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淸의 對러시아 政策의 起源, 1644~1676 = The Origins of Qing Diplomatic Policy toward Russia, 1644-1676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8934621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689년 체결된 네르친스크 조약은 향후 170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청과 러시아 관계의 초석을 놓았다. 네르친스크 조약에 임하는 청의 외교정책의 주요한 특징은 청이 러시아에 대해 유화책과 강경책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다는 점, 러시아에 대해 평등한 관계를 용인하고 있다는 점, 교역 등 경제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대신 변경의 안정을 확보하고자 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청의 이러한 외교정책은 만주족이 최초로 러시아를 접한 이래 러시아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대책을 모색한 결과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는 카자크병사들을 동원하여 흑룡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한편, 중국과의 교역을 확대하기 위해 통상사절을 파견했다. 청 조정은 변경을 위협하는 카자크 병사들을 러시아 황제의 통제를 받지 않는 비적으로 간주하고 토벌을 주로 하는 한편, 통상사절은 자발적으로 교화를 위해 찾아오는 조공국의 사신으로 간주했다.
      청은 1658년 전투에서 카자크 병사들에게 대승을 거두었지만, 청군이 철수한 후 러시아는 알바진을 수복하고 그 주위의 청측에 속했던 간티무르 수하의 원주민들을 러시아측에 귀속시켰다. 간티무르를 다시 청측으로 귀속시키려는 과정에서 알바진의 카자크 병사들이 러시아 황제의 명령을 따르는 러시아의 신민임을 깨닫게 된 청 조정은 기존의 대러시아 정책을 수정하게 된다. 청 조정은 1669년 이후 북경에 온 러시아 사절에 대해서 무역상의 혜택과 편의 및 선물 등 풍부한 경제적인 이익을 제공하고, 이들을 파격적으로 우대하는 의전을 수여하면서 간티무르 등 도망자를 중국으로 돌려보낼 것을 요청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인 방비를 강화했다. 1676년 북경에 도착한 러시아 황제의 사절을 통해 러시아가 간티무르를 송환할 의사가 없음을 간파한 청 조정은 유화책을 중지하고 전쟁을 통한 해결을 도모하게 된다.
      기존의 연구는 청이 러시아와 평등한 관계의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게 된 원인을 당시 갈단이 다스리는 준가르제국의 부상이란 국제정세에 기인한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본고는 네르친스크 조약에 임하는 청의 외교정책의 등장은 1669년경 청이 변경의 카자크병사와 러시아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한 시점까지 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번역하기

      1689년 체결된 네르친스크 조약은 향후 170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청과 러시아 관계의 초석을 놓았다. 네르친스크 조약에 임하는 청의 외교정책의 주요한 특징은 청이 러시아에 대해 유...

      1689년 체결된 네르친스크 조약은 향후 170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청과 러시아 관계의 초석을 놓았다. 네르친스크 조약에 임하는 청의 외교정책의 주요한 특징은 청이 러시아에 대해 유화책과 강경책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다는 점, 러시아에 대해 평등한 관계를 용인하고 있다는 점, 교역 등 경제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대신 변경의 안정을 확보하고자 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는 청의 이러한 외교정책은 만주족이 최초로 러시아를 접한 이래 러시아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대책을 모색한 결과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는 카자크병사들을 동원하여 흑룡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한편, 중국과의 교역을 확대하기 위해 통상사절을 파견했다. 청 조정은 변경을 위협하는 카자크 병사들을 러시아 황제의 통제를 받지 않는 비적으로 간주하고 토벌을 주로 하는 한편, 통상사절은 자발적으로 교화를 위해 찾아오는 조공국의 사신으로 간주했다.
      청은 1658년 전투에서 카자크 병사들에게 대승을 거두었지만, 청군이 철수한 후 러시아는 알바진을 수복하고 그 주위의 청측에 속했던 간티무르 수하의 원주민들을 러시아측에 귀속시켰다. 간티무르를 다시 청측으로 귀속시키려는 과정에서 알바진의 카자크 병사들이 러시아 황제의 명령을 따르는 러시아의 신민임을 깨닫게 된 청 조정은 기존의 대러시아 정책을 수정하게 된다. 청 조정은 1669년 이후 북경에 온 러시아 사절에 대해서 무역상의 혜택과 편의 및 선물 등 풍부한 경제적인 이익을 제공하고, 이들을 파격적으로 우대하는 의전을 수여하면서 간티무르 등 도망자를 중국으로 돌려보낼 것을 요청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인 방비를 강화했다. 1676년 북경에 도착한 러시아 황제의 사절을 통해 러시아가 간티무르를 송환할 의사가 없음을 간파한 청 조정은 유화책을 중지하고 전쟁을 통한 해결을 도모하게 된다.
      기존의 연구는 청이 러시아와 평등한 관계의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게 된 원인을 당시 갈단이 다스리는 준가르제국의 부상이란 국제정세에 기인한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본고는 네르친스크 조약에 임하는 청의 외교정책의 등장은 1669년경 청이 변경의 카자크병사와 러시아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한 시점까지 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김한규, "한중관계사II" 아르케 1999

