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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발터 벤야민의 루이 아라공 비판이 제기하는 문제들

      정의진(Jung, Eui-Jin) 경성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2 인문학논총 Vol.30 No.-

      발터 벤야민은 19세기의 파리를 매개로 서구 근대자본주의의 모더니티 및 20세기와의 변증법적인 역사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위한 그의 미완의 작업노트 ?파사젠베르크? 및 이에 대한 발제문 ?파리, 19세기의 수도?의 준비노트 등에는, 루이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에 대한 비판적 언급들이 있다. 아라공이 전면적인 역사적 각성의 단계로 전화하지 못하고 꿈과 신화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는 벤야민의 비판적 언급은, ?초현실주의, 유럽 인텔리겐치아의 최근의 스냅사진?의 초현실주의 비판, 즉 초현실주의의 마르크스주의적 정치화로의 전화를 제안한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동시에 벤야민은 ?파사젠베르크? 기획 초기에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가 엄청난 지적 영감을 제공하였음을 아도르노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백하기도 하였다. 사실 벤야민의 아라공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아라공이 ?파리의 농부?를 통해 표방한 현대적 신화론은 근본적으로 사회역사적인 관점에 입각해 있다. 나아가 벤야민의 꿈과 역사적 각성 혹은 육체적 감각과 비판적 이성의 변증법, 그의 몽타주적인 글쓰기 형식 등을 아라공의 신화론 및 콜라주적인 글쓰기와 대조해 보면, 그 차이점보다는 유사성이 두드러진다. 발터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라는 개념은 아라공의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와 그 근본 관점에 잇어서 매우 유사한 사유방식을 드러낸다. 벤야민이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제안한 세속적 계시 또한, 그 성격상 전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이라기보다는 벤야민 고유의 신학적 정치철학이 마르크스주의에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벤야민의 아라공 및 초현실주의 비판은, 그 비판의 쟁점들과 더불어 벤야민 자신의 사상적 변화과정 및 1920년대 말 유럽의 정치사회 상황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 KCI등재

