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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진 한서대학교 국제디자인융합전문대학원 2018 국내석사
본 논문에서는 CMF 디자인에 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소재의 개발, 기존의 소재 또는 새로운 소재를 활용한 CMF 디자인을 개발하는 과정이나 개발 이후에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로 하여금 스스로 보다 효과적인 지식재산 권리화를 위해서 체크해볼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제품의 생산에 직접적으로 이용되는 소재뿐만 아니라 제품의 표면을 장식하기 위한 채색, 표면처리 등을 위해서 적용되는 재료나 방법들은 매우 다양하다. 나아가, 산업 전반에 걸쳐 새로운 소재의 개발이나 신제품 개발을 위한 CMF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경쟁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소비자의 이목을 더욱 끌 필요가 있는 소비 제품 분야에서의 CMF 디자인 소재의 개발이나 각종 소재를 활용한 CMF 디자인 개발을 더욱 부추기며, 나아가 소비제품 산업분야뿐 아니라 전반적인 산업분야에서의 CMF 디자인 개발의 확대를 이끄는 긍정적 측면을 제공하게 된다. 본 논문에서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거나, 개발된 소재를 활용하여 새로운 방식의 CMF 디자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 지식재산권 제도와 그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들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또한,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이 시작된 이후부터 시작된 몇몇 IP 융합 디자인 프로세스에 관한 선행연구들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선행연구들에 따른 IP 융합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제시하고 있는 CMF 디자인의 개발과 IP 융합을 통한 선행 디자인의 조사, 지식재산권의 확보를 위한 출원과 등록 등 매우 기초적이고 단편적인 방법과 순서 등만을 제시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선행연구에서 제시하고 있는 CMF 디자인 개발과정에서의 선행조사의 필요성 또는 디자인 출원의 필요성 등 단편적인 보호방식의 제시는 지식재산권의 권리화 과정에서 효과적이지 못함을 지적하였다. 나아가 본 논문에서는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이 시작된 2011년 이후에는 한국 특허청에 제출된 디자인 출원 건수가 증가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한국 특허청 자료에 따르면, 감성 소재·부품 연구센터의 설립 등 대한민국 정부의 본격적인 지원이 있은 이후인 2013년 이후에는 감성금속 기술에 대한 출원의 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배경에 기초하여 CMF 디자인 개발과정에서 도출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나 방식의 결과물에 대하여 보다 효과적인 권리화를 위해서 CMF 디자인의 창작자 또는 개발자로 하여금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지식재산권의 종류, 보호받을 수 있는 방식 등에 대해서 스스로 검토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물론, 권리확보 과정에서의 전문적인 절차 등에 대해서는 지식재산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CMF 디자인의 개발과정에서 디자이너나 엔지니어들 자신이 사용하는 컬러, 소재, 마감공정에서 권리확보에 필요한 점들에 대해서 스스로 체크할 수 있다면 더욱 효과적인 권리보호가 가능하게 된다. 본 논문에서는 CMF 디자인의 개발과정에서 디자이너 또는 엔지니어가 스스로 체크해볼 수 있는 모델의 제시를 통해서 보다 효과적인 지식재산 권리화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제조업을 위한 서비스디자인 툴킷 연구 : 나노카본 자전거 제조공정 중심으로
박성희 한서대학교 국제디자인융합전문대학원 2019 국내석사
Recent designs have shifted from producer-centered to user-centered product development. This has led to a rapid rise in the field of service design, which has mainly been designed for products and has now been designed for all environments used. Although it is the result of investigating and researching about the user experiences and thoughts, it is experiencing various problems in the product development phase as the experiences and ideas of stakeholders who are in the process of developing products are not shared actually. It applied the service design as a solution to the problems I have encountered during this product development phase, and I am going to describe the toolkit and its processes. In addition, this paper aims to apply the service design to a new point of view, rather than just for users or consumers, and combined the context of the service design with "Service Design for Manufacturing and Assembly (SDFMA)" which recognizes the unique and important interrelationships between manufacturing and assembly to propose service designs for the designers who develop the products for the economic production, not for product users. 최근 디자인은 생산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변화되어 사용자 경험 중심의 제품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분야의 급부상으로 이어졌으며, 주로 제품만 디자인해왔던 것에서 이제는 사용하는 모든 환경까지 디자인하게 되었다. 사용자의 경험과 생각들을 조사, 연구하여 얻어진 결과물이지만 정작 제품을 개발하는 단계에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경험이나 생각들은 공유되지 않아 제품개발 단계에서는 다양한 문제들을 겪고 있다. 이 제품개발 단계에서 겪었던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서비스 디자인을 적용해 보았고, 이에 대한 툴킷과 그 과정에 관해 서술하고자 한다. 또한 본 논문은 서비스 디자인이 사용자 혹은 소비자를 위한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관점에 서비스 디자인을 적용하여 보고자 하였으며, 서비스 디자인의 맥락을 제조 및 조립 간의 고유하고 중요한 상호관계를 인식하는 “제조 및 조립을 위한 서비스 디자인(SDFMA)”으로 결합하여 서비스 디자인의 대상이 제품사용자가 아닌 경제적 생산을 위한 제품개발 디자이너들을 위한 서비스디자인을 제안해보고자 하였다.
