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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금 간 사절 왕래에 나타난 주기성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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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연구는 고려와 금국 간에 오고간 정기 사절 왕래의 내용 정리를 통해 양국 간 사절 왕래의 주기성을 고찰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고려에서 요에 보낸 사행의 명목은 모두 30여종에 달하였고, 요에서 고려에 보내진 사절은 국왕 및 태자 책봉 등을 비롯하여 17종에 달하였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정기적으로 오간 사절단을 보면, 몇 가지로 정리된다. 고려에서 요에 보낸 정기 사행은 하정사, 하절사, 진방물사, 사하생신사, 사횡선사 등이었고, 요에서 고려에 보낸 정기 사행은 하생신사, 횡선사 등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생신사 관련 양국의 사행은 다른 정기사행과는 다른 내용이 있었다. 즉 고려 국왕의 생일에 맞춰 고려에 도착하거나 혹은 이에 대한 감사 사절이 곧바로 출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횡선사의 경우 대개 6월에 요의 사절이 도착하였지만 그에 대한 답빙 차원의 사절은 대개 11월로 맞춰져 보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생신 및 횡선 관련 사절의 왕래 시기와 주기성에 대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였다. 고려를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이기는 하나 여기서는 6월 및 11월에 행해진 고려의 국가 행사 등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고자 하였다. 말하자면 6월의 경우 태조 휘신도량으로 인한 국왕의 제향 및 봉은사행이나 국왕의 보살계 행사, 도목정사 중 권무, 조운의 운송 시한 등이 주목되었다. 11월의 경우 국가행사는 중동팔관회를 정점으로 12월 도목정사, 이듬해 정월 정단, 상원연등에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이러한 행사와 물산의 집중, 교역 수요 등이 발생하여 생신 및 횡선 관련 사절이 이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본 것이다. 고려는 금의 정월 하례 때의 경우 사하생신사, 사횡선사, 진헌사, 하정단사 등 4종류의 사신단 대략 도합 100여명 이상의 사절단이 금에 들어갔다. 이들은 사신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교역을 통한 이익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본 연구에서는 고려와 금의 사절 파견이 사대조 공책봉이라는 정치위상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 설정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각도의 ‘사행무역’이 전개됨으로써 이를 매개로 한 고려-남송-서하-금의 교역망이 형성되고 그 속에서 사절 파견이 정형화되는 특징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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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는 고려와 금국 간에 오고간 정기 사절 왕래의 내용 정리를 통해 양국 간 사절 왕래의 주기성을 고찰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고려에서 요에 보낸 사행의 ...

      본 연구는 고려와 금국 간에 오고간 정기 사절 왕래의 내용 정리를 통해 양국 간 사절 왕래의 주기성을 고찰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고려에서 요에 보낸 사행의 명목은 모두 30여종에 달하였고, 요에서 고려에 보내진 사절은 국왕 및 태자 책봉 등을 비롯하여 17종에 달하였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정기적으로 오간 사절단을 보면, 몇 가지로 정리된다. 고려에서 요에 보낸 정기 사행은 하정사, 하절사, 진방물사, 사하생신사, 사횡선사 등이었고, 요에서 고려에 보낸 정기 사행은 하생신사, 횡선사 등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생신사 관련 양국의 사행은 다른 정기사행과는 다른 내용이 있었다. 즉 고려 국왕의 생일에 맞춰 고려에 도착하거나 혹은 이에 대한 감사 사절이 곧바로 출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횡선사의 경우 대개 6월에 요의 사절이 도착하였지만 그에 대한 답빙 차원의 사절은 대개 11월로 맞춰져 보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생신 및 횡선 관련 사절의 왕래 시기와 주기성에 대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였다. 고려를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이기는 하나 여기서는 6월 및 11월에 행해진 고려의 국가 행사 등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고자 하였다. 말하자면 6월의 경우 태조 휘신도량으로 인한 국왕의 제향 및 봉은사행이나 국왕의 보살계 행사, 도목정사 중 권무, 조운의 운송 시한 등이 주목되었다. 11월의 경우 국가행사는 중동팔관회를 정점으로 12월 도목정사, 이듬해 정월 정단, 상원연등에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이러한 행사와 물산의 집중, 교역 수요 등이 발생하여 생신 및 횡선 관련 사절이 이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본 것이다. 고려는 금의 정월 하례 때의 경우 사하생신사, 사횡선사, 진헌사, 하정단사 등 4종류의 사신단 대략 도합 100여명 이상의 사절단이 금에 들어갔다. 이들은 사신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교역을 통한 이익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본 연구에서는 고려와 금의 사절 파견이 사대조 공책봉이라는 정치위상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 설정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각도의 ‘사행무역’이 전개됨으로써 이를 매개로 한 고려-남송-서하-금의 교역망이 형성되고 그 속에서 사절 파견이 정형화되는 특징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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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1141 (the twentieth year from the accession to the throne of Injong and the second year of Hwangtong, the name of the era of Geum (Jin dynasty)), Injong was first invested by Geum. In July of the same year, the relationship of investment and tribute between Goryeo and Geum was virtually made by the employment of Hwangtong and diplomatic intercourse of missions between them was regularized.
      In this study, by examining the realities of the diplomatic intercourse of missions between Goryeo and Geum, I seek to consider its periodicity and find the meanings of it. In particular, I pay attention to the backgrounds and meanings of the times and periodicity of the missions concerning birthday and special royal edict (Hoengseon). Although the analysis is made centering on Goryeo, I think that the backgrounds of it were national ceremonies of Goryeo in July and November.
      In brief, the result of this study is the following. The diplomatic intercourse of missions between Goryeo and Geum was not made unilaterally in the political aspect of toadyish tribute and investment. The courtesy of diplomatic missions between Goryeo and Geum followed the system of Yo (Liao Dynasty), but various foreign trades accompanying diplomatic missions were officially developed in considering the interests of Goryeo and Geum. The network of trade of Goryeo-Southern Song-Western Xia-Geum was made centering on them and the dispatch of diplomatic missions was regular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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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1141 (the twentieth year from the accession to the throne of Injong and the second year of Hwangtong, the name of the era of Geum (Jin dynasty)), Injong was first invested by Geum. In July of the same year, the relationship of investment and tribut...

