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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아시아: 유라시아 공간 이미지 속의 도스또옙스끼의 “갱생”과 이념

      ( Gil-joo Lee )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2007 한국시베리아연구 Vol.11 No.1

      그간 도스또옙스끼의 미학에 대한 대개의 연구 방향은 주로 뻬쩨르부르그라는 공간 범위 내에 한정되어 있었다. 라스꼴리니꼬프와 쏘냐, 므이쉬낀과 로고진, 드미뜨리 까라마조프와 알료샤 까라마죠프에 대한 접근은 분명 뻬쩨르부르그의 도시 경계 내부적 고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벌이는 자연적, 초자연적, 또는 원초적 힘의 연출과 종교적 담론에 대해서는 그의 심오하고 방대한 스케일로 인해 불가사의하거나 애매모호한, 또는 이중적인 해석이 주를 이루어 왔다. 또한 『작가의 일기』같은 저널리즘 문체에 의한 시사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한 그의 반 유럽적, 또는 간혹 친 아시아적 강변과 과장적 제스처들도 해석의 기피대상이었다. 물론 다성악과 축제적 양식 그리고 메니페아 등의 담론을 통해 이러한 난제들에 대한 바흐찐의 해석이 해결의 단초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도스또옙스끼의 복잡하고 모순에 찬 이념적 담론은 무엇보다 그의 독특한 긍정과 부정의 사유 체계에 의한 것인 동시에 다성악적 구도 속에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러시아 또는 세계의 유토피아에 대한 직설적 담론을 위한 실험실의 작업으로 파악하여야 한다. 시베리아-아시아에 대한 도스또옙스끼의 인식과 표명도 이 범주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오히려 시베리아 체험이 그러한 사유체계를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도스또옙스끼는 1860년대의 시베리아 유형 후 표명한 자신의 사상적 전환, 즉 종교적 갱생과 러시아 민족주의적 보수화의 계기를 시베리아 유형생활에서 찾았다. 그가 찾는 자신의 윤리와 종교, 사상적 전환의 이유는 무엇보다 시베리아 유형 중 만난 수없이 많은 러시아 민중들 즉 정치범, 잡범을 비롯한 시베리아의 민중들과의 접촉과 대화를 통해 얻어진 러시아적 정신의 발견이었다. 또한 도스또옙스끼는 「작가의 일기」에서 시베리아의 경제적 잠재력과 광대한 공간의 지정학적 실용성을 고려하여 시베리아-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도스또옙스끼에게 시베리아는 부자유속에서 자유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자연과 인간을 재발견하고 자신의 진정한 이념-보수주의적 경향-을 찾게 한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었다. 시베리아-아시아는 도스또옙스끼에게 징벌의 유형지인 닫힌 공간에서 갱생과 화해의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하였고, 즉 「죽음의 집의 기록」의 “첫 인상”에 등장하는 지옥의 카니발적 이미지로부터 광대한 공간 이미지-자유와 갱생이 시작되는 미래 러시아의 유토피아적 희망의 근거가 되어, 20여년의 시간적 공간을 거쳐 「작가의 일기」에서 다시 확장되었다. 그것은 아바쿰의 자서전 이래 유형문학 속에서 발견되는 시베리아 자연에 대한 외경심과 흡사하며 족쇄에 묶여 바라크 생활을 하는 구속된 생활이 더욱 자유와 진정한 인간에 대한 외경으로 치닫게 한 점에서 두드러진다. 도스또옙스끼에게 열린 공간으로서의 시베리아는 자유와 진정한 인간이라는 화두가 더욱 어울리는 기재가 되고 있다. 도스또옙스끼는 「작가의 일기」 속의「농부 마레이」에서의 시베리아 추억과도 연결되는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그의 대다수 작품들에 드물게 등장하는 자연묘사를 보여준다. 특히「죽음의 집의 기록」에 등장하는 서정적 봄날과 여름철(제 5장)의 풍경과 함께 도스또옙스끼에게 러시아 민중, 특히 농민의 위대함에 대한 확신은 이 시베리아 유형생활에서 굳어지고 그것은 그의 끝없는 유형생활의 고독 속에 푸르게 채색되는 자연과의 교감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또한 광막한 시베리아의 들판 위에서 심리적 속박 속에 부정적 정황의 결과이지만 갱생의 단초가 시작된 시점이다. 도스또옙스끼의 현실에 대한 부정, 그리고 이어 강력한 긍정의 목소리는 「작가의 일기」속에서 확장되어 동방 아시아로의 방향전환을 꺼려하는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러시아의 아시아로의 미션을 정당화하며,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톤으로 비상한다. 그는 “아시아에는 아프리카의 내지보다도 덜 탐험된 땅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식민정책적 팽창정책을 옹호하였다. 현실에 대한 부정의 목소리가 곧 강력한 긍정의 목소리로 급변한 것이다. 「작가의 일기」속의 화자는 흔히 이러한 두 가지 목소리로 작가 도스또옙스끼와, 또는 독자와 대화한다. 그것은 도스또옙스끼의 독창적인 창작방법일 뿐만 아니라 직선성이 아닌 다원성을 주장하는 그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작가의 일기」의 관념적 문귀들 중에 도스또옙스끼의 어조가 때로 지나치게 독선적으로 나타나는 점이다. 그것은 보수적인 노정객의 고집스런 목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하며 무엇보다 그의 라스꼴리니꼬프, 이반 까라마죠프 등의 부정적 주인공들이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는 목소리와 닮아 있다. 그것은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나레이터가 내는 자문자답적이고 장난스럽기까지 한 반론의 목소리가 아니라 단정적이고 확신에 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학적 모순과 함께 도스또옙스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권위적 성격을 띠는 것은 도스또옙스끼 자신이 주장한 비종결성의 다원적 시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기도 하고, 그 결과이기도 하다. 도스또옙스끼의 말과 그가 창조한 인물들의 힘과 깊이는 많은 경우 그가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하며 만난 죄수들의 말과 모습을 많이 닮았다. 그것은 그가 그들을 요새라는 갇힌 공간에서 몇 년간 직접 접촉하며 생활 속에 관찰했던 결과였다. 닫힌 공간 속에서 인간은 육체와 정신의 치부까지 서로에게 드러내고 서로 닮아간 결과이다. 그러한 형상이 곧 라스꼴리니꼬프, 스따브로긴, 그리고 이반과 드미트리 까라마조프가 되었으며 이들 간의 상호 모방까지 이르게 된 것이며 작가의 심리적 공간미학과 관련된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러한 폐쇄 공간으로부터 노역을 위해 밖으로 나간 후 맞게 되는 광활한 시베리아 초원과 그 원주민들은 열린 공간과 갑자기 확장된 시야로 인한 초월적 깨달음으로 작가에게 작용하고 있다. 결국 도스또옙스끼에게 있어 시베리아는 요새 감옥과 광활한 대평원이라는 부정적인 닫힌 공간으로부터 긍정적인 열린 공간으로의 확장이라는 단계를 거친 이중적 공간이고, 이러한 이중적 이미지 속에서 변신과 깨달음의 과정이 열린 곳이었다. 이어 작가의 깨달음은 미래의 유토피아적 러시아 또는 유라시아 제국을 염두에 둔 지정학적 예언을 낳게 하였다. 더불어 도스또옙스끼에게 시베리아-아시아 자연과 공간적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도시적, 근시안적 갈등과 소요를 원시적 고요와 침묵 속에 가라앉게 하고, 긍정과 부정의 인류 보편의 유토피아- 반 유토피아 담론으로 그의 사유체계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 한국과 시베리아의 경제협력 현황과 과제