      발터 벤야민의 알레고리론의 역사 시학적 함의

      정의진(Jung Eui-Jin) 韓國批評文學會 2011 批評文學 Vol.- No.41

      본 논문은 우선 발터 벤야민의 사상을 그의 알레고리론을 중심으로 정리하면서 벤야민의 알레고리론의 핵심은 그 근본적인 역사적 성격에 있음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벤야민에 따르면 알레고리의 역사적 성격은 상징의 비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성격에 대립된다. 상징이 초월적이고 비역사적인 현상과 본질의 일치를 가정한다면 알레고리는 역사적 현실과 초월적인 통합의 미적 이데올로기 사이의 균열을 직시한다. 알레고리는 상징의 초월적인 보편성과는 달리 현실의 균열지점들을 몽타주하면서 이를 통해 역사와 현실의 총체성을 현재적으로 재구성하는 사유의 방법론이다. 즉 알레고리는 현실의 의미작용양상을 철저하게 역사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사유와 글쓰기의 방법론이다. 그런데 벤야민의 역사적 알레고리론은 유대교적 신비주의라는 얼핏 비역사적이고 초월적인 사상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철저하게 역사적인 사유방식과 신학적 신비주의가 공존하는 양상은 벤야민이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본격적으로 수용한 1930년대의 글에서도 이어진다. 이에 대해 많은 논자들은 벤야민의 사상에 일관성과 체계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벤야민의 신학적 메시아니즘은 철저하게 역사적인 관점에서만 온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 본 논문은 벤야민의 사상을 특히 언어이론과 시학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기 위한 예비 작업이다. 그의 알레고리론이 현실을 역사적 총체성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것은 곧 현실과 역사의'의미작용방식'을 알레고리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과 역사의 의미가 문제의 중심에 놓일 때 어떤 이론도'언어'의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 벤야민은 지적 활동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자신의 신학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언어관과 시학을 체계화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리고 그의 언어이론의 핵심에는 시와 문학이 있다. 벤야민에 따르면 인간의 다양한 언어활동가운데 시는 표면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언어적 의미구성의 방법론 자체를 재구성하는 예술적 언어활동이다. 즉 벤야민의 언어이론과 시학에 대한 이해 없이 그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벤야민의 언어이론과 시학의 근본적인 역사적 성격을 고려할 때 이는 한국문학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참조사항이 될 수 있다. In the first place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Walter Benjamin's theory of allegory who took the position that the allegory's specificity is based on its radical historicity. Benjamin oppose the historical aspect of allegory to the unhistorical and mythic aspect of symbol. Contrary to the symbol which suppose the transcendental and unhistorical unity of the phenomenon and the essence the allegory takes the rupture between the historical reality and the esthetic ideology of transcendental unity as it is. By the montage of the ruptures of reality the allegory come to be a methode of thinking which recompose the total history and reality of the day. It means that the allegory is the methode of thinking and writing which recompose the mode of signification of the reality from a radically historical point of view. However the Benjamin's theory of historical allegory contains a judaic mysticism which seems to be unhistorical and transcendental. The coexistence of the radically historical methode of thought and the theological mysticism continued in his 1930s writings when he had accepted the historical materialism of marxism. Concerning this coexistence many theorists criticized the lack of coherence and systemicity. But the theological messianism in Benjamin's thought can be completely understood from his radically historical point of view. This paper is a preparation to recompose Benjamin's thought by the linguistic theory and poetics. If the Benjamin's theory of allegory is a total recomposition of reality from his radically historical point of view it means that his writing allegorically recompose'the mode of signification' of the reality and the history. When the sens of reality and history become a major problem any theory can not avoid the problem of language. From his first period of thought Benjamin concentrated on a systemization of his theological and historical linguistic and poetics. And the poem and the literature exist in the center of his linguistic theory. Benjamin thinks that the poem is an artistic act of language which recompose the mode of linguistic formation of meaning itself not his superficial message. Finally it is impossible to completely understand Benjamin's thought without a comprehension of his linguistic and poetics. And considering the radical historicity of Benjamin's linguistic and poetics It can be an important reference to newly recompose the korean literature.