디자인 역량이 R&D기업의 사업화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 굿디자인 선정 기업을 중심으로
김선하 한서대학교 국제디자인융합전문대학원 2018 국내석사
기존 다수의 연구에서 R&D 기업이 비R&D기업에 비해 높은 사업화 성과를 창출하고, 디자인 역량을 갖춘 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에 비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실증하였다. 그러나 기존 연구들은 이 둘을 통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디자인 역량이 R&D 기업에 미치는 성과의 관계를 규명하지 못하였다. 본 연구는 ‘R&D 기업에서 연구개발비 투자와 디자인 역량은 사업화 성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는 가설과 ‘R&D 기업에서 연구개발비 투자와 디자인 역량이 동시에 높을수록 보다 높은 사업화 성과를 창출할 것이다’는 두 가지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정부지원 R&D사업(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혁신개발사업)에 참여한 기업을 대상으로 디자인역량이 연구개발투자와 R&D기업의 사업화 성과(매출액 증가율)의 관계에 어떤 조정효과를 갖는지를 다중회귀분석기법을 활용하여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i) R&D 집약도와 디자인역량은 매출액 증가율에 대해 (+)의 유의한 결과를 보여, R&D 집약도가 높을수록, 디자인 역량이 높을수록 매출액 증가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가설을 지지하였으며, (ii) R&D 집약도와 디자인 역량을 동시에 보유한 기업의 조정효과가 높게 나타나, 두번째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R&D기업의 사업화 성과는 디자인역량에 따라 더욱 향상될 수 있으므로, R&D와 동시에 디자인 투자를 강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Previous empirical studies in general have reported that more R&D-intensive firms showed higher economic performance, and that more design-capable firms created higher value-added. However, few have considered both R&D and design capabilities of the firms in an integrated way, thus failing to highlight the impact of design capabilities on the economic performance of R&D-intensive firms. This research, therefore, in order to fill the gap in the previous research, built two hypotheses to test : first, R&D investment and design capabilities individually will impact on the economic performance of the firm. Second, building upon the first hypothesis, R&D investment and design capabilities will interact to create higher economic value for the firms. These two hypotheses were tested for the Korean companies that have conducted Government-backed R&D projects. Multi-regression analysis was employed to test whether and how R&D and design capabilities of the firms interact to impact on their performance. Empirical test results supported both hypotheses: First, R&D-intensiveness and design-capabilities in each showed positive relations with economic performance, implying that the more R&D-intensive and the higher the design-capabilities of the firms, the higher would be their economic performance. Second, the interaction term of R&D-intensiveness and design-capabilities showed statistically significant positive relations with economic performance of the firm, which implies that firms deploying both higher R&D and design capabilities at the same time can outperform other firms. This research, with strong empirical supports on the interaction effects of R&D and design capabilities on the economic performance of the firm, suggests that firms should be ambidextrous – be able to develop and deploy both R&D and design capabilities in effective ways – in order to create and sustain competitiveness in the market.