      이효선 한몽경상학회 2007 한몽경상연구 Vol.18 No.2

      시베리아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소연방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북부지역과 동부지역, 즉 시베리아지역은 여전히 러시아의 주권 하에 속해 있다. 러시아는 여전히 세계 최대의 영 토대국이며, 세계 제2의 핵 강국이다. 그러나 흑해와 발트 해와 카스피 해의 상당부분이 러시아 주권 밖으로 밀려나 해군력의 감소는 물론 해양 진출의 어려움을 경험해야만 했 다. 그 결과 러시아의 해양진출을 위해 북극해와 북태평양을 아우르고 있는 시베리아의 중요성이 높아져 가고 있다. 넓은 의미의 시베리아는 러시아 아시아지역으로 우랄산맥 동쪽부터 사할린 섬과 쿠릴열도 를 포함한 북태평양까지 펼쳐진 지역을 의미한다. 행정구분 상으로 시베리아는 서시베리아 와 동시베리아 그리고 극동지역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2000년 푸틴의 행정구역재편으로 러 시아 연방이 군관구와 유사한 7개의 연방구로 재편되면서부터 극동연방구(과거의 극동 경제 지역과 같은) 그리고 서시베리아와 동시베리아 경계지역이 시베리아 연방구로 재편됐다. 그 중 연료자원 매장량과 생산량이 풍부한 서시베리아에 소속된 튜멘 주와 한티-만시 자치구 는 러시아 석유생산량의 3분의2이상, 그리고 야말로-네네츠 자치구는 러시아 가스 생산의 90%응 점유하고 있다. 러시아 아시아지역(넓은 의미의 시베리아지역)에는 러시아연방89개 연방주체 중에 극동 연방구에 10개(사하-야쿠티야共, 연해 병강주, 하바로프스크변강주, 사할린주, 아무르주, 마 가단 주, 캄차트카 주, 유대인 자치주, 코랴크자치 구, 추코트카 자치구), 시베리아 연방구 에 16개(그 중 동시베리아지역에 부랴티야共, 투바共), 하카시야共, 크라스노야르스크 변강 주, 이르쿠츠크 주, 치타주, 타이미르 자치구, 에벤크 자치구, 우스트-오르딘스크 자치구, 아긴스크 부랴트 자치구 그리고 서시베리아지역에 알타이共, 알타이 변강주, 케메레보 주, 노보시비르스크 주, 옴스크 주, 톰스크 주) 그리고 우랄연방구에 3개(튜멘 주, 한티-만시 자 치구, 야말로-네네츠 자치구)등 총 29개가 있다.

    • Siberia-Asia : Dostoevsky's "Regeneration" and Ideas within Eurasian Spatial Images : From The House of the Dead to The Diary of a Writer