    • KCI등재

      발터 벤야민의 이미지 사유

      김현강 ( Hyun Kang Kim ) 한국독일현대문학회 2004 독일현대문학 Vol.22 No.-

      이 논문은 발터 벤야민의 사유에서 이미지, 서술, 번역의 문제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되며 등장하는 매개체의 문제가 핵심적임을 지적한다. 벤야민은 철학이란 인식에로 매개적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서술이며, 따라서 진리의 형식 법칙을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형식은 의식 안의 어떤 맥락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상응하는 것이다. 철학이 진리에 관련을 맺을 수 있다면 그것은 철학이 진리와 그 형식을 공유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형식으로서의 서술은 의식과 대상,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의 저편에 놓여 있다. 형식은 바로 이러한 이원론적 사유를 비로소 가능케 만드는 제삼의 차원 또는 선험적 차원이다. 이 익명의 제삼의 차원이 이미지의 차원인데, 벤야민이 말하는 이미지는 원상과 모상, 내용과 형식 등의 이원론이 불가능해지는 차원에서경계의 형상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곧 내용과 형식, 의미와 기호 등의 대립을 근저에서 뒤흔들어 놓는 제삼의 것“이다. 벤야민에게서는 요컨대 원상과 모상의 대립에 근거한 모상으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매개체 또는 제삼의 것으로서의 이미지가 문제시된다. 벤야민의 이러한 구상은 기호와 의미의 이원적 모델을 제삼의 것을 포함하는 삼원적 모델로 전도시키는 것이다. 주객 차이를 넘어선 저편에서 펼쳐지는 벤야민의 매체적 이미지 구상은 이원적으로 정초된 형이상학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벤야민이 그의 초기작인 독일 시민비극에 대한 글에서 전개시킨 알레고리 개념 또한 바로 형식, 특히 경계 형식으로서 구상되었다고 볼수 있다. 형식으로서 이해되는 알레고리는 표현과 의미 사이의 심연을 표시하는제삼의 것“이다. 알레고리에서 핵심적인 것은 바로 알레고리가 이미지로 지양된다는 점이다. 알레고리는 문자성과 비유성이 공존하는 것, 즉 문자 이미지”이다. 나아가 벤야민 후기 사유의 인식론적 기반을 이루는 변증법적 이미지론이구체적으로 조명된다. 변증법적 이미지는 시간의 한 단면, 사유 이미지, 기억 이미지 등으로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서 특히 이미지가 시간이라는 선험적 차원과 본질적으로 맺고 있는 관련이 드러난다. 또한 벤야민에게서 이미지와 언어는 텔 수 없는 결연적인 관련 하에 놓여 있기에 그의 언어론과 번역론이 제삼의 차원이라는 틀 안에서 새로이 고찰된다. 벤야민은 언어를 내용과 형식, 주체와 객체 등의 대립 저편에 놓여 있는 매개체로 사유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벤야민이 말하는 번역이란 바로 의미와 기호, 정신과 물질 사이의 간격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격의 극복은 번역가의 능력이 아닌 작품 자체의 가능성에 따라 이루어진다. 또한 번역은 결코 원상의 복구 또는 내용의 재현이라고 볼 수 없다. 번역의 핵심은 다름 아닌 형식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써 이 논문은 벤야민 사유의 불변하는 요인으로서 무수히 재귀하는 이미지(매개체)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 KCI등재

      발터 벤야민의 이미지 사유

      김현강 한국독일현대문학회 2004 뷔히너와 현대문학 Vol.22 No.-

      이 논문은 발터 벤야민의 사유에서 이미지, 서술, 번역의 문제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되며 등장하는 매개체의 문제가 핵심적임을 지적한다. 벤야민은 철학이란 인식에로 매개적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서술이며, 따라서 진리의 형식 법칙을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형식은 의식 안의 어떤 맥락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상응하는 것이다. 철학이 진리에 관련을 맺을 수 있다면 그것은 철학이 진리와 그 형식을 공유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형식으로서의 서술은 의식과 대상,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의 저편에 놓여 있다. 형식은 바로 이러한 이원론적 사유를 비로소 가능케 만드는 제삼의 차원 또는 선험적 차원이다. 이 익명의 제삼의 차원이 이미지의 차원인데, 벤야민이 말하는 이미지는 원상과 모상, 내용과 형식 등의 이원론이 불가능해지는 차원에서 경계의 형상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곧 내용과 형식, 의미와 기호 등의 대립을 근저에서 뒤흔들어 놓는 “제삼의 것”이다. 벤야민에게서는 요컨대 원상과 모상의 대립에 근거한 모상으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매개체 또는 제삼의 것으로서의 이미지가 문제시된다. 벤야민의 이러한 구상은 기호와 의미의 이원적 모델을 제삼의 것을 포함하는 삼원적 모델로 전도시키는 것이다. 주객 차이를 넘어선 저편에서 펼쳐지는 벤야민의 매체적 이미지 구상은 이원적으로 정초된 형이상학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다.구체적으로 보자면 벤야민이 그의 초기작인 독일 시민비극에 대한 글에서 전개시킨 알레고리 개념 또한 바로 형식, 특히 경계 형식으로서 구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형식으로서 이해되는 알레고리는 표현과 의미 사이의 심연을 표시하는 “제삼의 것”이다. 알레고리에서 핵심적인 것은 바로 알레고리가 이미지로 지양된다는 점이다. 알레고리는 문자성과 비유성이 공존하는 것, 즉 “문자 이미지”이다. 나아가 벤야민 후기 사유의 인식론적 기반을 이루는 변증법적 이미지론이 구체적으로 조명된다. 변증법적 이미지는 시간의 한 단면, 사유 이미지, 기억 이미지 등으로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서 특히 이미지가 시간이라는 선험적 차원과 본질적으로 맺고 있는 관련이 드러난다. 또한 벤야민에게서 이미지와 언어는 뗄 수 없는 필연적인 관련 하에 놓여 있기에 그의 언어론과 번역론이 제삼의 차원이라는 틀 안에서 새로이 고찰된다. 벤야민은 언어를 내용과 형식, 주체와 객체 등의 대립 저편에 놓여 있는 매개체로 사유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벤야민이 말하는 번역이란 바로 의미와 기호, 정신과 물질 사이의 간격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격의 극복은 번역가의 능력이 아닌 작품 자체의 가능성에 따라 이루어진다. 또한 번역은 결코 원상의 복구 또는 내용의 재현이라고 볼 수 없다. 번역의 핵심은 다름 아닌 형식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써 이 논문은 벤야민 사유의 불변하는 요인으로서 무수히 재귀하는 이미지(매개체)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 KCI등재

