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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적 사유에 기반한 인문고전 텍스트에서의 어린이 철학교육
최성윤 경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 2022 국내석사
본 논문은 경험하고 인식하는 대상에 대해 우리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변증법적 사유에 기반한 인문고전적 텍스트에서의 어린이 철학교육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를 위해 변증법적 사유의 기저와 교육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여기서 변증법적 사유의 기본 전제를 논의하였고, 변증법적 사유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변증법적 사유의 교육적 의미를 고찰함에 있어서 그에 대한 이론적 배경은 플라톤의 변증술과 듀이의 경험이론을 참고하였고, 헤겔과 아도르노의 변증법적 교육단계를 통해 변증법적 사유의 교육적 필요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어서 인문고전 텍스트를 활용한 어린이 철학교육의 실천 방향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논의 내용은 어린이 철학교육과 변증법적 사유와의 관련성, 인문고전의 교육적 가치, 그리고 인문고전을 통한 어린이 철학교육의 방향 순으로 진행하였다. 사람은 개인적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 가진 인식을 끊임없이 바꾸며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개인의 인식을 바꾸며 발전시키는 과정이 변증법적 사유이다. 변증법적 사유는 단순히 개인 혼자만의 인식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듀이의 경험이론에서 알 수 있듯이, 인식의 주체와 객체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질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사유는 인식의 주체와 객체 상호 간의 유기적, 질적 발전이다. 이러한 변증법적 사유는 초등학교 교육현장에서 필요한 사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를 가능케 하는 것이 어린이 철학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어린이 철학은 ‘스스로 생각하기’, 즉 ‘철학함’을 통해 듀이가 말하는 ‘질성적 사고’, ‘반성적 사고’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사유로 볼 수 있다. 변증법적 사유 측면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어린이 철학교육은 인문고전적 텍스트가 반영된 철학교육이다. 즉, ‘성찰’, ‘공감’, ‘공동체 인식’, ‘비판적 인식’, ‘휴머니즘’ 등 인문고전의 가치가 있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교육 내용이다. 현재 한국의 초등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이상적 목표를 달성하면서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은 ‘인문고전적 텍스트가 반영된 철학교육’이다. 그렇기에 실제 우리나라 교육과정 내 교과목의 내용, 수업 상황 등을 고려하여 텍스트의 선정 및 재구성, 철학교육 방법 고안이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의 소통 과정에서 사실과 가치가 혼합된 융합적 사고가 일어나도록 사고 발문을 구성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 각자의 표현이 글과 그림 등 여러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각자의 표현에 대한 피드백도 이루어져야 변증법적 사유가 일어날 수 있다. 어린이 철학교육은 이론적인 문제보다는 교사에 의한(교육과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적인 문제이다. 어린이 철학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사들의 ‘실천’이며, 이로써 이루어지는 교육의 사례를 통한 구체적인 방향 제시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귀결된다. 결과적으로 인문고전을 통한 어린이 철학교육은 학습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우선이며, 가르치는 교사가 변증법적 사유가 담긴 기본 방향 속에서 지속적으로 수업 사례를 만들고, 학습자와 함께 공동의 탐구를 해나갈 준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어린이 철학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실천이 이루어진다면 변증법적 사유에 의한 학교 교육은 더욱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변증법의 기본법칙으로서의 '양질전화' 검토 : 헤겔 논리학과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한 엥겔스 『자연변증법』 독해
양질전화, 대립물의 상호침투, 부정의 부정이라는 이른바 ‘변증법의 3대 기본법칙’은 그 함의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채 변증법을 요약하는 도식으로 사용되거나, 변증법의 풍부한 논의를 단순하게 도식화하는 것으로 비판받아왔다. 본고는 ‘3대 법칙’을 수용하거나 비판해야 할 완성된 법칙이 아니라, 맑스주의에 고유한 ‘유물론적 변증법의 형성’이라는 담론사의 지평 속에서 발견되어야 할 하나의 국면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본고는 3대 법칙이 처음으로 정립되는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으로 되돌아가 그 이론적 근원을 추적한다. 엥겔스는 양질전화, 대립물의 상호침투, 부정의 부정을 자연·역사·사유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변증법의 기본법칙으로 정립하며, 세 법칙을 각각 헤겔 논리학의 「존재론」, 「본질론」, 논리학의 전체 체계에 대응시킨다. 그중에서도 ‘양질전화’가 주된 분석대상이 되는데, 이는 나머지 두 법칙이 실제로는 헤겔 논리학 전체 체계의 진행에 관한 서술로도 이해될 수 있지만 질, 양, 한도의 범주는 헤겔 논리학에서 국지적 위상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질전화 법칙은 헤겔 논리학을 넘어서 고유한 유물론적 변증법이 창출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실마리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3대 법칙’과 양질전화 법칙을 역사적·담론적인 구성물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은 『자연변증법』이 미출간된 불완전한 저작이라는 점에서 타당성을 지닌다. 맑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적 방법론을 철학적 층위에서 정리한 독자적인 저서를 집필하지 않았고, 『반뒤링론』과 『자연변증법』마저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체계적 저술로 이해되기 어렵다. 따라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후대의 맑스주의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체계로 성립될 수 있었으며, 그러한 이유로 본고는 양질전화에 대한 후대의 통상적 이해에서 시작하여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에서의 논의로 역추적해 들어간다. 3대 기본법칙에 대한 후대의 이해는 ‘발전(Entwicklung)’의 범주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역사적인 ‘변증법적 유물론’ 담론에서 3대 법칙은 발전의 양상과 방향성을 이해하기 위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때 양질전화 법칙은 통상적으로 발전의 관점에서 양적인 축적과 (결절점에서의) 질적 전화를 설명하는 법칙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실제로 『자연변증법』을 검토하면 상황이 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변증법』에서 엥겔스는 3대 법칙을 변증법의 기본법칙으로 정식화하고 있지만, 각 법칙의 내용이나 법칙 간의 관계를 선언 이상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당대 자연과학에서의 발견들에서 변증법이 드러나는 풍부한 양상을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고는 『자연변증법』에서 가장 주되게 드러나는 것이 ‘연관(Zusammenhang)’ 범주임을 주장하며, ‘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연관’을 중심으로 양질전화의 내용을 분석한다. 2장은 『자연변증법』 전체에서 엥겔스가 양질전화를 크게 네 가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적축적-질적도약’이라는 통상적인 이해 이외에도 양질전화는 ‘양적 변화와 질적 변화의 상응’, ‘양적 차이가 곧 질적 차이’, ‘양적 규정성 자체가 질적 규정성’이라는 상이한 양상으로도 드러난다. 이러한 징후적 독해는 양질전화가 자연과 인간세계에서 양적 규정성과 질적 규정성이 맺는 수많은 상호연관과 상호매개를 드러내는 법칙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3장은 헤겔의 「존재론」에서 드러나는 질(Qualität), 양(Quantität), 한도(Maß)의 범주를 원문의 순서에 따라 정리하며, ‘양질전화가 「존재론」에서 주되게 드러난다’는 엥겔스의 명제를 검토한다. 