      Lee, Gil Joo 培材大學校 社會科學硏究所 2007 自然科學論文集 Vol.17 No.1

      그간 도스또옙스끼의 미학에 대한 대개의 연구 방향은 주로 뻬쩨르부르그라는 공간 범위 내에 한정되어 있었다. 라스꼴리니꼬프와 쏘냐, 므이쉬낀과 로고진, 드미뜨리 까라마조프와 알료샤 까라마죠프에 대한 접근은 분명 뻬쩨르부르그의 도시 경계 내부적 고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벌이는 자연적, 초자연적, 또는 원초적 힘의 연출과 종교적 담론에 대해서는 그의 심오하고 방대한 스케일로 인해 불가사의하거나 애매모호한, 또는 이중적인 해석이 주를 이루어 왔다. 또한『작가의 일기』같은 저널리즘 문체에 의한 시사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한 그의 반 유럽적, 또는 간혹 친 아시아적 강변과 과장적 제스처들도 해석의 기피대상이었다. 물론 다성악과 축제적 양식 그리고 메니페아 등의 담론을 통해 이러한 난제들에 대한 바흐찐의 해석이 해결의 단초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도스또옙스끼의 복잡하고 모순에 찬 이념적 담론은 무엇보다 그의 독특한 긍정과 부정의 사유 체계에 의한 것인 동시에 다성악적 구도 속에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러시아 또는 세계의 유토피아에 대한 직설적 담론을 위한 실험실의 작업으로 파악하여야 한다. 시베리아-아시아에 대한 도스또옙스끼의 인식과 표명도 이 범주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오히려 시베리아 체험이 그러한 사유체계를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도스또옙스끼는 1860년대의 시베리아 유형 후 표명한 자신의 사상적 전환, 즉 종교적 갱생과 러시아 민족주의적 보수화의 계기를 시베리아 유형생활에서 찾았다. 그가 찾는 자신의 윤리와 종교, 사상적 전환의 이유는 무엇보다 시베리아 유형 중 만난 수없이 많은 러시아 민중들 즉 정치범, 잡범을 비롯한 시베리아의 민중들과의 접촉과 대화를 통해 얻어진 러시아적 정신의 발견이었다. 또한 도스또옙스끼는 「작가의 일기」에서 시베리아의 경제적 잠재력과 광대한 공간의 지정학적 실용성을 고려하여 시베리아-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도스또옙스끼에게 시베리아는 부자유속에서 자유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자연과 인간을 재발견하고 자신의 진정한 이념-보수주의적 경향-을 찾게 한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었다. 시베리아-아시아는 도스또옙스끼에게 징벌의 유형지인 닫힌 공간에서 갱생과 화해의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하였고, 즉「죽음의 집의 기록」의 “첫 인상”에 등장하는 지옥의 카니발적 이미지로부터 광대한 공간 이미지-자유와 갱생이 시작되는 미래 러시아의 유토피아적 희망의 근거가 되어, 20여년의 시간적 공간을 거쳐「작가의 일기」에서 다시 확장되었다. 그것은 아바쿰의 자서전 이래 유형문학 속에서 발견되는 시베리아 자연에 대한 외경심과 흡사하며 족쇄에 묶여 바라크 생활을 하는 구속된 생활이 더욱 자유와 진정한 인간에 대한 외경으로 치닫게 한 점에서 두드러진다. 도스또옙스끼에게 열린 공간으로서의 시베리아는 자유와 진정한 인간이라는 화두가 더욱 어울리는 기재가 되고 있다. 도스또옙스끼는 「작가의 일기」 속의「농부 마레이」에서의 시베리아 추억과도 연결되는「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그의 대다수 작품들에 드물게 등장하는 자연묘사를 보여준다. 특히「죽음의 집의 기록」에 등장하는 서정적 봄날과 여름철(제 5장)의 풍경과 함께 도스또옙스끼에게 러시아 민중, 특히 농민의 위대함에 대한 확신은 이 시베리아 유형생활에서 굳어지고 그것은 그의 끝없는 유형생활의 고독 속에 푸르게 채색되는 자연과의 교감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또한 광막한 시베리아의 들판 위에서 심리적 속박 속에 부정적 정황의 결과이지만 갱생의 단초가 시작된 시점이다. 도스또옙스끼의 현실에 대한 부정, 그리고 이어 강력한 긍정의 목소리는 「작가의 일기」속에서 확장되어 동방 아시아로의 방향전환을 꺼려하는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러시아의 아시아로의 미션을 정당화하며,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톤으로 비상한다. 그는 “아시아에는 아프리카의 내지보다도 덜 탐험된 땅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식민정책적 팽창정책을 옹호하였다. 현실에 대한 부정의 목소리가 곧 강력한 긍정의 목소리로 급변한 것이다. 「작가의 일기」속의 화자는 흔히 이러한 두 가지 목소리로 작가 도스또옙스끼와, 또는 독자와 대화한다. 그것은 도스또옙스끼의 독창적인 창작방법일 뿐만 아니라 직선성이 아닌 다원성을 주장하는 그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작가의 일기」의 관념적 문귀들 중에 도스또옙스끼의 어조가 때로 지나치게 독선적으로 나타나는 점이다. 그것은 보수적인 노정객의 고집스런 목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하며 무엇보다 그의 라스꼴리니꼬프, 이반 까라마죠프 등의 부정적 주인공들이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는 목소리와 닮아 있다. 그것은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나레이터가 내는 자문자답적이고 장난스럽기까지 한 반론의 목소리가 아니라 단정적이고 확신에 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학적 모순과 함께 도스또옙스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권위적 성격을 띠는 것은 도스또옙스끼 자신이 주장한 비종결성의 다원적 시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기도 하고, 그 결과이기도 하다. 도스또옙스끼의 말과 그가 창조한 인물들의 힘과 깊이는 많은 경우 그가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하며 만난 죄수들의 말과 모습을 많이 닮았다. 그것은 그가 그들을 요새라는 갇힌 공간에서 몇 년간 직접 접촉하며 생활 속에 관찰했던 결과였다. 닫힌 공간 속에서 인간은 육체와 정신의 치부까지 서로에게 드러내고 서로 닮아간 결과이다. 그러한 형상이 곧 라스꼴리니꼬프, 스따브로긴, 그리고 이반과 드미트리 까라마조프가 되었으며 이들 간의 상호 모방까지 이르게 된 것이며 작가의 심리적 공간미학과 관련된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러한 폐쇄 공간으로부터 노역을 위해 밖으로 나간 후 맞게 되는 광활한 시베리아 초원과 그 원주민들은 열린 공간과 갑자기 확장된 시야로 인한 초월적 깨달음으로 작가에게 작용하고 있다. 결국 도스또옙스끼에게 있어 시베리아는 요새 감옥과 광활한 대평원이라는 부정적인 닫힌 공간으로부터 긍정적인 열린 공간으로의 확장이라는 단계를 거친 이중적 공간이고, 이러한 이중적 이미지 속에서 변신과 깨달음의 과정이 열린 곳이었다. 이어 작가의 깨달음은 미래의 유토피아적 러시아 또는 유라시아 제국을 염두에 둔 지정학적 예언을 낳게 하였다. 더불어 도스또옙스끼에게 시베리아-아시아 자연과 공간적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도시적, 근시안적 갈등과 소요를 원시적 고요와 침묵 속에 가라앉게 하고, 긍정과 부정의 인류 보편의 유토피아- 반 유토피아 담론으로 그의 사유체계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 러시아 시베리아와 한국과의 경제협력 과제와 전망