전문대학교 전공심화교육과정이 취업에 미치는 영향 : 애니메이션학과 전공심화교육과정 사례를 중심으로
이영원 한서대학교 국제디자인융합전문대학원 2026 국내석사
본 연구는 K전문대학교 게임애니메이션학과의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을 이수한 졸업생 과 이수하지 않은 전문학사 졸업생의 취업 성과 영향을 실증적으로 비교·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교육과정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근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진학률 하락 속에서도 전문대학교의 전공심화과정은 지속적으로 확대운영되고 있으며,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산업의 고도화에 따른 전문인력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K전문대학교 게임애니메이션학과를 중심으로, 전문학사 졸업생과 전공심화과정 졸업생 간의 커리어 역량 및 취업 성과 차이를 비교·분석하였다. 연구 방법 으로는 문헌 연구와 실증연구를 병행하였다. 우선 전공심화과정의 제도적 배경과 애니메 이션 교육의 특성을 고찰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개발된 설문지를 통해 K전문대학교 게임 애니메이션학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수집된 자료는 SPSS 를 활용하여 기술통계, 독립표본 t-검정, 회귀분석, 매개효과 검증 등을 실시하였다. 연구 결과, 첫째, 전공심화과정을 이수한 졸업생이 비이수자보다 취업률과 정규직 비율, 전공 일치도, 직무만족도에서 유의미하게 높은 수준을 보였다. 둘째, 전공심화과정 이수자는 프 로젝트 수행능력, 팀워크, 문제해결능력 등 커리어 역량에서도 통계적으로 높은 점수를 나타냈으며, 이는 취업 성과에 긍정적 매개효과를 보였다. 셋째, 소프트웨어 숙련도와 포 트폴리오 완성도가 높을수록 취업 성과가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나, 전공심화과정 내의 실 무중심 교육 강화가 필요함을 시사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전공심화과정이 단순한 학위취 득 제도를 넘어,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전문 인력 양성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전공심화과정은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과 직무기반 교육이론(CBT)을 중 심으로 하는 교육과정을 더욱 보완 발전시키고, 국가의 재정지원사업과 지역사회 산업의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전공심화교육이 산업 맞춤형 인재 양성의 핵심 교 육모델로 정착될 수 있길 기대한다. 주제어: 애니메이션 교육, 전문대학교 전공심화과정,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직무 기반 교육(CBT)
최정숙 한서대학교 국제디자인융합전문대학원 2019 국내석사
Design is the critical component of business management. But, previous empirical studies in general have difficulty of measuring design value in quantity. BSC method offers the core factors of Design-management are sales, net income, brand value, stock price, ROI. So in this study analysis of the performance of Good-Design firms, awarded from 2011 to 2017. The key findings of the study that a group of 44 companies identified to be out performed KRX50 index. The companies in this study were selected on the basis of their winning Good-Design awards. The companies grouped into two portfolios- the leading design companies and design companies- respectively. Over 7 years, the leading design companies and design companies are consistently higher performance at all stages of in the economic cycle. 산업디자인통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디자인 산업은 2013년 조사 이래 연평균 9%의 큰 성장을 보여 주고 있다. 2016년도 디자인 산업의 경제적 가치는 103조 8,436억원으로 전년 대비 10.3% 증가 하였다. 이러한 디자인의 가치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에서 관심을 가지고 진행되어 왔으나, 디자인의 효율성을 정량화된 수치로 산출하기 어려운 점이 존재 하여왔다. 또한 디자인 경영의 영향력을 측정하기 위해 디자인의 측정모델이 제시되기도 하였는데 디자인은 매출, 이익, 브랜드가치, 주가, 투자자본수익률의 증가를 위한 요소임을 정의하기도 하였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2011 ∼ 2017년 우수산업디자인(GD) 상품 인증을 받은 기업 중 공개시장에 상장된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의 주식가치변화, 주식의 시장총가치 변화를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코스피시장에 상장된 기업 중 디자인수상 점수가 분석기업의 평균 이상으로 높은 디자인선도기업과 평균이하인 디자인신흥기업으로 분류하여 두 그룹을 비교 시 기업의 성과를 나타내는 주식의 주식가치지수, 시장총가치자수 모두에서 코스피50 지수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여 주었다. 