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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러시아 문학에 나타난 지성인 연구 - 다니일, 쿠르프스키, 아바쿰을 중심으로
정막래 한국노어노문학회 2008 노어노문학 Vol.20 No.1
본 논문은 고대 러시아 문학에 나타난 지성인에 대한 연구이다. 러시아 지성사에 대한 연구는 주로 근․현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의 근본이 되는 고대와 중세 지성에 대한 연구는 시간과 공간의 긴 차이점으로 인해 연구 논문이나 자료가 그리 많지 않고 또한 번역이 힘들다는 이유로 우리말로 되어 있는 책들도 전무후무한 편이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라는 기틀 위에 서 있음을 생각할 때 이 작업은 필수적인 일이고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고대 러시아 문학 작품들 가운데 3편을 분석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11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고대 러시아 문학 작품 가운데에서 『순교자 다니일의 탄원서』, 『이반 뇌제와 안드레이 쿠르프스키의 서신교환』, 『아바쿰 생애전』 등 3편의 작품들의 저자인 다니일과 쿠르프스키, 그리고 아바쿰을 중심으로 지성인의 형상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특별히 이들을 선택한 것은 이들이 소극적인 지성인이 아니라 적극적인 모습을 지닌 지성인의 형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살고 있던 당대 권력과 기득권층에 대한 항의의 형태가 이들의 작품 속에 직접․간접적으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여러 유형의 지성인들의 모습 가운데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배척당하거나 유배당했던 지성인의 형상을 선별한 것은 이들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지성인들보다는 당시에 고통을 당하는 쪽에 서 있는 지성인의 전형적인 형상을 보다 잘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니일은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발전적인 형상의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러시아 문학에 등장하는 최초의 ‘적극적인’ 지성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쿠르프스키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둔 상태에서 황제를 질책하고 함부로 대하는 거친 서한을 썼던 사람이다. 자신이 황제와 대등한 가계 출신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가 아무리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이러한 행동은 오늘날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지성인들에게 큰 도전을 던져주는 고대의 지성인임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의식에서 자신의 생애전을 쓴 아바쿰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의 우월주의를 엿볼 수 있다. 아바쿰은 수구파의 대표로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신앙과 방식을 고수하고자 했던 외골수 지식인이었다. 맹목적으로 옛 신앙을 완강하게 보호하려는 투쟁 속에서 어려운 고통들을 겪으면서 자신의 가족을 그 고통들 속에 빠뜨리기도 했던 아바쿰은 결국 타는 장작 위에서 화형 당해야했던 거대한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고대 러시아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는 지성인의 여러 가지 모습이 자신들의 시대, 혹은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다니일, 쿠르프스키, 아바쿰으로 대표되는 러시아 고대의 여러 인간 유형은 여러 시대에 걸쳐 존재하나 여전히 사회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내고 있는 지성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개인적인 지성인의 원형은 오늘날 다수로 퍼져나게 지성인의 여러 유형들로 굳어지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영미(Young Mi Lee) 한국현대소설학회 2004 현대소설연구 Vol.- No.22
본고는 해방기라는 정치체제 변동기의 상황에서 당시 사회개혁과 변동의 원천적 힘이었던 지식인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문학인들의 작품을 통하여, ‘비판적 지식인 내지 지성인’으로서 문학인의 역할을 재조명해 보았다. 문학인들은 미소 군정의 영향권 아래에서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회복하려 한 지성인으로 기능하면서 ‘비판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에 바탕하여 ‘선택’의 순간에 주류에 편입하지 않는 비주류의 주변인, 즉 ‘경계인’이 되었다. “언제나 주변을 향해 이동”하는 경계 인에게 있어 당시의 ‘집중화되는 권위’는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였으며 ‘주변을 향해 이동’한다는 것은 신식민지 상황에서 탈식민지의 욕구, 정체성 확보와 관련된 문제였다.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정치적 행보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 문학인들은 자신 의 내면이 암시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실제 작품 내에서, 지성인으로서의 대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비판적으로 행사하였다. 그래서 끊임없이 민족의 정체성 모색에 ‘열중’하여 ‘주체화’에 노력하거나 민족적 정체성 때문에 ‘흔들리’면서 우리의 아픔을 ‘보편적’인 인류의 고통으로 확장 승화시켰다. 이는 미소군정 자체를 또 하나의 식민현실로 인식 탈식민지화를 촉구하고 통일 을 향한 민족적 염원, 나아가 세계평화로까지 진전되는 소중한 의미들이다. 여기에 정치적 변동기 문학인들이 작품을 통하여 추구하고자 열망하였던 재현적 지성인, 경계인으로서의 모습이 놓인다. ‘균형’적 시각을 잃지 않고 우리만의 ‘다양성’을 ‘재현’ 해 내려 했던 문학인들의 독특한 시대적 모습에 의의가 있었다.