      한종만 한몽경상학회 2006 한몽경상연구 Vol.17 No.2

      시베리아의 잠재력이 21세기에 더욱더 구체화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시베리아지역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중국과 남북한으로부터 노동력 유입과 한국을 비롯한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자본유입이 우선 과제라고 보인다. 러시아의 푸틴 정부는 러시아와 중국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의 발전을 위해 상당히 적극적 행동을 취하고 있다. 전략적 파트너십에도 불구하고 러-중간의 관계, 특히 중국 동북부지역과 시베리아간의 관계는 내재적으로 딜레마 문제를 안고 있다. 시베리아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중국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인의 대량 이주로 인해 시베리아지역의 중국인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 문제뿐만 아니라 국경문제와 관련해서 러시아 시베리아 지방정부, 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방정부는 강력히 항의(중국인의 시베리아의 ‘조용한 정복' 등)하고 있다. 시베리아·극동지역에서의 협력 사업은 이 지역의 발전은 물론 러시아의 경제력을 배가시킬 뿐만아니라 동북아와 아·태지역 경제발전의기관차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한국은 다가오는 시베리아·극동 시대를 맞아 그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데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한반도의 국운을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장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시베리아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한반도 통합과정에 있어서 시베리아와의 인적·물적 교류의 활성화는 상호간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시킬 뿐만 아니라, 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재외한민족 및 북한 동포를 참여시켜 민족 동질성과 정체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교류의 활성화는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여 한반도의 통합 여건을 가속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 한반도의 통합과 동북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게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 시베리아 지역주의와 러시아-시베리아 문학, 유형의 신화와 저항정신

      이길주 배재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2002 시베리아총서 Vol.2002 No.-