      비폭력적 갈등해결 수단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총파업과 그 한계 : 강령적인 무정부주의와 벤야민 철학의 비일관성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최태상 범한철학회 2024 汎韓哲學 Vol.113 No.2

      본 논문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과 칼 슈미트(Carl Schmitt) 사이의 사상적인 연 관관계를 밝히고, 그 과정에서 벤야민이 비폭력적인 갈등해결의 수단으로서 제시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 총파업을 거부할 근거를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폭력비판을 위하여에서 벤야민은 비폭력적인 갈등해결을 위한 순수 수단(rein Mittel)으 로서 상호이해나 대화와 같은 언어적 수단과 함께 프롤레타리아트 총파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트 총파업에 대한 논의에서, 벤야민은 소렐의 생디칼리즘을 그저 ‘정치 적으로’ 옹호함으로써 강령적인 무정부주의적 입장으로 향한다. 그 결과, 벤야민은 슈미트의 주권론과 같이 종국에는 새로운 법정립적 폭력을 옹호할 뿐인 사상으로, 말하자면 강령적 무정부주의(Programmatic Anarchism)로 나아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진보 신앙에 대한 비 판으로 대표되는 그 자신의 역사철학과 모순된 주장을 도출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소한 비폭력적인 갈등해결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는 프롤레타리아트 총파업에 대한 벤야 민의 입장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성공적일 경우에는, 소거법을 통 해 벤야민이 제시하고 있는 또 다른 순수 수단인 순수 언어(reine Sprache)를 통한 비폭력적 인 갈등해결에 대한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The goal of this paper is to reveal the theoretical correlation between Walter Benjamin and Carl Schmitt and to reject the proletariat general strike that Benjamin presented as a means of nonviolent solution to conflicts. In Critique of Violence, Benjamin considers a proletariat general strike as a nonviolent solution to conflicts along with linguistic means. However, Benjamin turns to programmatic anarchism by ‘politically’ advocating Sorel's Syndicalism. As a result, Benjamin not only drew an argument that contradicted his criticism of the idea of progress, but also advocated the law-making violence. In this constellation, i t is necessary to exclude the proletariat general strike, discussing nonviolent solutions. If this work is successful, through the elimination method we can focus on the argument of pure language as a nonviolent pure solution to conflicts.