「존재론」에서 드러나는 ‘결절선(Knotenlinie)’의 논리가 양적축적-질적전화와 거의 동일한 구조라는 점에서, 엥겔스의 명제는 좁은 의미에서 타당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동시에 질과 양의 다양한 연관과 매개를 드러낸다는 넓은 의미에서도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헤겔의 질과 양, 한도의 서술이 논리적 서순에 따라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엥겔스의 양질전화는 헤겔의 논리학의 단순한 전용(轉用)이 아니라 독창적인 재구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울러 대립물의 상호침투와 부정의 부정이 헤겔 논리학 전체를 구성하는 부정의 구조를 드러내는 반면, 질·양·한도가 국지적인 위치만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양질전화 법칙을 유물론적 변증법의 형성과정에서 드러나는 독창적인 이론화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The so-called “three fundamental laws of dialectics”―“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the interpenetration of opposites,” and “the negation of the negation”―have often been criticized for reducing the complexity of dialectical thinking to an oversimplified schema. Rather than treating these laws as fixed doctrines to be accepted or dismissed, this thesis places them within the historical discourse surrounding the formation of materialist dialectics in Marxism. To that end, it returns to Engels's Dialectics of Nature, where the laws were first proposed, in order to examine their theoretical basis. Engels presents the three laws as universally applicable to nature, history, and thought, and aligns each with a different part of Hegel's Logic: 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with the Doctrine of Being, the interpenetration of opposites with the Doctrine of Essence, and the negation of the negation with the overall movement of the logical system. This thesis focuses on the first law because, unlike the other two, the categories of quality, quantity, and measure hold only a limited position within Hegel's system. 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therefore offers a useful vantage point from which to understand how a specifically materialist dialectics takes shape beyond Hegel. Viewing the three laws, and this law in particular, as historically and discursively produced is supported by the status of Dialectics of Nature as an unfinished and unpublished manuscript. Since Marx and Engels never developed a single comprehensive philosophical work explaining their dialectical method, and since even Anti-Dühring and Dialectics of Nature lack a fully systematic structure, “dialectical materialism” emerged as a coherent system only in later Marxism. For this reason, the thesis begins with widely circulated later interpretations of 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and then reexamines Engels's own account. In the later development of Marxist theory, the three laws were commonly interpreted through the concept of “development,” and were presented as principles explaining how change occurs and where it is directed. In this framework, 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was taken to mean that gradual quantitative increase results in a qualitative change once a certain limit is reached. A return to Dialectics of Nature, however, indicates that Engels's position is not fully consistent with this simplified interpretation. In Dialectics of Nature, Engels presents the three laws as basic laws of dialectics, but does not offer detailed explanations of their content or their relations. Instead, he focuses on showing examples from contemporary natural science in which dialectical change appears. This thesis argues that the category of interconnection (Zusammenhang) is more central in Dialectics of Nature than the category of development. On this basis, it analyzes the law of 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by focusing on interconnection. Chapter 2 shows that Engels describes 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in several different ways across the manuscript. Alongside the familiar view that (1) quantitative accumulation produces a qualitative leap, he also explains (2) cases in which a quantitative difference is itself a qualitative one, (3) cases in which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changes correspond to one another during transformation, and (4) cases in which quantitative determinations directly function as qualitative ones. This approach reveals that Engels treats the relation between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determinations in more than one way throughout Dialectics of Nature. These varied formulations indicate that the law concerns a range of mediations linking quantity and quality in both natural and social processes. Chapter 3 examines the categories of “quality(Qualität),” “quantity(Quantität),” and “measure(Maß)” in the order they appear in Hegel’s Doctrine of Being and thus evaluates Engels’s claim that 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is developed there. The logic of the “nodal line(Knotenlinie)”—where quantitative change culminates in qualitative transformation—supports Engels’s claim in a narrow sense, as it corresponds to the widely accepted model of the law. At the same time, because Hegel also develops broader modes through which quality and quantity mutually mediate one another, the claim is likewise valid in a broader sense consistent with the argument of this thesis, which understands 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as naming the structure of their interrelation itself. Moreover, because Hegel's treatment of quality, quantity, and measure is situated within a specific and limited part of the logical sequence, Engels's understanding of 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should be regarded not as a simple borrowing from Hegel but as an original reconstruction. While the interpenetration of opposites and the negation of the negation correspond more directly to the overall structure of negation in Hegel's logic, the categories of quality, quantity, and measure occupy only a local position. For this reason, Engels's formulation of this law can be interpreted as a distinctive theoretical development in the formation of materialist dialectics.