      시베리아 정체성 연구는 이 지역이 갖는 지정·지경학적 가치에서 볼 때 러시아와 한반도 및 동북아의 공동 발전·번영을 위한 시금석을 찾는 작업이 될 것이다. 또한 21세기 미래 산업이 지향하고 있는 지속 가능하며 친환경·생태학적 개발이라는 관점에서도 인류미래와 관련된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기초하여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획일화, 폭력화되는 현대 서구 자본주의 문명의 대안이 필요한 시점에서, 고아시아적 평화와 공영의 이미지를 간직한 시베리아 원주민의 정신문화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욱이 앞으로 시베리아 지역의 문화적 원형의 연구는 아시아계 원주민의 종교(샤머니즘)와 생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실상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소수민족의 종교와 생활상 측면에서는 러시아인에게 완전히 동화, 통합되지는 않았다. 물론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통합은 완전히 이루어졌고, 특히 소비에트 시절을 거치면서 종교에 대한 탄압 가운데 러시아 정교도의 생활문화가 많이 사라졌다. 시베리아인 고유의 샤머니즘 또한 붕괴되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외경심에 바탕한 지역민들의 토착신앙은 생활의 척박함에 기대어 오히려 뿌리가 어느 정도 살아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면면히 그 전통을 이어오기도 하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러시아 영토 내의 특수한 현상으로 존재하는 시베리아의 종교와 생활상의 변화 모습을 연구한다는 것은 이 지역의 미래 정체성을 가늠하는 잣대를 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전통 주류 지식인들과 모스크바 중앙정부의 시베리아에 대한 폄하된 인식에 의한 식민화의 과정과, 그들의 일관된 지역통합 논지와 반대로 지역의 특수성과 이해관계에 대한 독자적 판단과 결정을 추구하는 지역 문화, 문학의 정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아바쿰 이래 러시아 문학 속에 표명된 유형의 신화와 저항정신에 의한 시베리아에 대한 관점과 이미지를 중심으로 주요 담론들을 모아 분석하였다. 시베리아에 대한 작가, 시인들의 관점은 극단적인 부정적 개념에서 긍정적 개념으로 변모 되거나 반전되어 왔으며, 문학적, 낭만적 개념에서 사회적, 실천적 의지로 저항의 몸짓으로 구체화되기도 하였으며 그것이 시베리아 지역주의로 표방되기도 하였다. 제까브리스뜨에 이어 도스또옙스끼에 의한 시베리아에 대한 갱생의 테마와 함께, 이들 시베리아 지역주의자들의 존재가 중요한 것은 살펴본 바와 같이 시베리아에 대한 지옥적 이미지를 탈각시키고 시베리아를 긍정적 담론으로 이끌고자 하는 그들의 유토피아적 화두가 순수하기 때문이다. 혹독한 유형지의 이미지는 흔히 그들이 도시의 세계로 복귀할 즈음이나 그 도시적 삶과의 비교 대상이 될 때에 시베리아는 자연의 미가 조화의 극치를 이루는 거대한 파라다이스로 미화되고 있다. 시베리아로 처음 유형을 떠난 제까브리스뜨들이나 낭만주의 시인들과, 도스또옙스끼에게 시베리아는 철저히 문명에서 소외된 고통과 어둠의 지옥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시의 군주제와 농노제의 망령을 고려할 때 그곳을 긍지와 자유, 환희가 살아 숨쉬는 유토피아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러시아, 시베리아의 지식인, 작가들은 아바쿰 이래 표출되어 온 시베리아에 대한 상반된 이미지를-때론 천국과 지옥- 교차시키며 고민스러워 하고 있다. 쏠제니친의 언급처럼 시베리아, 극동은 아시아 특히 중국의 영향 하에 모스크바 러시아를 위협할 수도 있는 지역이며, 라스뿌찐의 주장대로 세계가 주시해야 할 지구상의 몇 안되는 산소공급지로 보호되어야 할 지역이다. 특히 러시아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라스뿌찐은 지역주의의 맥락과는 또 다른 시베리아 애향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즉 그는 시베리아에 대한 유토피아적 관념 속에 현대 서구문명의 개발논리에 근거한 중앙 정부의 졸속개발로 위협받는 지상낙원의 현실을 폭로하고 시베리아 신화를 러시아 내부에서 복원시키길 원하고 있다. 시베리아 문학은 그 작가가 시베리아 체험을 어떻게 하였느냐에 따라 그 이미지가 천국과 지옥 또는 양자가 혼재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것은 윤리·심리학적 내용으로부터 사회·역사학적 내용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고 유형문학 또는 수용소문학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시베리아 애향자로 대표되는 긍정적 담론의 주인공들에 의하면 시베리아는 대안적 공간이며 진정한 러시아 정신의 고향이어야 할 곳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가속화된 인간의 수탈과 오염에 의한 생태학적 참화 가능성이 시베리아 농촌문학 작가들에 의하여 제기되고 유라시아의 새로운 갈등 공간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갈등과 모순이 문학의 중요한 화두라면 러시아 문학은 러시아의 경제적, 사회적 혼돈이 그 소재를 풍요롭게 제시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를 마감하고 새 세기를 여는 현시점에서 19세기에 도스또옙스끼가 주장한 러시아의 대지, 러시아 민중에 대한 신임은 유럽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이제 그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오히려 시베리아, 즉 아직 때가 덜 묻은 처녀림 속의 대지에서 러시아 민족주의와 서구파적 개발논리 간의 러시아적 갈등과 모순의 실체가 드러나며 동시에 그 해결책이 모색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편 시장 경제적 개발의 당위성과 환경론자들에 의한 환경보호론의 갈등관계가 더욱 심화될 단계에 있다. 그래서 시베리아 농촌작가들이 간직하려던 순결, 자유, 윤리적 우월성 그리고 진정한 러시아 정신의 고향으로서의 이미지는 점차 퇴색하고, 오히려 묵시록적 비극의 전망도 점쳐지며 다시 저항정신이 발아될 시점이기도 하다. As the Siberian people's human spectrum of biographical originalities is so vast that Russian writer's and intellectuals' images and views on the Siberia extremely varied, sometimes between heaven and hell, or utopia and dystopia. The tradition of depicting Siberia like a hell was mostly deeper than that of depicting it as a heaven. The former is the case of Avaakum's "Life" which depicted Siberia for the first time as a place of forced bitter exile. And this tradition continued, influncing on the works of the 18th and 19th century writers including F.M. Dostoevsky's "The House of the Dead." and the works of 20th century 'exile literature' writers V. Shalamov and A. Solzhenitsyn. But like the Avaakum's "Life", Dostoevsky's “The House of the dead" contained some parts of blissful scenary in beautiful nature and the 'narod' of Siberia, changing the soil to positive images, associated with heavenly utopian future of Russia. But from the case of Dostoevsky's "Diary of a Writer", the images of Siberia are often linked with Russian role between 'negative-corrupted' Europe and 'innocent' Siberia or Asia. During the 1st half of the 19th century the Decembrists gave us most negative views on Siberia by mythologizing Siberia as an ultimate dark place of alienation, hardship, exiles. But under the stream of these negative views on Siberia those of Russian writers could'nt refrain from depicting the charms of new frontiers, with rich nature, exotic legendary outlaws, facinated by the myths of Siberia. And the Siberian local romantics, patiots and Siberian regionalists of the second part 19th century began to form images of utopian or "heavenly" Siberia as a kingdom of beautiful and abundant nature with blissful memory of childfood and innocence. The 19th century Siberian regionalist's symbol of innocence, purity, freedom, moral superiority, and true "Russianness" of Siberia could be associated with Russian culture of the 20th century in spite of political exiles and hardship on this soil again under the Stalinist regime (The cases of V. Shalamov, A. Solzhenitsyn). The utopian image or legendary paradise conception of Siberian earth was also hailed by Soviet regime mainly with concerns of economic potential. But with the industrial development and rapid modernization process in this area, Russian intelligentsia began to realize the ecological disasters here and there in Siberia. From the 1960s the advent onto the Soviet literary stage of so-called "derevenskaia proza", with its strong voices of nationalistic and ecological provosts, gave us the new pro and con eyes on Siberia, mostly linked with modernization problems of Siberia. What will happen with the myth of Siberia in post-Soviet Russia is, of course, anyone's guess. Already the vision of approaching tragic apocalypse was spreaded among the writings of "derevenshchiki", most notably of Valentine Rasputin's. It means that their themes were confronting with serious social, and ecological problems of modern Siberia. But, still their novels and articles do not conceal the resistance spirit and writers' secret hopes of some special positive roles and realization of utopian image of Siberia in terms of literary depiction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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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지역의 자치권과 «시베리아 합의»의 성격

      이영형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2011 한국시베리아연구 Vol.15 No.1