    • KCI등재

      벤야민과 지젝의 신적 폭력

      김현강 ( Hyun Kang Kim ) 한국독일현대문학회 2014 독일현대문학 Vol.0 No.42

      벤야민은 그의 「폭력의 비판」에서 “신적 폭력” 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개념을 사용한 바 있다. 그로부터 약 한 세기가 지난 후 지젝은 그의 저서 『폭력』에서 바로 이 신적 폭력 개념을 다시 부활시킨다. 이 논문은 벤야민과 지젝의 신적 폭력 개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연구하는 데 목적을 둔다. 벤야민은 독일의 법철학자 칼 슈미트의 이론에서 출발해 자신의 폭력 비판을 전개시킨다. 슈미트는 법을 “법을 정립시키는 폭력”과 “법을 유지시키는 폭력” 또는 “헌법수여 폭력”과 “헌법”으로 구분한 바 있다. 벤야민은 이러한 슈미트의 구분에 따르되 “법을 폐기시키는 폭력” 또는 “신적 폭력”이라는 또 다른 차원을 첨가시킨다. 벤야민에 따르면 법을 정립시키고 유지하는 폭력은 “신화적 폭력”이며 법을 폐기시키는 폭력은 “신적 폭력”이다. 벤야민이 “신적 폭력”이라는 제삼의 개념을 부가시킨 이유는 법에 있어서 사실상 법정립의 폭력과 법유지의 폭력이 확연히 분리되지 않고 언제나 이미 서로 혼합된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법의 정립을 결코 순수한 이성적 근거지움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법은 사실상 법을 유지시키는 경찰과 군대의 폭력과 늘 혼합되고 있다. 법을 정립시키는 폭력과 법을 유지시키는 폭력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전자는 후자를 전제로 하고 후자는 전자를 전제로 한다. 벤야민은 이와 같은 법의 자기정당화의 기제를 신화라고 파악한다. 그러므로 법은 신화적 폭력이다. 신화적 폭력은 오로지 법 자체를 폐기 시키는 신적 폭력에 의해서만 완전히 극복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신적 폭력은 벤야민에게서 신화의 내재성을 완전히 해체시키는 초월적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지젝은 그의 저서 『폭력』에서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에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으며, 신적 폭력은 “순수 충동, 죽지 않은 것, 삶의 과잉의 표현”이라고 서술한다. 벤야민의 신적 폭력에 나타나는 신학적 차원은 여기에서 “충동의 과잉의 차원”이라는 세속적인 의미를 얻는다. 지젝은 신적 폭력을 세 가지의 의미로 규정 한다. 첫째 신적 폭력은 언어적 기호도 의미를 위한 잠재성도 아닌 “의미 없는 기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상징계가 아니라 실재계에 속한다. 둘째 그것은 역사의 비연속성을 지시하며 존재의 질서가 아닌 사건의 질서에 속한다. 셋째 그것은 주체의 결정과 필연적인 관련을 맺는다. 어떤 폭력의 사건을 신적 폭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체의 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신적 폭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객관적 시금석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적 폭력은 전적으로 객관적이지도 전적으로 주관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바로 그 중간의 영역에 속한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구분불가능성의 영역이다. 지젝은 이러한 신적 폭력 개념을 통해 바디우의 철학과 자신의 철학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바디우는 (신적 폭력과 유사한) 실재의 사건이 선행하고 주체는 나중에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즉, 사건이 먼저 일어난 다음 주체는 사건에 대한 충실함을 통해 사후적으로 구성된다. 이와는 달리 지젝은 주체가 사건에 의해 일방적으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실천을 통해 사건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사건과 주체 사이에는 상호적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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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야민의 카프카 해석에서 신학적인 것

