      1 경기도자박물관, "흑자: 익숙하고도 낯선, 오烏" 경기도자박물관 2022

      2 경기도자박물관, "한반도 근·현대도자의 향방" 경기도자박물관 2008

      3 방병선, "한국도자제작기술사" 아카넷 2020

      4 신상호, "한국도예"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1996

      5 신상호, "한국 현대도예 30년" 국립현대미술관 1994

      6 정규, "한국 現代 陶磁工藝 運動 序說" 경희대학교 (6) : 1969

      7 "조선일보"

      8 엄승희, "일제 강점 전반기 일본인의 고려청자 수집과 재조일본인의 재현청자 제작에 따른 상관성 연구" 한국도자학회 18 (18): 49-69, 2021

      9 이천시, "이천시지 6, 개인생활과 마을" 이천시 2001

      10 이천시지편찬위원회, "이천시지 2" 이천시 2001

      11 이천시, "이천도자" 이천시 2006

      12 이천문화원, "이천군 향토문화자료 총람: 제1집 향토사·유적편" 이천문화원 1982

      13 이천문화원, "이천 아니면 가당키나 하나" 이천문화원 2018

      14 조용준, "이천 도자 이야기" 도도 2019

      15 한백문화재연구원, "이천 덕평리 유적: 덕평로지스밸리 개발사업 문화재 발굴조사 보고서" 한백문화재연구원 2014

      16 최공호,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연구" 한국대학박물관협회 (34) : 1986

      17 이천시지편찬위원회, "시민을 위한 이천시지 2" 이천시 2018

      18 정무정, "록펠러 재단의 문화사업과 한국미술계 (I)" 한국미술사교육학회 37 : 255-279, 2019

      19 "동아일보"

      20 "대한뉴스"

      21 경기도자박물관, "근대도자, 산업과 예술의 길에 서다" 경기도자박물관 2020

      22 엄승희, "근대도자, 산업과 예술의 길에 서다" 경기도자박물관 2020

      23 경기도자박물관, "경기도의 도자유적" 경기도자박물관 2008

      24 경기도자박물관, "경기근대도자 100년의 기록"

      25 경기도자박물관, "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 경기도자박물관 2014

      26 유근형, "高麗靑磁: 靑磁陶工海剛柳根瀅自敍傳" 오른사 1982

      27 桑原史成, "高麗·李朝現代陶磁撰" 毎日新聞社 1985

      28 송기쁨, "韓國 近代 陶磁 硏究" 미술사연구회 (15) : 2001

      29 지정희, "韓國 傳承陶磁의 現況"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10) : 1988

      30 방철주, "赫山 方徹柱" 서울문화사 2001

      31 淺川巧, "朝鮮陶磁名考" 朝鮮工藝刊行會 1931

      32 "朝鮮王朝實錄"

      33 朝鮮總督府, "朝鮮の窯業" 朝鮮總督府 1926

      34 利川大觀編纂委員會, "利川大觀" 利川大觀編纂委員會 1955

      35 강승민, "20세기 전반 조선총독부 정책이 조선미술전람회 도자 출품작에 미친 영향 연구" 고려대학교대학원 2022

      36 송윤영, "1970년대 한국 현대도자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0

      37 최용준, "1945년이후 1960년대 한국현대도자연구 :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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