      In 1141 (the twentieth year from the accession to the throne of Injong and the second year of Hwangtong, the name of the era of Geum (Jin dynasty)), Injong was first invested by Geum. In July of the same year, the relationship of investment and tribute between Goryeo and Geum was virtually made by the employment of Hwangtong and diplomatic intercourse of missions between them was regularized.
      In this study, by examining the realities of the diplomatic intercourse of missions between Goryeo and Geum, I seek to consider its periodicity and find the meanings of it. In particular, I pay attention to the backgrounds and meanings of the times and periodicity of the missions concerning birthday and special royal edict (Hoengseon). Although the analysis is made centering on Goryeo, I think that the backgrounds of it were national ceremonies of Goryeo in July and November.
      In brief, the result of this study is the following. The diplomatic intercourse of missions between Goryeo and Geum was not made unilaterally in the political aspect of toadyish tribute and investment. The courtesy of diplomatic missions between Goryeo and Geum followed the system of Yo (Liao Dynasty), but various foreign trades accompanying diplomatic missions were officially developed in considering the interests of Goryeo and Geum. The network of trade of Goryeo-Southern Song-Western Xia-Geum was made centering on them and the dispatch of diplomatic missions was regular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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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
      • 머리말
      • Ⅰ. 고려-금 간 국교 성립과 사절 왕래
      • Ⅱ. 양국 사절 파견에 나타난 주기성과 의미
      • 맺음말
      • 요약
      • 머리말
      • Ⅰ. 고려-금 간 국교 성립과 사절 왕래
      • Ⅱ. 양국 사절 파견에 나타난 주기성과 의미
      • 맺음말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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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순자, "총론 : 고려전기 대중국관계사 연구의 현황" 43 : 2002

      2 김위현, "요금사연구" 유풍출판사 202-208, 1985

      3 蘇軾, "소동파전집" 論高麗進奉狀

      4 "금사"

      5 안병우, "고려와 송의 상호인식과 교섭 : 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 43 :

      6 김순자, "고려와 동아시아, 한국역사입문②" 풀빛 1994

      7 박종기, "고려시대의 대외관계, 한국사" 한길사 1994

      8 추명엽, "고려시기 대외관계사 연구동향과 국사교육, 윤세철교수정년기념역사학논총 역사교육의 방향과 국사교육"

      9 "고려사"

      10 박옥걸, "高麗來航 宋商人과 麗?宋의 貿易政策" 32 : 1997

      1 김순자, "총론 : 고려전기 대중국관계사 연구의 현황" 43 : 2002

      2 김위현, "요금사연구" 유풍출판사 202-208, 1985

      3 蘇軾, "소동파전집" 論高麗進奉狀

      4 "금사"

      5 안병우, "고려와 송의 상호인식과 교섭 : 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 43 :

      6 김순자, "고려와 동아시아, 한국역사입문②" 풀빛 1994

      7 박종기, "고려시대의 대외관계, 한국사" 한길사 1994

      8 추명엽, "고려시기 대외관계사 연구동향과 국사교육, 윤세철교수정년기념역사학논총 역사교육의 방향과 국사교육"

      9 "고려사"

      10 박옥걸, "高麗來航 宋商人과 麗?宋의 貿易政策" 32 : 1997

      11 朴漢男, "高麗의 對金外交政策 硏究"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1993

      12 金庠基, "高麗時代史" 동국문화사 121-, 1961

      13 김위현, "高麗時代 對外關係史 硏究" 경인문화사 46-47, 2004

      14 奧村周司, "高麗における八關會的秩序と國際環境" 16 : 1979

      15 박용운, "高麗?宋 交聘의 목적과 使節에 대한 考察(上)" 81 : 1995

      16 박한남, "高麗 前期 ‘橫宣使’ 小考" 일월서각 501-502, 1995

      17 稻葉岩吉, "契丹橫宣橫賜の名稱" 17 (17): 1931

      18 外國貢進禮物, "契丹國志"

      19 奧村周司, "使節迎接禮より見た高麗の外交姿勢" 10 : 1984

      20 高麗?宋, "交聘의 목적과 使節에 대한 考察(下)" 82 : 1996

      21 채웅석, "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 동북아시아 국제정세와 고려, 전쟁과 동북아의 국제질서"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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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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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1 1.11 1.0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3 1.05 2.153 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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