      최성만(Choi, Seong Man) 한국카프카학회 2019 카프카연구 Vol.0 No.42

      신학적인 것이 자신의 사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자주 밝힌 벤야민은 “카프카야말로 내 사유가 밟아온 여러 길들이 교차하는 분기점으로 드러나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이라고 고백한다 . 이 길들 가운데에는 유대교 신학적인 길, 그리고 그 길과 긴장관계에 있으면서 그가 생산적인 종합을 모색해온 역사적 유물론의 길도 분명히 포함된다. 나는 이 연구에서 벤야민의 카프카 해석에서 몇 가지 신학적 모티프를 분석하고자 했다. 벤야민에 따르면 카프카 작품의 중심에 현대의 대도시인들에게 익숙한 전치, 왜곡, 소외의 경험들이 있고, 이 경험들은 바로 그와는 반대극에 있는 신비적인 전통을 통해 전해졌다. 하지만 카프카의 작품은 이 전통이 병들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벤야민은 언명한다. 이 언명은 유대교가 급진적인 세속화 과정에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아도르노는 ‘구원의 관점’에서 카프카와 현대를 바라보는 벤야민의 신학적 입장을 ‘역(逆)신학’으로 특징지으며 그 입장을 지지한다. 벤야민은 카프카에게서 ‘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법’(‘할라하’)이나 ‘가르침’이 겉보기와는 달리 결정적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데 반해 이야기(‘하가다’)적인 요소들은 계속 해석을 요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카프카의 작품을 개인으로서 더는 경험할 수 없게 된 현대의 상황을 유대교 전통의 ‘하가다’적 이야기(우화와 비유)로 묘사하면서 ‘서사적인 것을 복원’하려는 시도로 파악한다. 벤야민의 신학적 사유는 그가 친화성을 느낀 카프카에 대한 연구를 통해 확장되고 변형되면서 후기의 사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KCI등재

      외국 문학이론의 주체적 수용에 대하여 ― 벤야민의 문학이론을 중심으로 ―

      임환모 ( Lim Hwan-mo ) 현대문학이론학회 2017 現代文學理論硏究 Vol.0 No.68

      이 연구는 벤야민 문학이론의 수용이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어떻게 연계되고, 그 문학이론의 핵심이나 본질은 무엇이며, 그것의 수용이 얼마나 적합성을 지니고 한국문학에 새로움으로 기능하고 있는가를 밝힘으로써 외국 문학이론의 주체적 수용이 어떤 양태로 전개되어야 바람직한가를 가늠하는 논문이다. 1980년대부터 수용되기 시작한 벤야민의 문학이론은 2000년대 이후 문학연구의 방법론으로 가장 많이 원용되었다. 벤야민은 몫과 희망이 없는 자들을 구제함으로써 우리들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인식론적 태도를 평생 유지했다. 이러한 구원의 구체적인 방법론이 해체구성의 변증법이다. 과거 전 인류의 축소판이면서 미래 역사의 모습을 담지하는 `지금시간 (Jetztzeit)`을 `정지 상태의 변증법`으로 사유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역사의 연속체를 폭파할 수 있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위기의 순간으로서의 `지금-여기`가 정지된 역사적 사건과 만나 섬광처럼 만들어진 `변증법적 이미지`에서 우리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희망인 `혁명적 기회의 신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이고 우연적이며 순간적인 것들의 양극단이 맺는 연관을 형상화하는 단자(Monade) 구조 속에서 이러한 변증법적 이미지가 생성된다고 보는 것이 벤야민의 문학이론의 핵심이다. 이것을 그는 `문학적 몽타주`라고 불렀다. 이러한 벤야민의 문학이론이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매우 활발하게 수용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의 벤야민적 문학실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론을 가지고 한국문학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유용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벤야민의 사유방식이 한국문학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새롭다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벤야민의 수용이 문학연구와 비평에서 말해지지 않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을 밀도 있게 탐색하여 드러냄으로써 한국문학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경우에만 `새롭다는 것`이 의미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대나 문학작품을 벤야민의 이론이라는 틀에 따라 그대로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벤야민적 사유의 방법으로 우리 시대와 작품을 향해 질문하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일이다. This study explores how the reception of Benjamin`s literary theory is connected with the social situation in Korea, what is the essence of the theory, and how the reception of the theory influences Korean Literature. Thereby it determines the desired direction on the subjective reception of foreign literary theory. Benjamin`s literary theory, received in the 1980s` has been quoted as a methodology of literary research on and after the 2000s`. In his life, Benjamin adhered to the epistemological attitude; to do relieve ourselves, it parallels to relieve people who have no portion and hope. Such methodology of the relief is the dialectics of deconstruction. The image of thought with `the dialectics at a standstill` conceived in the time, `Jetztzeit` in which contains a microcosm of humankind and mirrors the history of aftertime. This logic can demolish the continuum of history. `The signal of revolutionary opportunity` as a hope of suppressed people can be found in `the dialectic image` emerged a flash by an encounter of `here and now` as a moment of crisis and suspended historical events. The essence of Benjamin`s literary theory is that the dialectic image occurs in the structure of Monade, in shaping a connection among fortuitous, temporal, momentary extremes. He called this, `Literary Montage` Since the 2000s, Benjamin`s literary theory -as it mentioned abovehas been embraced con moto in Korea. Through literature practice of numerous scholars, his theory verifies its utility to analyze and interpret the korean literature. In addition, Benjamin`s way of thought has confirmed high probabilities of a brand new interpretation in the korean literature. The reception of Benjamin inspects closely and reveals things untold and beyond untold. Then, these procedures are contributed to enrich Korean literature and then only `To be new` has a considerable meaning. That is a reason of being new is, however, not good all the time. Furthermore, there is no significance to explain and interpret the literature and the portrait of present time by the frame of Benjamin`s theory. Far more significance is to search for the solution in it and to toss a question for present time and literature with Benjaminish way of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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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적인 모더니즘 -벤야민과 게오르게 작품의 모티프에 대한 단초-