이 논문의 목적은 [훈민정음]의 삼분법을 고찰하고 그것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초, 중, 종성의 모아쓰기(合字)가 훈민정음 제자원리의 핵심이라는 논증을 한 뒤 그 구조가 변증법적으로 파악된다는 것을 보이는 데에 있다. 이러한 시도는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을 드러내 주는 근거중의 하나인 삼분법과 모아쓰기를 변증법을 통하여 일관성 있게 설명함으로써 한글 제자원리의 형이상학적 해석에 독창적인 관점을 세울 수 있게 하고 그 활용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변증법은 말의 기술, 또는 대화를 통해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화술, 또는 토론술을 의미하며 그 바탕에 대화의 논리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대화의 논리로서의 변증법은 '모순 대립과 극복의 논리', '역동적 변화의 논리', '전체화의 논리'라는 기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변증법은 헤겔에 이르러 전혀 새로운 차원의 논리로 바뀐다. 헤겔은 양립 불가능한 모순이 오히려 양립가능하다고 보며 더 나아가 진리를 모순되는 명제들의 통일로 파악했다. 이렇게 보면 헤겔 변증법의 기본적 특징은 모순/대립/반대되는 것들의 융합을 보여주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헤겔 변증법의 특징을 이렇게만 본다면 발전이라는 것이 없는 순환의 논리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바로 이것을 극복 해낼 수 있는 헤겔 변증법의 또 다른 측면은 원환구조로서의 변증법인데, 이는 이후 훈민정음의 원리를 분석하는 데 있어 구체적 방법론이 될 수 있다. 변증법의 원환적 구조가 훈민정음에 어떻게 내재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려면 우선 훈민정음에 나타난 삼분법과 모아쓰기를 고찰해야 한다. 삼분법이란 한 음(음절)을 초성, 중성, 종성의 세 구성요소로 분석하여 그 짜임새를 밝히고 다시 그 음성 자질에 따라 초성, 중성, 종성을 하위로 분류하여 그 체계를 세우는 방법을 말하는데, 이러한 특징이 모아쓰기를 통해 새로운 차원에서 드러남으로써 훈민정음은 다른 문자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형태적 독특함과 구조를 갖게 된다. 삼분법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선행연구가 있는데 대략 파스파문자의 주음 원리 및 위그르 문자의 영향이라는 견해, 운자와 범자의 영향이라는 견해, 등운학과 몽고운략의 영향이라는 견해, 성운학에서의 음절 분석 방법이라는 견해, 성운학의 반절법에 기초하여 그것을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견해와 성운학의 반절법과 차자표기의 영향이었다는 여섯 가지 견해로 압축할 수 있다. 훈민정음의 삼분법의 형성 배경에 관해서도 학자들 간에 많은 논의들이 있으나 결국에는 훈민정음의 창제동기와 목적에서 그 기본 배경을 찾아 볼 수 있다.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은 우리말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우리들의 언어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조선 한자음과 중국 한자음을 바르게 적을 수 있는 소리글자를 제작하는데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상적인 소리글자를 만들기 위해서 전제된 방법이 곧 한 음(음절)을 초성, 중성, 종성의 세 구성요소로 분석하는 삼분법이므로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은 훈민정음 삼분법의 형성 배경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훈민정음 삼분법은 모아쓰기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한글은 문자단위를 그대로 배열하지 않고 그것을 일정한 원칙에 의해 서로 결합시켜 단어와 문장을 표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원리 때문에 문자단위와는 다른 별개의 표기 단위가 존재하게 된다. 이것을 모아쓰기라 한다. 그런데 제자해에 언급된 창제원리로 보면 흔히 초성에 대해서는 '발성기관 상형의 원리'와 '가획의 원리'를 거론하고 중성에 관해서는 천지인 삼재의 원리를 말한다. 이 둘은 그것들이 전혀 다른 원리에 근거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훈민정음 창제의 통일적이고 일관적인 원리 파악에 어려움을 준다. 필자는 이 원리를 파악할 때에만 비로소 모아쓰기(合字)라고 하는 한글의 독특한 표기방법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훈민정음 창제 원리의 기저가 되는 성리학적 사고의 출발점을 태극론으로 보았다. 태극도설은 무극 - 태극 - 음양 - 오행의 순서로 관념을 제출하고 있는데 음양과 오행은 무극(또는 태극)으로부터 이끌어져 나오고 오행으로부터는 만물이 이끌어져 나온다. 이것들은 서로 간에 무관해 보이고 원천인 태극과도 무관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즉 태극은 천지만물의 근본원리이고 태극론을 바탕으로 하는 훈민정음의 초성의 제자원리(상형과 가획)와 중성의 조형원리(천, 지, 인)등은 결국 하나의 글자라고 하는 전체의 한 계기인 것이며, 이러한 전체는 본래 하나인 것이 스스로를 구별해 전개해 나가는 변증법적 생성과정과도 합치한다. 이렇듯 태극이 훈민정음 창제원리에 있어 근원적인 실체이자 전체라면 초, 중, 종성은 전체인 태극이 스스로를 전개해 나갔다가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특수한 계기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終聲復用初聲'의 원칙을 살펴보면 끝소리는 별개의 원칙에 따라 다시 만들어 쓰는 것이 아니라 첫소리를 가져다 쓴다. 끝소리에 첫소리를 가져다 쓰는 것은 끝나는데서 다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시작이 되는 단초가 모든 전개 과정을 잠재적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하나를 셋으로 나누고 이 셋을 다시 하나로 합하는 분석과 합성의 원리(모아쓰기)가 훈민정음의 밑바탕에 깔려있는데, 이로써 훈민정음에는 변증법적 원환 구조라고 하는 형이상학적 구조가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훈민정음에서는 하늘을 상징하는 초성과 땅을 상징하는 종성을 매개하는 중성이 사람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사람을 매개로 우주가 통일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훈민정음 창제원리의 인간학적 핵심을 보여준다. 결국 훈민정음은 인간의 의식을 매개로 개념화되는 사물의 인식원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인식의 표현 도구인 문자 역시 인간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인간중심적 원칙을 담고 있는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rgue the following things: At first, we examine the Hangul's trisection structure and making together of initial sound, vowels and a final consonant which is closely connected with the former and is an essential element of the Hangul 'principle. And then that structure is understood by the dialectical system. This argument contributes to set up the creative view point about the metaphysical interpretation of Hangul principle and to extend the practical use of Hangul typography design. With Hegel, dialectic acquired a new dimension of logic. It is the unity of contradiction and circular progress of necessary elements. In Hangul's structure, there is a dialectical aspect. Hangul's trisection is constituted of three sounds, and they get a new level of feature. This makes Hangul's unique shape and structure. As we know, Hangul's metaphysical principle is Taeguk, the Great Absolute and this is the basic principle of all things of nature. Production principle of initial sound is imitation of speaking organ, and that of vowels is three elements, that are heaven, earth, and human. But these principles are the moments of one character, the whole and this process is at one with dialectical process, which develops and identifies itself. In conclusion, in Hangul we can see the process of unifying the cosmos. The initial sound symbolizes the heaven, the final consonant the earth, but these two sounds are mediated with vowels which symbolizes the human. This is the Hangul's anthropological essence. So Hangul has an epistemological principle of things, which is mediated with human consciousness and human-centric rule, which claims the characters, expression of recognition, have to focus at the human.
