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 권근(權近, 1352-1409)은 고려말 조선초의 저명한 학자이고 문신이다. 권근은 선후로 두 차례나 명나라 수도 남경을 사행하는 행운을 지녔다. 특히 1396년에 성사된 사행은 ‘표전’문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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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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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학술저널
9-3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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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 권근(權近, 1352-1409)은 고려말 조선초의 저명한 학자이고 문신이다. 권근은 선후로 두 차례나 명나라 수도 남경을 사행하는 행운을 지녔다. 특히 1396년에 성사된 사행은 ‘표전’문제로 야기되었던 조선과 명나라 사이의 모순과 충돌을 원만히 해결하였을 뿐만아니라 홍무제 주원장으로부터 “노실한 수재”란 칭찬을 받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3수의 어제시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권근은 홍무제의 어명을 받고 어제시 24수를 지어 공손히 올려 바쳤다. 권근의 응제시들에는 조선의 유구한 역사와 명승고적들, 그리고 명나라 사행 노정과정에서의 견문을 읊었는데 그중 <시고개벽동이왕>, <진한>, <신라>, <고려>, <이씨이거>, <금강산> 등 작품들에서는 작가의 주체의식과 애국정서들이 뚜렷이 나타났다. 권근은 주원장의 명에 따라 유삼오, 허관, 경청, 장신, 대덕이 등 명나라 최고의 문인들과 같이 남경의 문연각과 남시, 북시 등 명소들을 유람하고 서로 교유하는 화려한 경력을 갖게 되었다.
권근의 남경사행과 행적은 청나라의 저명한 문인이고 학자이며 대장서가인 주이존(1629-1709)이 편찬한 <폭서정집>, <명시종> 그리고 <정지거시화> 등에까지 수록되었다. 문제는 권근은 명나라의 유삼오 등 정상의 문인들과 교유한 경력이 있은 것은 확연한 사실이였지만 놀라운 것은 이런 중요한 역사에 대해서 조선왕조와 명나라의 문헌들에는 단지 간략히 언급하였을 뿐 그다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적 유감은 명나라 초기에 홍무제가 실시한 살벌한 통치로 인한 유삼오 등 명나라 문인들의 비참한 운명과 갈라 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권근의 남경사행 자체가 부여한 역사적, 문화적 의미는 자못 컸었다. 권근의 남경사행이 성사되면서 홍무제 앞에서 조선 사신으로서 제일 처음으로 단군조선의 개국 역사를 떳떳이 설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었고 동시에 중국의 요(堯)임금을 끌여들여 한국의 역사가 중국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대등한 것임을 피력하는 당당함과 뜻뜻한 주체의식을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권근은 홍무제에게 단군의 존재를 부각하면서 한민족의 자주성을 환기시키고자 노력하였는데 이는 중한 문화교류사에서도 전대미문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권근의 정치적 운명이 전환될 수 있는 그 결정적인 계기도 바로 1396년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남경에 가서 태조의 명으로 찬진한 응제시로 인해 당시의 현안이었던 외교적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여서부터였다. 주지하다 시피 홍무제의 어제시와 권근의 응제시가 갖춘 의미는 남달리 깊었다. 권근이 표전문제를 해결하고 귀국하자 이태조는 홍무제가 권근에게 하사한 어제시를 보고 동인이 천자의 조정에서 배운 것을 펼쳐 천하에 알려지는 이가 거의 없는데, 친히 어제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즉시 박석명(朴錫命)에게 판간하도록 명하였다. 이로 인해 권근 자신도 이태조로부터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봉해졌었다.
권근의 응제시는 뒤이어 전개된 훈구 관료 문인들의 문학양상과 사고양태의 실마리를 보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추었다. 권근의 사행목적은 표전문제를 해결함에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 내재한 궁극적 목적은 바로 양국의 우호관계와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의 평화로운 삶을 유지함에서였다. 권근이 요동땅에서 감격에 못이겨 읊듯이 “기쁘구려, 우리 동방 백성의 불만 다 풀려서, 훈훈한 그 바람이 오현금에서 불어옵니다”가 바로 양촌이 구사일생으로 사행을 완수하며 최종 맞이하려는 참된 모습이 아니였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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