      When the Yeltsin administration in Russia was in power, The autonomous rights movement in the Siberian region was intensified. The regional organization which was formed at that time is a federation among the Siberian regions which is called ≪The Siberian Agreement≫. The organization came actively into more operation than the period before and after the year 1995 under the Yeltsin political power. In ≪The Siberian Agreement≫, it was apposed to the development of the Siberian region with the Russia's internal colonial form, while they have concentrated and intensified lobbying activities to win the central government support for their region benefit. The central government is interested in the development of energy, underground resources, and natural resources in the Siberian region. A matter of concern for Siberia is based on the resources of geopolitics and geoeconomics which is contained in the same region. The activities for ≪The Siberian agreement≫ have shrunk drastically in the Putin administration age which was professedly for intension of the central government power. It was only possible that they implement a local autonomy of a further loose type on the basis of matters by mutual agreement. The control right for energy and underground resources, and natural resources in the Siberian region reverts to the central government. It means that the central government has more intensified intervention to the Siberian region. The local autonomy in the Siberian region would have only an external form. So long as the central government continues to control the forest and fisheries resources including energy resources, A problem of autonomous rights of the Federation bodies to belong to the same federation as ≪The Siberian agreement≫ would show such conditions depended on the central government. 옐친정부가 활동하던 시기, 시베리아 지역에서 자치 움직임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결성된 지역 조직체가 «시베리아 합의»라는 시베리아 지역 간 연합체이다. 동일 조직은 옐친이 집권하고 있던 1995년 전후한 시기에 보다 활발하게 활동했다. «시베리아 합의»는 러시아의 내부 식민지 형태로 시베리아를 개발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지역 이익을 위해 중앙정부를 상대로 로비 활동에 주력했다. 중앙정부의 시베리아에 대한 관심은 에너지 및 지하·천연자원의 개발에 있다. 시베리아에 대한 관심은 동일 지역이 갖는 지정학적 및 지경학적 자원에 기초된다. 중앙권력의 강화를 표방하고 나선 푸틴정부 시절 «시베리아 합의» 의 활동이 상당히 위축되었다. 중앙정부와의 협의에 기초된 보다 느슨한 형태의 지방자치가 가능했을 뿐이다. 시베리아의 에너지 및 지하·천연자원에 대한 통제권은 중앙 정부에 귀속된다. 중앙정부의 시베리아 지역에 대한 개입이 보다 강화되어짐을 의미한다. 시베리아 지역의 지방자치는 외형적인 모습에 그치게 될 것이다. 에너지 자원을 비롯한 산림 및 수산자원에 대한 중앙통제가 계속되는 한, «시베리아 합의»와 동일 연합체 소속 연방 주체들의 자치권 문제는 중앙정부에 의존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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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beria-Asia : Dostoevsky’s “Regeneration” and Ideas within Eurasian Spatial Images : From The House of the Dead to The Diary of a Writer

      Lee, Gil Joo 배재대학교 한국-시베리아센터 2007 한국시베리아연구 Vol.11 No.1

      그간 도스또옙스끼의 미학에 대한 대개의 연구 방향은 주로 뻬쩨르부르그라는 공간 범위 내에 한정되어 있었다. 라스꼴리니꼬프와 쏘냐, 므이쉬낀과 로고진, 드미뜨리 까라마조프와 알료샤 까라마죠프에 대한 접근은 분명 뻬쩨르부르그의 도시 경계 내부적 고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벌이는 자연적, 초자연적, 또는 원초적 힘의 연출과 종교적 담론에 대해서는 그의 심오하고 방대한 스케일로 인해 불가사의하거나 애매모호한, 또는 이중적인 해석이 주를 이루어 왔다. 또한『작가의 일기』같은 저널리즘 문체에 의한 시사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한 그의 반 유럽적, 또는 간혹 친 아시아적 강변과 과장적 제스처들도 해석의 기피대상이었다. 물론 다성악과 축제적 양식 그리고 메니페아 등의 담론을 통해 이러한 난제들에 대한 바흐찐의 해석이 해결의 단초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도스또옙스끼의 복잡하고 모순에 찬 이념적 담론은 무엇보다 그의 독특한 긍정과 부정의 사유 체계에 의한 것인 동시에 다성악적 구도 속에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러시아 또는 세계의 유토피아에 대한 직설적 담론을 위한 실험실의 작업으로 파악하여야 한다. 시베리아-아시아에 대한 도스또옙스끼의 인식과 표명도 이 범주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오히려 시베리아 체험이 그러한 사유체계를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도스또옙스끼는 1860년대의 시베리아 유형 후 표명한 자신의 사상적 전환, 즉 종교적 갱생과 러시아 민족주의적 보수화의 계기를 시베리아 유형생활에서 찾았다. 그가 찾는 자신의 윤리와 종교, 사상적 전환의 이유는 무엇보다 시베리아 유형 중 만난 수없이 많은 러시아 민중들 즉 정치범, 잡범을 비롯한 시베리아의 민중들과의 접촉과 대화를 통해 얻어진 러시아적 정신의 발견이었다. 또한 도스또옙스끼는 「작가의 일기」에서 시베리아의 경제적 잠재력과 광대한 공간의 지정학적 실용성을 고려하여 시베리아-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도스또옙스끼에게 시베리아는 부자유속에서 자유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자연과 인간을 재발견하고 자신의 진정한 이념-보수주의적 경향-을 찾게 한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었다. 시베리아-아시아는 도스또옙스끼에게 징벌의 유형지인 닫힌 공간에서 갱생과 화해의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하였고, 즉「죽음의 집의 기록」의 “첫 인상”에 등장하는 지옥의 카니발적 이미지로부터 광대한 공간 이미지-자유와 갱생이 시작되는 미래 러시아의 유토피아적 희망의 근거가 되어, 20여년의 시간적 공간을 거쳐「작가의 일기」에서 다시 확장되었다. 그것은 아바쿰의 자서전 이래 유형문학 속에서 발견되는 시베리아 자연에 대한 외경심과 흡사하며 족쇄에 묶여 바라크 생활을 하는 구속된 생활이 더욱 자유와 진정한 인간에 대한 외경으로 치닫게 한 점에서 두드러진다. 도스또옙스끼에게 열린 공간으로서의 시베리아는 자유와 진정한 인간이라는 화두가 더욱 어울리는 기재가 되고 있다. 도스또옙스끼는 「작가의 일기」 속의「농부 마레이」에서의 시베리아 추억과도 연결되는「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그의 대다수 작품들에 드물게 등장하는 자연묘사를 보여준다. 특히「죽음의 집의 기록」에 등장하는 서정적 봄날과 여름철(제 5장)의 풍경과 함께 도스또옙스끼에게 러시아 민중, 특히 농민의 위대함에 대한 확신은 이 시베리아 유형생활에서 굳어지고 그것은 그의 끝없는 유형생활의 고독 속에 푸르게 채색되는 자연과의 교감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또한 광막한 시베리아의 들판 위에서 심리적 속박 속에 부정적 정황의 결과이지만 갱생의 단초가 시작된 시점이다. 도스또옙스끼의 현실에 대한 부정, 그리고 이어 강력한 긍정의 목소리는 「작가의 일기」속에서 확장되어 동방 아시아로의 방향전환을 꺼려하는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러시아의 아시아로의 미션을 정당화하며,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톤으로 비상한다. 그는 “아시아에는 아프리카의 내지보다도 덜 탐험된 땅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식민정책적 팽창정책을 옹호하였다. 현실에 대한 부정의 목소리가 곧 강력한 긍정의 목소리로 급변한 것이다. 「작가의 일기」속의 화자는 흔히 이러한 두 가지 목소리로 작가 도스또옙스끼와, 또는 독자와 대화한다. 그것은 도스또옙스끼의 독창적인 창작방법일 뿐만 아니라 직선성이 아닌 다원성을 주장하는 그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작가의 일기」의 관념적 문귀들 중에 도스또옙스끼의 어조가 때로 지나치게 독선적으로 나타나는 점이다. 그것은 보수적인 노정객의 고집스런 목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하며 무엇보다 그의 라스꼴리니꼬프, 이반 까라마죠프 등의 부정적 주인공들이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는 목소리와 닮아 있다. 그것은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나레이터가 내는 자문자답적이고 장난스럽기까지 한 반론의 목소리가 아니라 단정적이고 확신에 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학적 모순과 함께 도스또옙스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권위적 성격을 띠는 것은 도스또옙스끼 자신이 주장한 비종결성의 다원적 시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기도 하고, 그 결과이기도 하다. 도스또옙스끼의 말과 그가 창조한 인물들의 힘과 깊이는 많은 경우 그가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하며 만난 죄수들의 말과 모습을 많이 닮았다. 그것은 그가 그들을 요새라는 갇힌 공간에서 몇 년간 직접 접촉하며 생활 속에 관찰했던 결과였다. 닫힌 공간 속에서 인간은 육체와 정신의 치부까지 서로에게 드러내고 서로 닮아간 결과이다. 그러한 형상이 곧 라스꼴리니꼬프, 스따브로긴, 그리고 이반과 드미트리 까라마조프가 되었으며 이들 간의 상호 모방까지 이르게 된 것이며 작가의 심리적 공간미학과 관련된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러한 폐쇄 공간으로부터 노역을 위해 밖으로 나간 후 맞게 되는 광활한 시베리아 초원과 그 원주민들은 열린 공간과 갑자기 확장된 시야로 인한 초월적 깨달음으로 작가에게 작용하고 있다. 결국 도스또옙스끼에게 있어 시베리아는 요새 감옥과 광활한 대평원이라는 부정적인 닫힌 공간으로부터 긍정적인 열린 공간으로의 확장이라는 단계를 거친 이중적 공간이고, 이러한 이중적 이미지 속에서 변신과 깨달음의 과정이 열린 곳이었다. 이어 작가의 깨달음은 미래의 유토피아적 러시아 또는 유라시아 제국을 염두에 둔 지정학적 예언을 낳게 하였다. 더불어 도스또옙스끼에게 시베리아-아시아 자연과 공간적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도시적, 근시안적 갈등과 소요를 원시적 고요와 침묵 속에 가라앉게 하고, 긍정과 부정의 인류 보편의 유토피아- 반 유토피아 담론으로 그의 사유체계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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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소수민족 부츠형 신발의 지역적 특징과 문화적 함의