본 논문은 식민 말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평에 빈번히 거론된 ‘변증법적 관점’을 통해 이들의 현실 대응에 관해 알아본 논문이다. 흔히 전형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식민 말기는 파시즘의 유행이라는 세계적 경향과 더불어 제국주의 일본의 군국주의화 경향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던 시기였다. 또한, ‘사실의 시대’라는 표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식민 말기는 지성에 의한 세계 개조라는 이전 시기의 희망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기에, 마르크시스트 역사철학자들과 문학 비평가들은 변증법에 의존하여 당대를 ‘시민사회의 분열’이라 정의하고 역사 발전에 대한 믿음을 이론적인 수준에서 구체화하고 있었다. 본 논문은 이들의 비평들을 살펴봄으로써, 변증법이 일제의 전체주의 담론에 어떻게 대항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연구하였다. 식민 말기의 마르크시스트들은 개별성과 보편성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는 변증법적 관점의 지반 위에서, 일본 제국의 전체성을 위해 모든 개별자들을 폭력적으로 도구화하려는 논리에 대항하였다. 2장에서는 식민 말기의 대표적 역사철학자들인 박치우와 서인식의 변증법을 다룬다. 세계사의 발전에 대한 믿음이 전체적으로 희미해졌던 식민 말기는 역사 발전을 합리적으로 구명하는 역사철학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던 시기였다. 이에 발맞추어 논단에 등장한 역사철학자들은 임화와 김남천으로 대표되는 문학 비평가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박치우는 현상에 대한 파토스적 파악과 ‘변증법적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에 따르면 현실의 모순을 단순한 관조적 대상으로 살펴보는 것은 시대의 위기에 대응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다. 또한 박치우는 시민 사회의 합리성에 대한 전방위적 의심으로부터 출현한 비합리주의적 조류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한편, 시민사회의 형식논리학적 관점이 지닌 한계에 대한 변증법적 관점의 우월성을 논하였다. 이러한 박치우의 변증법은 ‘현실존재의 운동논리’를 자임하며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을 강조하는 동시에 주체의 파토스적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본 논문은 박치우의 변증법이 ‘개별자의 자각’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동아협동체 논의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제국의 담론에 대한 변증법의 대응에 관해 고찰해보기도 하였다. 한편 서인식의 변증법은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의 정교한 매개를 구성하려는 시도이다. 개인이 곧 전체요, 전체가 곧 개인이 되는 시대를 희구하였던 서인식은 현상으로부터 일반적인 원리만을 추출해내는 고전경제학의 방법론과, 현상의 개별성만을 바라보는 역사경제학파를 모두 비판하며 개별성에 매개된 보편성, 보편성에 매개된 개별성을 헤아리는 변증법적 관점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인식은 근대의 개인주의를 지양하여 개인과 전체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원리야말로 위기에 빠진 시민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견지에서 서인식은 문화의 개별성과 보편성을 조화에 이르게 하기 위해 정치적 억압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동아협동체 논의에 개입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의 주장을 피력하였다. 개별성과 보편성의 정교한 매개를 구성하고자 하는 서인식 변증법의 기획은 모든 현상을 역사에 용해하여 내재적으로 파악하려는 변증법적 관점을 충실히 따라 일제의 전체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할 수 있었다. 3장에서는 식민 말기 마르크시스트 문학 비평가의 거두라 할 수 있는 임화와 김남천의 변증법을 살펴보았다. 카프 해산 이후 문단은 ‘말하려는 것과 그리려는 것의 분열’로 대표되는 보편적 위기·침체의 상황에 빠져 있었다. 임화와 김남천은 변증법적 관점을 참조하여 동시대의 문학적 실천들을 논평하고, 그들 나름의 문학론을 펼침으로써 식민 말기의 현실에 대응하였다. 임화는 카프 해산 이후에도 암흑 속의 광명을 믿으며 변증법적 관점을 견지하였다. 과거-현재-미래를 구체적으로 매개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변증법적 역사 철학 및 역사 서술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환기하였던 것이다. 한편, 임화의 변증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약간의 입장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주체 중심성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개별성과 보편성의 변증법적 조화를 문학론의 수준에서 모색해보는 전형 논의였다. 여기서 임화는 주인공=성격=사상의 도식을 제시함으로써 소설 속에 강한 주체의 형상이 들어서기를 희구하였다. 주체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임화 변증법의 특징은, 한편으로는 일제의 전체주의적 담론에 대항해 민족의 개별성을 강조하는 탁월함으로 이어지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한 주체의 형상이 드러나지 않는 동시대의 소설 작품들로부터 매개적 계기를 발견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카프 해산 이후, 김남천은 주체의 소시민성에 대한 반성에 천착하였다. 고발론과 모랄론은 그러한 맥락에서 제기된 문학론이었다. 고발론과 모랄론은 주체의 부정적 속성을 폭로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것이 단지 주체를 부정하기만 하는 허무주의적 견해를 위해 제출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김남천이 의도했던 것은 ‘부정의 부정’, 즉 변증법적 지양이었던 것이다. 고발론과 모랄론을 제기하고 있는 일련의 비평들을 살펴보면, 그것이 전체로서의 역사와 개별자의 나란한 호흡에 대해 고민하려는 시도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김남천 변증법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풍속론과 관찰문학론을 통해 깊어진다. 경제·정치·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전체로서의 ‘풍속’에, 좌충우돌하는 개별자들을 용해함으로써 역사 발전의 문학적 형상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이다. 이러한 김남천의 문학론은 특히 프레드릭 제임슨의 총체성 논의와도 궤를 함께한다는 점에서도 의미 깊은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김남천의 이러한 관점이 시민 사회적 조건에 대한 천착으로부터 발전된 것이라는 점이다. 김남천에 의하면 시민 사회라는 조건에서의 역사 발전은 영웅적 인물에 의한 고대적 역사 발전관과는 차이를 둘 수밖에 없다. 김남천이 말한 바, 개별자들의 좌충우돌로 이루어진 역사의 형상이 바로 이러한 관점에 입각한 것이었다. 김남천 변증법의 이러한 특징은 파시즘적 영웅의 형상을 거부함과 동시에 전체의 한갓된 도구로 환원되는 개별자의 형상 또한 거부함으로써 전체의 지배라는 일방향으로 흘러가던 당대의 현실에 대해 거리를 확보해낼 수 있었다. 본 논문은 개별성과 보편성의 합리적 매개를 지향하는 ‘변증법적 관점’이야말로 전체주의적 폭압에 대한 유력한 저항 담론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핵심적인 문제의식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변증법적 관점 역시 발화 위치가 어디이냐에 따라 정반대되는 입장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국의 지식인과 식민지 지식인의 변증법이 서로 다른 양상으로 표출되는 장면이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일의 기회를 기약하기로 한다.