박영신(Yong Shin Park) 한국사회이론학회 2008 사회이론 Vol.- No.34
이 글은 뒤르케임의 사회학이 그의 지성인다움과 뗄 수 없게 얽혀 있다는 논지를 펼친다. 먼저 내가 벨라를 통하여 뒤르케임의 사회학과 만났던 것과 뒤이어 그러한 사회학에 관심을 두어온 우리나라의 젊은 사회학자들을 만났던 것을 뒤돌아보면서, 뒤르케임의 사회학이 우리의 사회학에서 특별한 자리를 지켜왔다는 것을 새겨본다. 이어, 뒤르케임이 합리스런 `개인`중심의 인식론을 거부하고 `사회` 중심의 인식론을 내놓을 때 그가 쓴 `사회`라는 말은 근본의 뜻에서 `도덕`이라고 이해한 점을 지적하여, 그가 어떻게 도덕성의 문제와 평생 씨름을 해왔는지를 살펴본다. 아울러 그가 독일에 잠시 머물고 있을 때 `전체성`을 강조한 독일 사회과학을 접하였으며 그 뒤에 가서야 주요 저작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점도 밝힌다. 이후 그가 추구한 도덕 사회학의 과제와 그 지향성 때문에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를 변호하기 위하여 연구실에서 뛰쳐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점을 논구한다. 여기서 뒤르케임의 사회학은 학문에 대한 헌신과 지성인된 의무감을 동시에 요청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학문 관심은 오랫동안 화해할 수 없다고 여긴 `학문`과 `참여`라는 두 세계를 연결하여 새로운 지성인의 유형을 만든 특유한 시도였다. 그의 탄생 150돌을 새기며 이 글은 오늘날 우리나라 사회학의 상황과 그와 이어진 지성 풍경을 성찰하며 마무리한다. In this article I argue that Durkheim`s commitment to sociology is entwined with his intellectual struggle for the moral integration of Third Republic France. By looking back on my encounters with Durkheim`s sociology, through my intellectual connection to Bellah and later through meeting young Korean scholars of Durkheim during my teaching career, I show that Durkheim`s sociology has continued to be a distinctive part of sociological discourse in Korea. Turning to the formation of Durkheim`s own sociology to sketch how he came to focus on his lifelong struggle with morality by pointing out that what he meant by `social` is `moral` in a fundamental sense and that he rejected rational-individualistic epistemology. I note that he began producing major works only a few years after his sojourn in Germany where he had met its social science which tended to assert holistic strains. I move on to discuss the way that his sociology of morality led him to come out for the defense of Dreyfus, stressing that his sociology demanded simultaneously an academic commitment and intellectual obligation. Durkheim`s sociology was a unique attempt to bridge two worlds of scholarship and engagement with moral issues that have been long regarded as irreconcilable, and to formulate a new type of intellectual. In commemorating the sesquicentennial of the birth of Durkheim, I conclude this article with some reflections on Korean sociology and its intellectual landscape today.