      이호정,송병구 충북대학교 러시아 • 알타이지역 연구소 2025 러시아학 Vol.31 No.-

      본 연구는 시베리아 지역 소수민족의 부츠형 신발에 주목하여 그 유형과 조형적 특징을 분석하고, 형성 요인과 문화적 함의를 체계적으로 규명하였다. 시베리아를 서시베리아, 중앙시베리아, 남시베리아, 북극권 시베리아, 아무르강 유역의 다섯 지역으로 구분하고 각 지역의 대표 민족을 선정하여 신발의 재료, 형태, 문양, 제작 기법을 비교·고찰하였다. 그 결과 시베리아의 부츠형 신발은 생태환경, 생활양식, 종교 체계, 외부 문화교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시베리아와 중앙시베리아 민족은 순록가죽과 비즈장식을 활용하여 좌우대칭의 기하학 문양을 선호하였고, 남시베리아는 벨벳과 면직물 등 다양한 소재로 두꺼운 밑창의 신발을 제작하였다. 북극권 시베리아는 모피와 해양 포유류 가죽을 이용한 방수형 신발로 독창적 형태를 보였으며, 아무르강 유역은 어피나 야생동물 가죽을 이용한 신목이 열려 있는 구조의 장화를 착용하였다. 이러한 유형적 차이는 혹한의 기후와 생업 형태, 종교적 상징체계, 인접 문화와의 교류 속에서 발전하였다. 따라서 시베리아의 부츠형 신발은 단순한 방한용품이 아닌, 생존을 위한 실용적 도구이자 민족 정체성과 미적 감성을 담은 상징적 복식으로 이해된다. 본 연구는 시베리아 복식문화 연구의 공백을 보완하고, 북방 유라시아 복식문화의 교류와 변용의 계보를 밝히는 기초적 자료로서 의의를 지닌다. This study examines the boot-type footwear of the indigenous peoples of Siberia, focusing on its typological and morphological characteristics, as well as the factors that shaped its development and cultural meanings. For this purpose, we categorized Siberia into five regions—Western Siberia, Central Siberia, Southern Siberia, Arctic Siberia, and the Amur River Basin—and representative ethnic groups from each region are selected for a comparative analysis of materials, forms, patterns, and construction techniques. The findings reveal that the evolution of Siberian boot-type footwear was shaped by the complex interplay of ecological environments, lifestyles, religious systems, and intercultural exchanges. The peoples of Western and Central Siberia favored geometrically symmetrical designs and beadwork decorations made from reindeer hides, whereas those in Southern Siberia produced thick-soled boots using velvet and cotton fabrics. The Arctic region favored boots with distinctive qualities, crafted from fur and marine mammal leather for natural waterproof protection, while the peoples of the Amur River Basin wore fish-skin or wild-animal leather boots with open fronts for practical purposes. These regional variations reflect adaptations to severe climates, subsistence patterns, religious symbolism, and cultural interactions with neighboring communities. Accordingly, Siberian boot-type footwear can be understood not merely as protection against the cold, but as a symbolic artifact embodying both practical survival strategies and aesthetic identities. This research thus fills a gap in the study of Siberian costume culture and provides a foundation for tracing the cultural exchange and transformation of Northern Eurasian dress tra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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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 분석을 통한 시베리아 지역정체성 연구