강정우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4 국내석사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론』에서는 정의로운 국가를 운영하는 원리이자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선의 이데아가 제시된다. 변증법(辨證法)은 이 선의 이데아에 따른 이상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 통치자인 ‘철인왕’을 길러내기 위한 최고 수준의 교육과정이다. 해석에 따라서, 플라톤이 변증법을 통해서 드러내는 교육의 목적은 오늘날의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그가 말하는 ‘선의 이데아’는 우리의 삶과 별도로 존재하는 초험적 실체가 아니라 삶 속에 내재된 가치기준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철인왕’은 바로 그 선의 이데아를 향한 변증법적 교육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최고 수준의 자아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욱이 이때의 ‘철인왕’은, 그것에 대한 통상적인 해석과는 정반대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봄으로써 자신의 삶에 감춰진 선의 이데아를 찾아내어 그것에 헌신하고 사람들을 그것에 헌신하도록 이끄는 자기주도적인 학습자이자 교사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플라톤의 『국가론』에 철인왕을 기르기 위한 교육과정으로 등장하는 변증법의 원리를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오늘날 학교교육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학습자 중심 교육’과 관련하여 어떤 시사를 제공하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변증법을 통해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간이 도달해야 하는 가장 이상적인 지향점을 가리킨다. 이데아는 인간의 노력으로 다가서기 힘든 먼 곳에 존재하며 종교적인 신비의 색을 띄는 초험적 관념과 같이 보인다. 그러나 플라톤의 저서를 통해서 드러나는 선의 이데아는 인간의 삶과 밀착되어 나타난다. 이데아는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통한 이성의 사유로 도달할 수 있으며 삶에 뿌리박고 있을 때 이데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데아는 관념적 추상성을 벗어버리고 구체적인 삶의 내용을 담은 마음이다. 이데아는 개별적인 삶의 현상과 관련되며 그것을 포괄하는 원리이자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다. 이데아는 삶을 살아가며 형성된 인간의 마음을 통해서 획득된다. 이데아는 인간의 의도적인 노력과 의지로 획득할 수 있는 지식으로서 교육을 통해 실현된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이데아의 인식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통해서 드러난다. 대화를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주제에 대하여 계속적인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대화의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닫게 하며, 이에 따라 그 상대방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한 ‘마음’을 얻게 된다. 대화 상대방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는 추상적인 관념이었거나 혹은 전체를 포괄할 수 없는 개별적인 덕의 한 사례였음을 깨닫는다. 대화 상대방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닫힌 마음은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으며 의견 안에 숨겨진 개념과 같은 완전한 지식의 추구를 위해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무지의 자각은 이전에는 자각하지 못한 모름의 대상을 알게 되는 것이며, 여기서 앎의 대상은 무지를 깨달은 자신의 ‘마음’이며, 이 ‘마음’은 새로운 앎의 방법이 된다. 무지를 자각한 ‘마음’은 동굴 안의 수인을 동굴 밖의 빛을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누군가가 수인의 고개를 돌려주며 진짜 빛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교육의 시작을 드러낸다. 동굴 밖의 진짜 빛의 세계를 알고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에서 이데아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 이데아에 비추어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 안의 모든 것이 실재가 아니라 외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수인은 이제 동굴 밖의 진짜 세상을 향해 스스로의 의지로 족쇄를 끊어버리고 나아간다. 외부에서 볼 때 누군가의 힘으로 수인을 동굴 밖의 세계로 끌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지로는 수인이 자신의 힘으로 동굴 밖의 진짜 세계가 있다는 것, 자신이 속한 동굴의 안의 세계는 그 세계의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그 세계로 나아가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동굴의 안과 밖은 무지의 자각을 경계로 하여 형성되는 두 가지 ‘마음’에 관한 공간적 비유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 점에서 수인이 족쇄를 끊고 동굴 밖의 세계로 나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초험적 세계로 비약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뜻, 나아가서 그렇게 들여다봄으로써 동굴 안의 혼란스럽고 분열된 양상에 질서를 되찾아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변증법을 통해서 수인은 동굴 밖의 세계가 내 삶의 외부가 아니라는 것, 동굴 밖의 참된 빛은 결국 내 마음 속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동굴 밖의 세계가 마음의 이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는 오늘날의 용어로 ‘개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개념이 마음으로부터 이탈하면 그 성격과 의미가 변질되듯이, 이데아는 그것이 마음과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는 순간 그 성격과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동굴 밖의 세계를 안다는 것은 그처럼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를 마음에 형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데아가 이처럼 마음 안에 놓이는 개념이라는 점은 철인왕이 동굴 안으로 되돌아와서 하게 되는 ‘교육’의 성격에 관해서도 재해석의 단서가 된다. 이데아는 마음과 별개의 것으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데아 그 자체는 직접 일러줌으로써 가르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준다.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는 말로써 일러줄 수 없으며, 오직 학습자가 이때까지 살면서 형성한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검사함으로써 학습자가 자신의 마음 안에서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대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무지를 깨달아 지식을 형성하도록 한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제시된 변증법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은 언어습득 이전의 무시케 교육, 언어를 통한 개별 교과교육, 그리고 이를 통합하고 세계만물에 대한 조망의 능력을 획득하는 변증법 교육으로 제시된다. 에토스의 형성을 바탕으로 하는 무시케 교육, 개별 교과의 형식을 통해 외부 세계의 질서를 배우는 교과교육, 그리고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계승한 변증법 교육의 단계는 인간의 삶 그 평생을 걸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 모든 교육의 단계가 곧 변증법 교육에 포함된다. 무시케는 삶을 살아가는 에토스적 본능을 이데아와 밀접하게 연결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교과교육을 통해서는 외부 세계의 질서와 원리를 배우게 된다. 변증법은 좋은 것을 향한 근원적 힘과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질서를 내면화하여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다. 