서벌턴 주체로서 일본군 ‘위안부’: 변영주의 낮은 목소리 삼부작을 중심으로
이유혁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8 人文硏究 Vol.- No.83
This paper examines the ways in which a group of surviving Japanese comfort women transforms themselves from ‘silenced’ passive victims into actively ‘engaging’ political and public subjects. Spivak suggests that subaltern’s entry into the structure of resistance, albeit still oppressive, to make their political voices be heard enables them to be on the way to becoming organic intellectuals. Spivak’s concept of ‘organic intellectuals’ suggested in Devi’s Imaginary Maps serves as the key theoretical frame for my study. I choose Nazen Moksori trilogy, documentary films by director Byun Yeongju as a case study, giving particular focus on how surviving Japanese comfort women ‘articulate’ resistance not only verbally but also through activism, which is the mode of their political engagement adopted on the way to becoming organic intellectuals. By highlighting the way in which the formation of subaltern’s political subjectivity becomes a dynamic and diverse process in the case of Japanese comfort women in Korea, not only does this study help me to critically reinterpret subaltern’s postcolonial ontology as often being characterized as ‘unspeakable,’ but it also enables me to consider an affirmative possibility of the formation of subaltern’s political subjectivity. This paper, thus, suggests a group of Japanese comfort women in Korea as a notable example of subaltern political subjects. 이 논문은 생존한 일단의 일본군 위안부들이 어떻게 서벌턴적 정치적 주체로 변모되어 가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거야트리 스피박이 마하스웨타 데비의 『상상의 지도들』에서 제시하는 ‘유기적인 지성인’이라는 개념이 핵심적인 이론적 틀이다. 스피박은 서벌턴이 자신의 정치적인 목소리가 들려지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의 억압적인 저항의 구조 속에 들어갈 때 그들이 유기적인 지성인으로 변모되어가는 과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서벌턴이 어떻게 ‘말할 수 없는’ 수동적인 개인에서 능동적인 정치적 (혹은 공적인) 주체로 변모되어 가는지를 살펴보는 데 유용한 분석적 틀이 된다. 구체적인 사례 연구로 필자는 변영주 감독의 기록 영화인 낮은 목소리 삼부작을 분석한다. 이 작품에는 그 당시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말할 수 없는’ 존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의 언어를 드러내는 서벌턴적 정치적 주체로—스피박이 말하는 ‘유기적인 지성인’으로--변모되어 가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연구는 먼저 서벌턴의 정치적 주체성 형성의 긍정적인 가능성의 확장을 위한 하나의 의미 있는 탐색이 된다. 더 나아가, 서벌턴적 정치적 주체성의 형성 과정이 역동적이고 다양하게 구현되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이 연구는 기존의 서벌턴의 탈식민적 존재론에 대한 유의미한 비판적 재해석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필자는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를 주목할 만한 서벌턴적 정치적 주체의 한 전형으로 제안한다.
쟈크 엘룰과 프란시스 쉐퍼를 통해 본그리스도인의 사회, 윤리적 과제 연구
조만준(Cho, Man Joon) 개혁신학회 2017 개혁논총 Vol.44 No.-
Jacques Ellul(1912-1994) and Francis A. Schaeffer(1912-1984) were both representative evangelical intellectuals devoted to a faithful Christian living while criticizing contemporary civilization. They believed that Christian faith was still meaningful in modern society and would correct the evil practices of modern society. They were not only the best intellectuals at the times who criticized many ills of the contemporary society based on their Christian faith but also activists who carried out significant actions. They proclaimed the Gospel to the world providing prophetic visions and insights so that lay Christians can have proper perspective upon the world. They offered social and ethical responsibility for Christians living in a technology-based-world regarding the Bible as the absolute value. By their actions and lives, Ellul and Schaeffer revealed Christian influence to the world and emphasized their role as ‘light and salt.’ Thus it is possible enough to say that their intellectual heights, passionate faith, influences and challenges to the world set the living standard for Christians in the 21st century. In this paper, I compared Ellul and Schaeffer’s theology and perception on the Christian society in order to describe Christian perspective upon the world. I believe that their historical understanding, spirituality, social and ethical role and responsibility as Christians deserve greater attention. I also believe that Christians can transform the world when they put their faith and teaching into actions with passion and holiness.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려 했던 복음주의의 대표적인 지성인 쟈크 엘룰(Jacques Ellul, 1912-1994년)과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1912-1984년)는 기독교 신앙이 현대 사회 속에 서도 여전히 의미가 있으며, 현대 사회의 잘못된 병폐들을 치유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들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비판한 당 시대의 최고 지성인들이며 행동하는 실천가들이었다. 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선지자적 통찰력과 신앙의 이름으로 세상에 복음을 선포했고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안목과 통찰력을 제공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절대적 가치로 보았고 기술 사회의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 윤리적 책임을 제시하였다. 엘룰과 쉐퍼는 모두 삶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드러냈으며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빛과 소금으로의 역량을 강조하였다. 그들이 후대 복음주의 자들에게 제시한 학문의 깊이, 열정적인 신앙, 세속 세계에 던진 영향력과 도전은 2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야할 지표를 설정해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엘룰과 쉐퍼 두 인물의 신학과 기독교 사회에 대한 인식을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기술해 보고자 한다. 특별히 그들의 역사 이해 방법과 영성(靈性, Spirituality), 그리스도 인의 사회, 윤리적 기능과 역할을 재조명해보려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거룩한 구별됨과 열정을 가지고 가르침을 삶과 행동으로 실천하며 살아갈 때 이 땅은 변혁될 것임을 믿는다.