      어건주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러시아연구소 2014 슬라브연구 Vol.30 No.4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creation myth of the siberian ethnicminorities and to review the siberian regional identity. In this paper, the authordemonstrates the siberian regional identity of the diverse properties through theanalysis of meaning and morphological structure of the creation myth in the Siberia. This study involved creation myths of six siberian ethnic minorities. Theseminorities in Siberia that are chosen according to regional representation andpopulation are Mansi and Khanty in Western Siberia, Altai in Southern Siberia,Evenki in Central Siberia and Udegey and Gilyak in Far Eastern area. Knowledgeof myths will be the key means by which we can understand people who livethere. This is why the author tries to find out about siberian regional identitythrough miths. In the Ⅱ and Ⅲ chapters, the author shows siberian ethnic minorities andcreation myths and analyzes their mopho-semantical structure. In the Ⅳ chapter,the author determines the regional identity from the point of view of ‘views ofcosmos’, ‘creating earth’ and ‘creating human’. 본 논문에서는 시베리아의 여러 소수민족들이 전승한 다양한 신화들 가운데 창조 신화를 중심으로 그 내용과 형태 구조를 파악하고 그것을 통하여 소수민족들의 창조 신화 속에 자리한 여러 특성들을 파악함으로써 시베리아의 지역정체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다만 모든 시베리아 소수 민족의 창조 신화를 살펴보는 것은 제한된 지면 관계상 대단히 곤란하였다. 따라서 인구수와지역 대표성 등을 고려하여 본 연구의 대상을 서시베리아 지역의 만시족과 한티족, 남시베리아지역의 알타이족, 중앙시베리아 지역의 에벤키족 그리고 극동지역의 우데게이족과 길랴크족으로 제한하였다. 신화를 통해 지역정체성을 파악하고자한 이유는 신화 속에 반영된 세계관이 그 신화를 소유한 민족 내면의 가장 기본적인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해당 지역 신화에 대한 지식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빠른 방법이 될 것이며, 그것을 통해 그들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을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의 신화 속에는 그들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시베리아라고 하는 공간의 특성이 지리적, 문화적 특성이 필연적으로 반영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현실적, 경제적 가치를 지닌 시베리아라는 공간을 실제적으로 이해하고 효율적으로이용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시베리아라는 공통의 지리적 환경 하에서 배태된 소수민족들의 여러 창조 신화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공통의 가치 체계를 규명해 내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러한 연구 목적을 위하여 2장에서는 시베리아의 소수 민족들과 그들의 창조 신화에 대한분석이 지니는 의미를 알아보았으며, 3장에서는 시베리아 소수 민족들이 지닌 다양한 신화들 가운데 창조 신화의 여러 예들을 제시하면서, 그 개략의 형태 구조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4장에서는 신화를 통해본 시베리아의 정체성을 그들의 우주관, 창조관, 인간관 등으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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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제국의 시베리아 확장 : 제국의 정복 및 시베리아 이미지

      정세진 한국노어노문학회 2014 노어노문학 Vol.26 No.2

      This article investigate Siberian expansion of Russian empire focused on occupation and Siberian image. Russian expansion across Siberia and into North America had certain features in common by the fur trade. After Russia occupied Siberia, Russian government consistently acquired furs and used those as commerce object. In this paper, I also emphasized Russian's move settlement and Russia's rules regarding Siberian native and emigrative peasants describing government organs and their systems. Chapter II review siberian space's image in the time of Russian occupation. Chapter III investigate Siberia and its image as object space of occupation. Chapter IV analyze Russia's Siberian occupation focused on acquisition of furs and commerce element. Chapter V review peasant migration in Siberia and rule character of Russian Government. 본 논고는 러시아 제국의 시베리아 확장에 관한 내용을 러시아제국의 시베리아 정복 및 제국의 정복의 대상 공간으로서 시베리아 이미지를 중심으로 규명하고 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은 다른 유럽 제국의 정복 방식과 매우 다르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내용이 전개된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점령했던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모피 획득에 있었으며, 이러한 견지에서 시베리아의 상업적 요소를 동시에 규명한다. 제국의 성격을 더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서 러시아가 시베리아 공간에 대한 통치 방식도 언급하고 있는데, 주로 시베리아로의 농민 이주 과정과 제국의 통치적 양식을 논증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러시아를 전형적인 유럽제국의 범주에 포함시키든지, 아니면 단순한 러시아의 연장선상으로 시베리아를 바라보든지 관계없이, 시베리아는 일종의 착취의 대상이었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정복한 이후 2백년이상 지난 이후인 19세기 초의 러시아 지식인들은 비로소 식민주의 지대(地帶)로, 혹은 제국의 이미지로 시베리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이미지는 여전히 러시아 국가의 상업 식민지(mercantile colony)로서의 시베리아 이미지였다. 18 세기 이후 시베리아는 변방, 혹은 제국적 용어에 따른다면, 거대 중심지(메트로폴리스)의 식민지 주변부로 이해되었다. 해외 상업 식민지로서의 시베리아의 이미지는 식민 제국으로서 러시아의 비전을 더 확대했다. 러시아는 유럽제국의 강력한 일원이 되고 난 19세기에 들어서야, 제국의 대상지역으로서의 시베리아를 인식하였고 그 시점에 이르러 중앙지역에서 농민 이주민들의 시베리아 개척이 강력하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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