변증법 교육을 통해 학습자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마음, 즉 이데아를 획득한 마음을 얻게 된다. 이 점은 수업의 주도권이 학습자에게 있는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교사와 교육내용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설명해 준다. 교사는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학습자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 안에서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한다. 학습자가 획득되어야 할 지식의 핵심에 개념이 있다고 보는 한, 그것은 학습자 개인이 이제까지 살아온 삶과 별도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속에서 학습자가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며, 이 점에서 플라톤의 교육론은 학습자 중심 교육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플라톤의 변증법은 오랜 시간의 삶을 통해서 철학자가 스스로 구현하는 것인 만큼,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지식은 학습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 속에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대화 속에서 산파로서의 교사는 학습자에게 지식을 직접 전달할 수 없다. 직접 전달되는 것은 개념의 사례이지 개념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습자는 스스로 지식을 형성하지만 그 곁에는 언제나 안내하고 인내하는 교사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교육에서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습자 중심 교육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기존의 교사 중심 또는 교과 중심과 대비되는 성격으로서의 한정적인 관점에서의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학습자가 스스로 내부에 형성하는 것이 지식이라는 점을 밝히는 인식론적 탐색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식의 형성에 관여하는 흥미와 배경, 동기와 같은 학습자의 심리적 요소가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흥미와 동기가 아닌 사적 본성을 넘어선 공적 차원의 에토스적 성격을 가지는 것임을 드러내는 탐색이 필요하다. 학습자 중심 교육이 공교육을 중심으로 한 학교 현장 위주로 적용되는 실천적 주장의 한계를 벗어나, 학습자의 전체 삶을 포괄하는 자기주도적인 평생 교육적 성격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학습자의 지식의 형성을 돕는 교사의 역할은 단순히 학습자의 외부에서 도움을 주는 소극적인 활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학습에서 교사의 역할이 조력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에게 에토스를 형성하게 하고 지식을 낳게 하는 산파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하며 교사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이고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플라톤의 변증법을 통해서 추구하는 이데아로서의 마음은 인식의 대상(내용)이자 방법이다.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는 오직 마음과 마음의 교섭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 마음에 형성된 개념은 오직 마음과 마음의 교섭을 통해서만 전달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변증법의 실체가 내용의 측면과 방법의 측면이 함께 포함된 지식을 형성하는 ‘살아있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을 소유한 교사는 곧 교육의 내용과 방법으로서의 변증법 자체이다. 동굴 안의 수인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가지만 그 시작에 고개를 돌려준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듯이, 마음과 마음 밖의 세계가 만나는 곳에 개념으로 안내하는 교사가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실현하고 세상을 조망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철인왕은 다름 아닌 오늘날의 교사이다.
발터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 : 『Passagen-Werk』를 중심으로
이 논문은 벤야민의 독창적인 인식 방법론인 '변증법적 이미지'를 그의 주저 『아케이드 프로젝트(Passagen-Werk)』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벤야민의 아케이드 연구는 20세기 초 유럽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 속에서 생겨났다. 가까운 미래의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자본주의 모더니티의 판타스마고리아는 대중을 현혹하고 있었지만, 19세기와 제 1차 세계 대전을 통해 체험한 산업 테크놀로지의 오도된 수용은 이러한 약속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를 명확히 드러냈다. 당시 1930년대 말의 유럽 상황은 벤야민에게 매우 위험스런 것이었으며, 현 상황을 냉철히 통찰하여 파국을 향해 치닫는 역사적 상황에 저항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문제였다. 이를 위해 벤야민은 19세기를 자신의 현재에 대한 원사로 여기며 전자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 착수한다. 현재의 신화적 속박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선조들이 겪은 억압의 실재에 의해서 인도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으며 우리의 시선은 과거를 지향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벤야민의 역사 철학은 모든 역사주의적 방식들과 엄격히 구분된다. 벤야민은 역사주의가 역사의 상이한 여러 계기들 사이에 인과관계를 정립하는데 만족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역사란 불연속적인 것이며 현재와 단절된 과거가 현재와의 비판적 관계에 놓일 때 그것은 비로소 진리 인식의 잠재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벤야민의 관심은 역사적 사실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있을 수 있었던 것들의 힘, 역사의 잠재성 속의 이미지를 발견해 내는데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는 변증법적 이미지가 관념을 대체한다. 변증법적 이미지가 이러한 인식적 방법론의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것은 세계를 이미지로 쓰여진 하나의 텍스트로 바라보며 그러한 이미지의 독해를 통해 진리를 드러낸다는 벤야민의 독특한 인식론에 기반한다. 신학적 지평에서 진리의 물음을 새로이 제기하고 있는 초기의 언어이론에 따르면 언어, 즉 사물의 정신적 본질과의 비감각적 유사성을 담지한 이름언어를 통해 인간은 사물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언어가 단지 의사소통을 위한 기호로 전락해 버리면서 이러한 모방적 원천은 상실되고 말았다. 이를 애석해하는 벤야민은 새로이 알레고리가 가진 진리 인식의 잠재성에 주목한다. 대상을 전체적 맥락에서 파편화시켜 본래의 의미를 비워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알레고리는 의미소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직접적으로 대상의 정신적 본질, 즉 이념과 관계 맺는 언어 형식이었으며 따라서 진리 인식의 문제와 직결될 수 있었다. 이러한 알레고리적인 방법을 수용하여 벤야민은 '성좌'의 원리에 기반한 새로운 인식론을 세워낸다. 환원 불가능한 이질성을 보존한 현상의 요소들을 성좌와 같이 나열하는 것. 따라서 각 요소들간의 변증법적 대립의 긴장을 극대화시킴으로서 진리가 섬광처럼 드러날 때 그것을 읽어내는 방법이 '정지상태의 변증법'이다. 이는 현실의 이중적 구조, 즉 현대와 원사, 현대와 신화, 꿈과 현실이라는 대립적 가치들이 절대적 이분법을 이루는 가치들이 아니라 동일한 현실에 내재한 양면성을 구성한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그리고 현실의 이러한 이중적 구조를 포착하는 순간에 섬광처럼 나타나 는 이미지가 바로 변증법적 이미지이다. 따라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나타나는 변증법적 이미지는 벤야민 자신의 시대와 그것의 19세기의 기원들을 나란히 병치함으로서 이 시대의 사회적 상황들과 산물에 내재하는 이중성을 가시화하기 위한 방법이 된다. 