코스닥상장기업 또한 주식시장 급등기를 제외 한 분석 전 기간에 걸쳐 코스피제조지수지수보다 높은 성장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흥기업의 주가 지수와 디자인에 비중을 두고 경영한 기업의 주가 지수를 비교한 결과, 디자인에 지속적으로 투자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자본 가치가 크게 향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기업운영에 있어 디자인의 중요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김성운 한서대학교 국제디자인융합전문대학원 2020 국내석사
어보는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왕, 왕비 등 왕실 인사의 위호(位號)를 나타내는 상징성이 강한 의물이다. 국왕이 승하하면 왕위를 이은 사왕(嗣王)은 돌아가신 선왕에게 시호(諡號)를 올렸고, 시호보(諡號寶)는 바로 이 시호(諡號)를 새긴 어보이다. 국왕의 어보는 여러 개가 있을 수 있지만, 국왕의 사후(死後) 시호를 새긴 시호보는 유일무이하다는 점에서 연구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 본고는 여러 국왕의 시호보 중 고종황제의 사후에 제작된 시호보를 연구 대상으로 하였다.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승하하였는데, 고종의 시호보는 고종의 죽음을 상징하는 의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일어난 3.1 만세운동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비적인 유물로서 그 의미가 컸다. 특히 본 연구자가 고종 시호보에 관심을 가졌던 2019년은 고종의 승하와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이것을 처음으로 연구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더욱 뜻 깊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고종 시호보와 관련된 문헌기록을 조사하고, 현존하는 고종 시호보의 유물을 실측한 다음, 그것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제작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고종실록(高宗實錄)』과 고종의 국장절차의 전말을 기록한 『고종태황제어장주감의궤(高宗太皇帝御葬主監儀軌)』에 나오는 문헌 기록을 정리하여 고종의 죽음과 시호보의 제작 배경을 분석하였다. 다음으로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고종 시호보 유물을 실제 실측하고 고종 당시에 제작된 다른 옥보들과 비교 분석하여 고종 시호보의 제작실태와 양식적 특징을 밝혀 보았다. 첫째, 『고종태황제어장주감의궤』 등의 기록을 통해 고종의 죽음과 1919년 제작된 시호보의 제작과정 및 실태를 알아보았다. 1919년 당시 조선 제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태황제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을 빼앗겨 일본 황실의 한 가문인 조선왕실로 전락한 상태였다. 이에 그의 장례는 국장(國葬)이 아닌 어장(御葬), 일부 장례 의식은 일본식이 가미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장례를 주관한 이왕직을 비롯한 한국인들에게 그는 여전히 대한제국의 황제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의 장례 의식은 대체로 조선의 전통을 따라 거행되었고, 국왕의 사후에 시호와 묘호 및 전호 등을 올렸으며, 시호보와 시책 등의 의물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둘째,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고종 시호보를 조사하고 실측하여 이전 시기의 시보 유물들과 시대적 비교를 통해 양식적 특징을 밝혀 보았다. 고종의 시호보는 조선왕실의 것과 마찬가지로 남양옥을 사용하였다. 19세기에 제작된 어보 4과는 재료, 형태, 인면, 뉴식 등을 비교 분석한 결과 조선 국왕의 시호보는 모두 금보였으나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시호보는 옥보로 차이를 보였다. 또 원래 국왕의 어보 문양은 거북이지만, 황제의 어보는 용문양인데 고종 어보는 황제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북 문양이었다. 이를 통해 나라를 잃어 그 신분과 위상이 격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인면의 글씨체는 조선왕실의 구첩전 대신 소전을 사용하여 대한제국의 상징성을 엿볼 수 있었다. 셋째, 본 연구자는 1919년 제작된 고종 시호보를 100년째가 되는 2019년에 복원하면서 이전 2017년에 본 연구자가 숙종 상존호 옥보를 제작한 경험을 토대로 삼았다. 곧 숙종 상존호 옥보의 복원시, 사문석옥인 성천옥이 아니라 더 단단한 경옥을 사용한 점,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최천약이 제작한 현존 유물을 실측하지 못한 점 등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옥장 故 김용철 보유자가 사용하던 전통도구를 대물림 받아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이를 통해 고종 시호보의 재료는 1919년 『고종태황제어장주감의궤』에 기록된 대로 사문석 계열의 남양옥을 확보하여 제작하였다. 그 결과 남양옥이 무른 편이어서 전통 수공 도구로도 제작이 가능하였다. 