      요시히코히라노 ( Yoshihiko Hirano ) 한국독어독문학회 2009 독어독문학 Vol.110 No.-

      Moderne 모더니즘이라는 말은 부가어인 모던 modern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그래도 모던과 모더니즘은 주관적으로 사용될 경우에, 그 단어들 사이에는 몇 가지 일치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면 하버마스는 아도르노가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사이의 차이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주관적인 경향에서 객관적 모더니즘의 가능성을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한다. 그에 반해 발터 벤야민은 유겐트슈틸을 생산적인 오해로서 지적하였다. 즉 유겐트슈틸에서 새로운 것과 모더니즘이 혼동되었다는 것이다. 가끔 미학적 모더니즘의 선구자인 보들레르는 유겐트슈틸의 선구자로 얘기되어지는데, 바로 그와 같은 경우이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벤야민과 슈테판 게오르게와의 논쟁에서도 다시 유겐트슈틸이 언급되면서 증명될 수 있다. 벤야민은 게오르게가 데카당스의 완성자로서 결국 보들레르에서 시작한 정신 운동의 종착지에 있다고 평가한다. 그럼으로써 모더니즘의 시작 이 아닌 그 끝이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벤야민은 처음으로 게오르게의 작품을 유겐트슈틸로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정신적 입장이 유겐트슈틸의 강한 영향 아래에 있다고 말한다. 본래 뮌헨의 잡지명인 유겐트(청춘)에 어원을 두고 있는 유겐트슈틸은 벤야민이 젊은 시절에 참여했던 유겐트운동의 서정시와 본성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벤야민 스스로도 단어 유겐트를 잘못 사용했다고 말년에 인정했던 점은 학교개혁에 대한 당시의 논문에서 쉽게 증명될 수 있다. 게오르게와 그 동료들이 합법화하고자 하면서 논쟁하면서 사랑했던 게오르게의 시들은 본래 내향적인 체념과 후기의식으로 채워졌다. 유겐트슈틸의 건축학적인 실내장식과 부합하는 내면성이 활기를 띠는 반면, 외적인 것은 도시 베를린을 사회적 모더니즘의 환유로서 묘사하였다. 벤야민에게 잠시나마 의미를 가졌던 그런 문제의식은 1930년대에 파리를 21세기의 수도로 이해하게 하였다. 벤야민은 게오르게의 가장 순수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시들이 성(性)으로 망명한 것은 죽음으로 예정되었다고 쓰고 있다. 유겐트와 이른 죽음 사이의 관계는 벤야민에게 분리될 수 없는 콤플렉스를 형성한다. 벤야민은 게오르게의 작품에서 데카당스적인 죽음의 충동을 밝혀낸다. 이 충동은 데카당스 자체를 억압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충동은 처음부터 데카당스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서 비로소 퇴행적인 내면성과 중요한 요구로 특징되는 게오르게의 양면성이 드러난다. 그 퇴행적인 내면성과 중요한 요구는 두 가지 현상으로 증명된다. 즉 세기말에 데카당스적 죽음의 충동은 프로이트와 관련하여 공격- 혹은 파괴충동으로서 처음에는 내부로, 그 뒤 외부로 향하면서 그 두 가지 현상을 증명한다. 이런 것은 명백히 미학적 모더니즘에서 발견되는 것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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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니힐리즘과 허무의 메시아니즘 - 발터 벤야민의 「신학적-정치적 단편」 연구