과거와 현재의 강력한 대면 안에서 '변증법적 이미지'로 나타난 역사적 대상은 인식의 충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벤야민이 19세기의 다양한 현상들을 현재와의 비판적 관계 속에서 재구성하려 하면서 특히 문화적 현상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은 하부구조의 변혁이 아닌 상부구조의 변혁에 달려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 문화적 형식이 모더니티와 결합되는 방식을 다루면서 모더니티에 자리잡은 신화적 지형이 어떠한 것인지, 나아가 자본주의라는 조건하에 문화의 영역 전반에 걸쳐 물화의 양상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밝혀 낸다. 벤야민에게 있어 19세기에 가장 두드러진 신화는 영원회귀의 문제였고, 생산력의 발전과 외관상 진보하는 듯이 보이는 역사 이면에는 끊임없이 그 자체의 영속적 구조를 재창조하고 인간을 그러한 구조하에 종속시키는 자본주의가 있었다. 최초의 원형쇼핑몰인 19세기의 아케이드에서 벤야민은 미발달 형태인 상품문화의 모든 특성들을 보았다. 상품 디스플레이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장대한 형식을 이루었고 이 도시공간의 물질적인 변형은 19세기 부르조아 계몽주의의 유토피아적인 꿈에 물적 형식을 부여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힘, 즉 고대의 신화와 현대의 자본주의라는 신화를 불러들였다. 또한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에 수반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출현은 지각의 대상들 자체를 변형시키고 그것들과 인간의 관계를 변형시켰으며, 예술 영역에서도 크나큰 변화를 초래하였으나 자본주의적인 조건 하에서는 문화적 혁신 또한 새로운 상품 형태로 쉽사리 수용되거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용도로 전환되는 추세를 보였다. 이처럼 벤야민이 그려내는 19세기의 이미지들은 기대와 속박의 요소가 뒤엉킨 것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판타스마고리아, 신화적 세계로서 재현된 19세기의 현실 이면에 존재하는 집단 무의식의 유토피아적 희망을 포착해 낸다. 전례없이 눈부신 생산력의 해방에 고무되었던 유토피아적 희망, '소망 이미지'는 판타스마고리아 안에 잠들어 있는 일시적인 꿈 형식이다. 그것은 속박 아래 있을 때 환영이지만 변증법적 이미지에 의해 그 가능성이 드러나게 되면 해방의 힘을 되찾는다. 여기서 꿈은 인간의 유토피아적인 욕구와 열망을 위한 피난처, 경험과 지식의 자율적 근원으로서 나타나며 이러한 꿈에서 깨어남이란, 잊혀진 유토피아적 잠재성의 흔적들을 회상함으로서 부활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현재를 깨어있는 세계로 경험하는데 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며, 부르조아 사회 질서의 단조로운 경험을 새로운 경험 개념에 따라 넘어서기 위해 현실의 힘을 모방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삶은 다시 한번 가치와 의미의 저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케이드 프로젝트』 는 모더니티가 파국을 향해 치닫던 시기에 19세기와 20세기의 모더니티를 상징하는 일상 생활의 기호들, 그리고 이들을 생산해 낸 문화적, 정치·경제적 상황을 탐구하였으며, 다양한 대상들을 문화 연구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현재의 폭압적 현실과 이전의 유토피아적인 소망이라는 변증법적 이미지로 가시화함으로써 모더니티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상의 대상을 통해 역사적 경험의 질을 추출해 내고자 하였던 벤야민은 세계의 물리적 대상들에 함축되어 있는 구원의 힘과 깨우침의 힘에 언제나 도취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힘을 현재에 실현하는 것이 그의 구원의 미학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였다. Die vorliegende Arbeit befasst sich mit dem dialektischen Bild der eigenen Erkenntnistheorie von W. Benjamin im Rahmen seines Werks "Das Passagen-Werk". Das Projekt von "Passagen-Werk" stammte aus dem Bewusstsein der europa¨ischen politisch-gesellschachftlichen Situation im 20.Jahrhundert. Phantasmagoria des kapitalistischen Modernismus, das die zuku¨nftige Utopie verspricht, ta¨uscht zwar das Volk, aber die falschen Rezeption der industriellen Technologie im Laufe der 19. Jahrhundert und des Ersten Weltkriegs bezeichnete die falsche Hoffnung des Versprechens. Die damaligen suropa¨ischen Situation was fu¨r Benjamin sehr gefa¨rlich, und es ist ihm ein grosses Problem ohne Verzo¨gerung, die heutige Situation klar zu erkennen und gegen die geschichtliche Situation, die sich an die Katastrophe orientierte, zu protestieren. Dafu¨r Benjamin das 19. Jahrhundert als eine Urgeschichte fu¨r sich selbst an, versuchte er, das neu zu bewerten. Um die heutigen mythischen Fesseln zu zerreissen, dachte er, daβ wir die Realita¨t u¨ber die Erfahrung unsere Vorfahren wissen musste, daβ unsere Sicht sich an die Vergangenheit orientieren musste. Deswegen kann man die Geschichtsphilosophie von Benjamin und die anderen geschichtlichen Methode voneinander unterscheiden. Er kritisierte daran, daβ Der Historismus begnu¨gt sich damit, einen Kausalnexus von verschiedenen Momenten der Geschichte zu etablieren. Er betrachtete die Geschichte als eine Diskontinuita¨t, und behauptete, daβ die Potenz der Wahrheit schon da ist, wenn die Vergangen ohne Zusammenhang von der Gegenwart eine kritische Bezug auf die Gegenwart hat. Benjamin interessierte sich nicht fu¨r die geschichtliche Wirklichkeit, sondern fu¨r die Kraft, die es geben konnte, d.h. fu¨r die Entdeckung des potentiellen Bildes. In dieser Konzeption erga¨nzt das dialektische Bild die Vorstellung. Der grund dafu¨r, daβ das dialektische Bild die Status solcher Erkenntnismethode hat, basiert auf die Benjamins Erkenntnistheorie, die die Welt als ein mit dem dialektischen Bild geschriebenen Text betrachtet. Nach der fru¨hen Sprachtheorie, die auf dem religio¨sen Horizont nach der Wahrheit fragt, konnte man durch die Sprach, d.h. die Namensprache, die geistige Wesen der Dinge und unsinnliche A¨nlichkeiten tra¨gt, das wahre Wissen. Aber nachdem die Sprache als ein Zeichen fu¨r das Kommunikationsmittel angesehen wurde, wurde die mimische Ursprung verloren. Das war sehr Schade fu¨r Benjamin, und er konzentriert sich auf die Potenz der Wahrheitserkenntnis der neuen Allegorie. Die Allegorie, die ein Gegenstand im gesammtlichen Kontext fragmentarisch macht und die eigentliche Bedeutung leer macht und damit neue Bedeutung gibt, war frei von der Kommunikation. Danach bezieht sie als eine sprachliche From sich unmittelbar auf das geistige Wesen, mit anderen Worten auf das Bild. Mit dieser