즉 고종 시호보를 채석-도안-절단-성형-세부조각-광택의 과정을 거쳐 복원 제작하는 데 있어 본 연구자는 부친에게 대물림한 전통 도구를 사용하여 수공작업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이처럼 고종 시호보에 대한 연구는 문헌기록과 현존 박물관 소장 유물 그리고 무형문화재 옥장의 기술로 복원되는 과정을 실증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구하였기 때문에 학술적 가치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1919년 고종 시호보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어서 연구사로서 창의적이라 할 수 있다.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제작된 고종시대 옥보를 통해 전통공예기술을 오늘에 다시 조감해볼 수도 있다는 면에서도 조선시대 왕실공예사 연구에 창의적이고 참신한 연구라 여겨진다. 이렇게 알게 된 연구결과는 이후 옥보와 옥책의 복원제작에 활용될 것이며, 향후 보물 연구나 유네스코 기록유산 연구 및 옥공예 분야 무형문화재의 전승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제어 : 시호보, 시보, 시호, 어보, 옥보, 고종, 도감의궤, 옥장, 3·1 운동
조선후기 종묘 주렴(朱簾)과 염장(簾匠)의 제작기술 연구
김기찬 한서대학교 국제디자인융합전문대학원 2022 국내석사
Jongmyo, the royal shrine where the deity of successive kings and queens are enshrined and held, symbolizes the authority and dignity of the country, and represents the legitimacy and historicity of the Joseon Dynasty. There are various ritual objects inside the shrine that enshrined the deity, and among them, Juryum is an important factor that shows the authority and dignity of the royal family by differentiating the royal space from the outside and separating the psychological and physical hierarchies. Therefore, this paper studies the production status of Juryum in Jongmyo Shrine, the craftsmen who made it and the manufacturing technique of the Juryum through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14, Yeomjang. Jongmyo Shrine is the place where the Jongmyo Jerye, a national ritual, was held, and the enshrined deity of successive kings and queens were enshrined to practice loyalty and filial piety and, as time passed, the number of deities to be worshiped increased so that the ancestral rooms of Jongmyo was enlarged and reconstructed to have 19 Jeongjeon and 16 Yeongnyeongjeon Halls. In 19 Jeongjeon and 16 Yeongnyeongjeon Halls, each shrine had a space for enshrines and rituals. The shrine was arranged one room for each king, and the deities of the great king and queen were enshrined in the innermost tabernacle. And, in the center of the shrine, there was a case for ancestral tablet and royal seal, bookcase for investiture book or royal order, wooden craftwork on which ancestral tablets could be leaned, and triple cotton. A sacrificial table was placed in the ritual space and a variety of utensils used in ancestral rites were placed on top of them, and a cover was placed inside a ritual door. Among them, Juryum was used to distinguish the outside from the faithful. The BumyoDogam Uigwe in the late Joseon Dynasty records the type and material of Juryum, and the craftsmen who made it. Therefore, this study classifies the types of Juryum according to the BumyoDogam Uigwe and examines their characteristics and materials. As a result, the findings are summarized as follow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understand the actual condition of the craftsmen for Juryum recorded in various Uigwe. First, there are three types of Juryum hung on the Jongmyo Shrine. First, the outer Juryum, which is hung outside the doors of Jeongjeon or Yeongnyeongjeon, is the largest in scale and is made of bamboo, thread, cloth, cotton, and