      2 박지배, "수용과 혼종을 통한 공존의 모색: 네르친스크 회담" 역사학회 (246) : 31-73, 2020

      3 계승범, "러시아 자료로 본 1650년대 흑룡강원정(나선정벌)" 열상고전연구회 (65) : 139-168, 2018

      4 吳振臣, "龍江三紀" 黑龍江人民出版社 1985

      5 홍은, "額赫里의 檔案으로 보는 청・러 국경분쟁 초기 漢軍八旗軍 상황과 조선을 통한 문제 해결" 동아인문학회 (44) : 71-102, 2018

      6 "聖祖仁皇帝實錄"

      7 張維華, "淸前期中俄關係" 山東敎育出版社 1987

      8 "淸代中俄關係檔案史料選編 (上, 下) 第1編" 1981

      9 고석현, "淸 康熙 연간 알바진 원정과 黑龍江 지방의 교통로 개척" 역사문화연구소 (82) : 87-124, 2022

      10 編輯部, "故宮俄文史料" 2005

      1 김한규, "한중관계사II" 아르케 1999

      2 박지배, "수용과 혼종을 통한 공존의 모색: 네르친스크 회담" 역사학회 (246) : 31-73, 2020

      3 계승범, "러시아 자료로 본 1650년대 흑룡강원정(나선정벌)" 열상고전연구회 (65) : 139-168, 2018

      4 吳振臣, "龍江三紀" 黑龍江人民出版社 1985

      5 홍은, "額赫里의 檔案으로 보는 청・러 국경분쟁 초기 漢軍八旗軍 상황과 조선을 통한 문제 해결" 동아인문학회 (44) : 71-102, 2018

      6 "聖祖仁皇帝實錄"

      7 張維華, "淸前期中俄關係" 山東敎育出版社 1987

      8 "淸代中俄關係檔案史料選編 (上, 下) 第1編" 1981

      9 고석현, "淸 康熙 연간 알바진 원정과 黑龍江 지방의 교통로 개척" 역사문화연구소 (82) : 87-124, 2022

      10 編輯部, "故宮俄文史料" 2005

      11 張玉書, "外國紀 (叢書集成續編 제65책)" 上海書店

      12 申瀏, "國譯北征日記"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1

      13 蘇聯科學院遠東硏究所, "十七世紀俄中關系 第1卷" 商務印書館 1978

      14 尼古拉, "俄中兩國外交文獻彙編 1619-1792" 商務印書館 1982

      15 "世祖章皇帝實錄"

      16 吉田金一, "ロシアの東方進出とネルチンスク條約" 近代中國硏究センター 1983

      17 Mark Mancall, "Russia and China Their Diplomatic Relations to 1728" Harvard University Press 1971

      18 박지배, "17세기 중반 러시아의 동북아진출과 ‘나선정벌’의 의미" 역사학회 (240) : 637-672, 2018

      19 구범진,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21세기북스 2021

      20 박지배, "1675-76년 스파파리 사절단의 대중국 방문과 새로운 러청 접촉라인의 형성" 역사문화연구소 (82) : 57-86, 2022

      21 박지배, "1656년 바이코프 사절단의 중국 방문과 새로운 유라시아 무역로" 한국서양사학회 (151) : 112-141, 2021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