      김영룡 ( Kim Young-ryong ) 한국독어독문학회 2017 獨逸文學 Vol.58 No.1

      발터 벤야민의 소위 「신학적-정치적 단편」은 벤야민의 생애를 가로지르는 근원적 사유의 출발점이다. 벤야민의 생애에서 신학적 사유와 정치적 사유의 대립은 이제껏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특히 벤야민 최후의 저술이자 그의 사상의 정수라고 평가되는 `역사철학테제`에도 벤야민의 신학적사유와 정치적 사유의 대립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벤야민은 메시아주의에 기반한 신학적 세계에 반하여 세속적인 세계는 행복의 이념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파한다. 더 나아가서 세속적인 질서의 행복 추구는 몰락에 이르는 길을 통해서 다시금 메시아적이 된다는 역설이 벤야민이 추구하는 니힐니즘의 본질이다. 세속적인 질서의 근원은 행복이며, 이 행복은 바로 메시아적 자연이 지닌 리듬감이며, 무상함에서 출발한 자연이 바로 메시아적이기 때문이라는 벤야민의 범신론적 신학관에 따라 니힐리즘을 세계 정치의 과제라는 명제로 신학적-정치적 단편은 끝맺고 있다. 구원의 순간을 기다리는 자의 태도는 결코 미래와 영원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때`가 과거와 현재의 응축이라는 말로써 이해되는 한, 바로 그 순간, 지난 시간의 빚을 청산해야 함을 의미한다. 본 연구는 벤야민의 생애를 관통하는 메시아주의와 허무주의의 본질을 초기 저작인「신학적-정치적 단편」의 논의에서 읽어 내려한다. Walter Benjamins kurze Schrift < Theologisch-politisches Fragment >(vermutlich um 1920/21, moglicherweise aber auch erst 1922-23) ist als eine Art Urzelle seines gesamten Werkes angesehen worden: v.a. fur seine sogennante Messianitatsthese und fur seine Verhaltnisbestimmung von Politik und Theologie. Gegenwartig gilt sogenannte “religious turn” als hochbetrieb. Dabei handelt es sich nicht mehr um einen ausschließlich philosophischen Trend: Die Macht des heiligen Aktes liegt in der Verbindung zwischen dem Historischen, das das Gluck erwunscht, und dem Messianischen, das im Leiden die Weltliche hindurchgeht. Dieser kurze Text Walter Benjamins dient hier als ein Dokument dafur, dass die Aufgabe der kommenden Generation die Profanierung des Nicht-Profanierbaren ist, wie einst Giorgio Agamben verklart. Da der Messias nicht Gegenstand von thetischen, intentionalen, teleogischen Akten sein kann, muß die Vollendung, die er dem historischen Geschehen bringen kann, ein selber athetisches, ein nicht-intentionales und ateleologisches Ereignis sein. Wie Benjamin standig darauf besteht, so kann vom Messianischen, sei es des Reichs, sei es der Zeit, gesagt werden, es trete allein in der Entsetzung oder als Entzetzung aller spistemischen und Willens-Setzungen hervor. Genuin politisch ist erst diejenige Organisation des geschichtlichen Lebens, die realisiert, daß ihr alle theologischen Aspirationen versagt sind. Benjamins Fragment, das Adorno als theologisch-politisches bezeichnet hat, ware deshalb angemessener als politisch-atheologisches Fragment charakterisi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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