wood. The Gyeokryum is a Juryum installed on the left and right walls of the inside of the shrine to separate the space of the shrine and it is a smaller than the outer Juryum. The inner Juryum (Shinryum) is the smallest, installed in the shrine where the ancestral tablets are enshrined, and is made of bamboo, thread, cloth, cotton, and wood. It is the smallest in size as it is close to the ancestral tablets, but it has a delicate structure and is made of a variety of materials. As such, the three common materials for the Jongmyo Juryum can be divided into bamboo, thread, fabric, wood, and cotton, and among them, the craftsmen who made the Juryum by weave a blind out of bamboo was called Juryum-Jang, and the existence of the craftsmen is recorded in 『Uigwe』. In the late Joseon Dynasty, from the 17th century to the 20th century, the craftsmen who made Juryum was recorded in a total of 94 Uigwes, including the 『GaryeDogam』, the 『GukjangDogam』, the 『BumyoDogam』, and the 『ChaeryeDogam』. In the 17th century, Juryum-Jangs were brought from various regions, but gradually the regions were limited to Seoul and Goyang and total 281 people were brought, and the largest number of people, 90, were involved in 1 bang, repairing the Jongmyo Shrine. In the 18th century, 222 people were brought, and most of them were brought from the Goyang area, but in some cases, Juryum-Jang was involved as a government official, while belonged to the Sang-uiwon, a permanent government office. In the 18th century, as in the 17th century, the largest number of people, 74, were involved in 1 bang. In the 19th century, 124 people were brought, but there is no record of where they were from. In addition, there were craftsmen who had been involved in the work for more than 10 years in the previous period, but there was only one craftsman in this period, indicating that their status has changed. However, the number of involved craftsmen increased and, in the 20th century, total number of craftsmen was 46 and they worked only for 6 years and it shows that the number of involved craftsmen was larger in a shorter period. As such, the craftsmen who made Juryum during the Joseon Dynasty disappeared as the country collapsed, and after liberation, they were designated as the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14, Yeomjang. Unlike the Juryum-Jang of the Joseon Dynasty, Yeomjang was mainly of Seryum from private sectors and, in 2011, Juryum was restored while participating in the dismantling and repairing of Jongmyo Shinryum and Juryum. Among them, in the case of bamboo used for Gyeokryum, it was manufactured using a pin to maintain 5 mm, and 18 bamboo strips were produced at an interval of 10 cm. In the case of Shinryum, the thickness of the strip was 3mm and 25 bamboo strips were produced at an interval of 10cm. The pattern of the Juryum was produced as a hexagonal demon design, and up to 6 were woven in a straight line, spread from the 7th to the left and right, and joined again from the 10th to the bottom. As such, this study examined the existence of Juryum and Juryum-Jang of Jongmyo Shrine in the Joseon Dynasty, focusing on the BumyoDogam Uigwe, and looked into the manufacturing technology of the Yeomjang, currently designated as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14, and hopes ritual objects of Jongmyo Shrine to be reproduced and restored to their original state based on the active researches on the production status and craftsmen as Jongmyo Shrine has various wooden craftwork and cottons as well as Juryum. 