장재천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한국사상과 문화 Vol.51 N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search the educational and cultural significances of the four precious things of the study(文房四友) or the four treasures of the scholar(文房四寶). The traditional culture is not the stuffed past but living one to operate ceaselessly for the cultural creation of today. Our Korean traditional cultures are the peaceful life culture, loving the books and calligraphy. The literary man was a book lover, name of government position. They were called Sunbi. In Their rooms there was a complete set of tools ; paper, writing brush, Chinese ink, ink stone, etc. These writing materials of calligraphers became symbols of Sunbi in Chinese character cultural area from old times. Especially, the tools counted for much because the classical examination system for the government service in old-time Korea was done role as an opening to honors of a rise in the world. Our ancestry observed the customs and practices handed down from it's forefathers. Sunbis took a serious view of high social standing and cultivated moral character, and were delighted in elegant pursuits through pictures and calligraphic works. Consequently, the four precious things of the study became the measure of intellectual and virtuous deeds of wiseman(君子) and of moral culture. Therefore, at the merciless present day, we have to keep in mind educational and cultural significances of the four precious things of the study. 한국의 문화는 ‘책과 붓글씨’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문화적 특징이 평화적인 생활문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과 붓글씨’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문방사우(文房四友)⋅문방사보(文房四寶)인 것이다. 문방은 원래 중국에서 문학(文學)⋅문한(文翰)을 연구하던 관직명이었는데, 후에 선비들의 글방 또는 서재라는 뜻으로 정착되었다. 이곳에 갖춰두고 쓰는 종이, 붓, 먹, 벼루를 의인화하여 ‘문방사우(文房四友)’라 칭한 것이다. 예부터 문인의 서재를 문방이라 하고 수업의 장으로 존중해왔는데, 점차 문방이 그곳에서 쓰이는 도구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래서 문방사우는 선비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과 일본 등 동양문화 혹은 한자문화권의 바탕을 형성케 한 매개체 역할도 해왔다. 그래서 종이(紙)⋅붓(筆)⋅먹(墨)⋅벼루(硯)는 서가(書家)의 필수적인 용품이 되었다. 특히 과거시험이 선비의 등용문이었음을 감안하면 문방사우는 선비의 뜻을 밝혀주는 필수용구로서 곧 입신양명의 도구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의 조상들은 예부터 문방사우를 가까이 하며 인격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문인들이 서적을 사랑하며 사고하고 또한 친구⋅선후배와 정담을 나누고 서화나 풍류를 즐기며 인격을 함양한 것이다. 문인들은 격을 중요시 하였기에 그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 공간에 선비의 고고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를 가꾼 것이다. 이런 풍류는 문인과 가장 가까운 것이었고 그들을 격조 높게 만드는 것은 바로 서화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 용구가 되는 재료인 종이⋅붓⋅벼루⋅먹은 아주 소중한 것이었다. 결국 우리 전통사회에서 문방사우는 지성인의 척도였으며, 군자의 덕목이기도 하려니와 선비들의 심성을 바르게 잡는 수신(修身)의 방법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문방사우는 각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이 다시 한 번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교육문화이다.
이광일 한중인문학회 2010 한중인문학연구 Vol.31 No.-
본고는 중국 잠재창작과 관련하여 김학철의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를 살피며 잠재창 작으로 된 이 작품이 중국 한족의 잠재창작보다 10년이나 앞당겨 진행되었음을 밝히는데 목 적을 둔다. 중국의 건국 후 ‘문화대혁명’이 결속되기까지 특수한 중국의 정치문화풍토에서 잠 재창작이란 특이한 문학현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살피고, 잠재창작과 김학철 소설의 관련 및 그의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의 잠재창작의 의미를 고찰한다. 중국은 건국 후 30여 년간 ‘계급투쟁’이라는 정치적인 공동명제의 시기를 거쳤고 ‘문화대혁 명’기간은 동란의 년대였다. 이 과정에 문학창작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였고 강압적인 정치통치와 난폭한 정치문화의 간섭으로 하여 많은 작가들은 이런 저런 연유로 창작권을 박 탈당하였다. 특히 ‘문화대혁명’시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리하여 국가 관념문학에 대응되는, 지하에서 창작되고 유통되는 잠재창작이라는 문학현상이 중국의 특정된 시기에 산생하였다. 김학철은 1950년대 초 조선족소설의 대표적인 작가이고 문단을 독보하였다고 할 수 있었 지만 1957년 ‘우파’로 몰리여 창작권을 박탈당한다. 정상적인 문학창작이 불허된 상황에서 그 는 비밀리에 소설을 쓰게 되는데 바로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이다. 1965년 원고가 완성 되고 절반 분량을 일어로 번역하였지만 이듬해 ‘문화대혁명’과 함께 가택수색을 나온 ‘홍위병’ 에 발각되어 필화사건을 불러오게 되고 10년 옥살이를 한다. 