allegorischen Methode baut er eine neue Erkenntnistheorie auf dem Prinzip der Konstellation. Die Allegorie, die ein Gegenstand im gesammtlichen Kontext fragmentarisch macht und die eigentliche Bedeutung leer macht und damit neue Bedeutung gibt, war frei von der Kommunikation. Danach bezieht sie als eine sprachliche From sich unmittelbar auf das geistige Wesen, mit anderen Worten auf das Bild. Mit dieser allegorischen Methode baut er eine neue Erkenntnistheorie auf dem Prinzip der Konstellation. Die Faktoren der Homogenita¨tserscheinungen, die nicht reduzierbar sind, wie Konstellation aufzustellen, sind die Spannung der dialektischen Gegensa¨tzen zwischen allen Faktoren wie eine Blitze zu sehen: Das ist die Dialektik im Stillstand. Das ist eine dichotomische Struktur der Wirklichkeit nicht, d.h. das bezieht sich nicht auf die Wertigkeit der Gegenu¨berstellung wie Gegenwart und Urgeschichte, Gegenwart und Mythos, Traum und Wirklichkeit, sondern die Erkenntnis des Ausbauen der beiden Seiten, die es in der Gegenwart gibt. Und in diesem Augenblick, wo diese dichotomischen Struktur der Gegenwart gefangen wird, kommt ein Bild wie ein Blitz, das genau das dialektische Bild ist. Deswegen ist das dialektische Bild, das in "Das Passagen-Werk" auftaucht, eine Methode fu¨r einen Doppelsinn, den es schon in der gesellschaftlichen Situationen und Sachverhalten gibt, mit Hilfe von der Nacheinandersetzung von der Benjamins Zeit und die Ursprung im 19. Jahrhundert. Der geschichtliche Gegenstand, der in der kra¨ftigen Gegenu¨berstellung zwischen Gegenwart und Vergangenheit steht, ermo¨glicht das Stossen der Erkenntnis. Der grund dafu¨r, daβ Benjamin verschiedenen Erscheinungen im 19. Jahrhundert im kritischen Zusammenhang von der Gegenwart rekonstruieren und sich auf kulturelle Pha¨nomene konzentrieren wollte, ist die folgende: Die Mo¨glichkeit fu¨r das neuen Leben ist abha¨ngig nicht von der Reform der niedrigen Schichten, sondern Ho¨heren. Er bescha¨ftigte sich damit, daβ die kulturellen Formen vor allem mit dem Modern verbunden war, was die in der Materialisierung im ganzen Rahmen der gesamten kulturen Gebiete unter dem Kapitalismus war. Fu¨r Benjamin war die hervorragende Mythos im 19. Jahrhundert die ewige Wiederkehr, in der anderen Seite der Geschichte-obwohl sie als ein Fortschritt angesehen werden kann-gab es der Kapitalismus, der immer die ewige Struktur sich selbst rekonstruierte und den Menschen darunter legen lass. In der ersten Arkade im 19. Jahrhundert sah er alle Charaktere der Artikelkultur. Die Artikelausstellung, die man bis jetzt nicht gesehen hat, war gross geworden, die materielle Deformation des Stadtraums gab dem utopische Traum in der Aufkla¨rung eine materielle Form. Man sprach von der Kraft, die sein Bewusstsein beherrschen konnte, d.h. die Mythos in der Antike und die Mythos "Das Kapitalismus" in der Gegenwart. Die Erscheinung der neuen Technologie mit der Entwicklung der Produktionskraft deformiert Wahrnehmungsgegensta¨nde und ihre Beziehung auf den Menschen. Sie gab zwar der Kunstwelt einen grossen Einfluss aber unter der Bedingung des Kapitalismus war die kulturelle Innovation oder eine Form eines neuen Artikels geworden. Wie schon erwa¨hnt, war das Bild, das Benjamin malte, eine Durcheinandersetzung von Erwartung und Beschra¨nkung. Aber er sieht das Phantasmagoria, eine utopische Hoffnung des im Hintergrund der Wirklichkeit liegenden Massenunbewusstsein im 19 Jahrhundert, die als eine mythische Welt wiedererscheint. Das Wunschbild, das utopische Bild, das durch die grosse Produktionskraft ermuntert wurde, ist eine traumartige Form, die im Phantasmagoria ganz kurz schla¨ft. Das ist eine Ta¨uschung, wenn es im Fesseln, aber das kann eine Befreiungskraft bekommen, wenn es durch das dialektischen Bild eine Mo¨glichkeit haben kann. Der Traum erscheint hier als ein Zufluchtsorts und eine autonmische Ursprung der Erfahrung und der Wissens. Die Wachheit vom Traum bedeutet, daβ die vergessene utopische Potenz durch Erinnerung wiederleben kann. Das heisst, die Wirklichkeit muβ als die wachende Welt erfahrt werden: Um die monotone Erfahrung in der gesellschaftlichen Ordnung vom Bourgeois durch die neue Erfahrung zu u¨berwunden, muβ man die Kraft der Wirklichkeit meulich schaffen. Dadurch kann das Leben noch einmal ein Lagerhaus der Wertigkeit und Bedeutung. "Passagen-Werk" untersuchte allta¨gliche Zeichen, die den Modernismus 19. und 20. Jahrhundert- damals war der fast zu Ende gegangen-symbolisieren, und die politisch-kulturell-wirtschaftliche Situationen. Das zog auch verschiedene Sachverhalte und Gegensta¨nde in kulturelle Untersuchungsgebiete hinein. Das heisst: Das war durch das dialektische Bild Sichtbarmachen von der heutigen Gewaltta¨tigkeit und dem vorangegangenen utopischen Wunsch, damit das kritische Verstehen an dem Modernismus angeboten war. Benjamin, der durch allta¨glichen Gegensta¨nde und Sachverhalte die geschichtliche Erfahrungsqualita¨t bekommen will, konzentrierte sich immer auf die Kraft des Unterscheidens und der Ewigkeit, die in der physikalischen Gegensta¨nde in der Welt implizit sind. Sein Ziel entspricht der Realisierung solcher Kraft in der Gegenwart, der Ewigkeitsa¨sthet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