중국 한족의 경우, <두 번째 악수> 등 잠재창작은 1970년대 중반에 비로소 산생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김학철의 잠재창작은 중국의 주류문단에 비해 10년 앞당겨 진행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진정한 의미의 문학작품이 전무하다시피 한 광란의 년대에 잠재창작이 존재함 으로써 문학사의 흐름은 이어지게 되며 조선족문학의 경우, 김학철의 잠재창작과 그의 작품은 문학사에서 갖는 의미가 간과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The thesis aims to study Jin Xuetie’s novel The Myth of 20th Century combining with the potential writing in China, and make it clear that the novel was written ten years before Chinese potential writing. The thesis is to study the background of this very special literary phenomenon from liberation of PRC to the end of Cultural Revolution, and the connection between potential writing and Jin Xuetie’s novel as well as the significance of his novel The Myth of 20th Century. After the liberation, China has experienced for over 30 years the political period known as “Class Struggle” and troublous period known as “the Great Cultural Revolution”. Literary creation was not carried out normally and a number of writers were deprived of rights for writing owing to oppressive political policy and violent interference of political culture which is especially evident during “the Great Cultural Revolution” period. Corresponding to the national ideological literature, a literary phenomenon called as potential writing, which was created and circulated in the underground, came into being in this special period. Jin Xuetie was a representative writer of Chinese-Korean novels in the early 1950s, but was accused of “Right Wing” in 1957 and thus deprived of right for writing. Under the circumstances that normal literary creation was not permitted, he had to be occupied with his novel in secret. This very novel, The Myth of 20th Century, was published in 1965, and half the quantity of the novel was then translated into Japanese. However the next year, the novel was discovered by the Red Guards who were searching the house, and he was indicted for this very novel which brought him into ten years of prison life. In terms of Chinese Han writers, the potential writing such as Second Handshake only emerged in the middle of 1970s. It is worth noticing that Jin Xuetie’s potential writing was carried out ten years earlier than main current of Chinese literature. In such crazy periods when literary works in the true sense of word did not exist at all, the appearance of potential writing joined the flowing of literary history, and the significance of Jin Xuetie’s potential writing and his works should never be overlooked in the history of Chinese-Korean literature.
황동규의 초기 시세계에 나타나는 욕망과 모순 - 『어떤 개인 날』과 『비가』를 중심으로
김보경 한국문학연구학회 2022 현대문학의 연구 Vol.- No.77
기존의 연구들은 황동규의 시세계를 주로 4단계로 구분한다. 그중 1기에 속하는 첫 두 권의 시집인『어떤 개인 날』(1961)과 『비가』(1965)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황동규의 첫 두 권의 시집은 시인의 정신적 궤적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또한, 60년대 후반에 촉발된 문학의 주체 문제와 관련하여 황동규의 시세계는 『문학과지성』 진영이 주체로 설정했던 ‘지성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본 연구는 두 권의 시집을 중심으로 황동규의 초기시세계를 분석해 연구의 공백을 보완하고 문학의 주체와 관련된 담론에서 ‘지성인’의 의미를 보충해보고자 한다. 황동규의 초기 시편들에는 자기의식의 확장에 대한 욕망이 드러난다. 자아의 욕망은 욕망을 욕망하는, 즉 ‘욕망의 뿌리’와 가깝다. 억압적 현실에서 자아는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고 자신의 욕망 추구를 포기한다. 정신사적인 측면에서 60년대에는 인간의 ‘욕망의 뿌리’가 동일하며 ‘나’는 타자이며 타자는 ‘나’라는 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개인 날』에서 자아는 의식과 행동 사이에 모순을 경험한다. 스스로는 세계에 대한 불안과 허무를 느끼지만 지식인으로서의 결의를 이행해야한다. 이후 『비가』에는 극심한 좌절로 인한 불능상태가 나타난다. 이제는 현실세계가 자아의 모든 의식과 욕망을 억압하고 그의 시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타자”인 ‘광인’이 형상화되기에 이른다. 황동규의 초기시세계는 ‘지적 존재’의 의미를 넘어서는 ‘지성인’의 면모를 드러내준다. 문학의 주체인 ‘지성인’은 언어에 대한 실험의식과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표명한다. 이들은 단지 각성된 개인이 아니라 독특한 방법으로 ‘기투’하는 존재인 것이다. 당시 ‘지성인’의 한 축을 담당했던 황동규의 시세계가 이러한 해석에 타당성을 확보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