역대 국왕과 왕후의 신주를 봉안하고 제사 지내는 왕실의 사당인 종묘는 나라의 권위를 상징하고 조선의 역사성을 나타낸다. 신위를 모신 신실 내부에는 다양한 의물이 있는데, 그 가운데 주렴은 왕실의 공간을 외부와 분리시키고 심리적·물리적 위계를 차등화하는 중요한 요소로 왕실의 위엄을 장엄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종묘 주렴을 대상으로 그 제작 실태와 그것을 만드는 장인의 존재와 국가무형문화재 제 114호 염장을 통해 주렴의 제작기술에 대해 밝혀 보았다. 종묘는 국가의 제사인 종묘제례를 거행하는 장소로 충과 효를 실천하기 위하여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셨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셔야 하는 신주가 증가하여 종묘 신실을 증개축 하여 정전 19실, 영녕전 16실이 되었다. 신실은 국왕마다 1칸씩 배치되었으며, 그곳에 신주를 모실 공간과 제례를 위한 공간을 앞뒤로 마련하였다. 전자에는 신주를 모실 신주장, 어보를 넣는 보장, 어책이나 교명을 넣는 책장, 신주를 기댈 궤를 올려 놓은 신탑을 두고 삼중의 면장으로 구획된다. 후자에는 제상을 놓고, 그 위에 각종 제기를 올려두고 신문 안쪽에는 산개 등을 놓았다. 이처럼 본고에서는 외부와 신실을 구분하여 신성한 공간을 조성하는 주렴을 대상으로 삼아 그 결과 알게 된 사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종묘의 신실에 걸린 주렴은 세 종류로 구분된다. 우선 외주렴은 정전이나 영녕전의 신문 밖에 걸리는 주렴으로 규모가 가장 크다. 격렴은 신실 내부 좌우 벽에 걸어 신실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설치하는 주렴으로 크기는 외주렴보다는 작다. 신렴은 신주를 모시는 신주장에 설치하는 것으로 가장 작았다. 이들 세 종의 주렴은 대나무가 주재료이고 실과 천, 솜, 나무를 사용하여 완성하였다. 그 중 대나무로 발을 엮어 주렴을 제작하는 장인인 주렴장은 시기에 따라 출신지역이나 직역이 변화하였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도감의궤 중 특히『부묘도감의궤』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주렴의 종류와 주렴장을 분석하였다. 17세기의 주렴장은 다양한 지역에서 동원되었으나 점차 서울과 고양 지역에 국한되는 모습을 보였다. 의궤에서 발견된 총 281명의 주렴장은 중 종묘 신실을 수리하는 1방에서 90명이 활동하여 총 32%였다. 18세기의 주렴장은 총 222명이다. 주렴장 대부분 고양지역에서 동원되었으나, 상설관청인 상의원에 소속되기도 하여 관공장의 신분이었다.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종묘 신실을 수리하는 1방에서 74명이 활동하여 전체 27%였다. 19세기의 주렴장은 총 124명이 동원되었으나 어느 지역에서 장인을 동원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아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전 시기와 달리 10년 이상 장기간 동원된 장인 또한 1명밖에 존재하지 않아 그들의 신분이 사장으로 변화되었다고 여겨진다. 사적인 생산에 종사하였기 때문인지 동원된 주렴장 중 시상자의 수가 증가하여 20세기 6년간 기록된 총 46명의 대부분이 시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와같이 조선시대 종묘나 궁궐의 주렴을 만들던 장인들은 나라가 망하면서 그 존재가 사라졌고, 해방 이후 주렴을 제작하는 기능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2001년 국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으로 지정하였고 조대용은 보유자로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염장은 조선의 주렴장과 달리 민간에서 유행한 세렴 위주로 제작하였으나, 2011년 문화재청에서 종묘의 주렴을 보수하는 사업에 참여하면서 주렴을 재현하면서 그 기술도 전승될 수 있었다. 이처럼 본 연구에서는 부묘도감의궤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종묘의 주렴과 주렴장의 존재를 살펴본 후 현재 지정된 국가무형문화재 제 114호인 염장의 주렴 제작기술까지 밝혀보았다. 이를 통해 종묘의 의물들은 원형대로 재현되고, 그것을 제작하는 기술은 복원 전승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판재 한서대학교 국제디자인융합전문대학원 2023 국내석사
패인은 패각기의 일종으로서 가공・절삭구에 해당하며 이매패를 소재로 하여 패각의 복연부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날을 세워 제작한 도구를 말한다. 본 연구에서는 서해안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인 인천 을왕동 패총, 서산 대죽리 패총1・2, 안면도 고남리 패총, 군산 노래섬 패총에서 출토된 패인에 대하여 소재, 제작방법, 형식분류, 용도를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실시하였다. 연구 대상 패인은 을왕동 패총 18점, 대죽리 패총1 10점, 대죽리 패총2 33점, 고남리 패총 6점, 노래섬 패총 5점으로 총 72점이다. 유적에서 출토된 패인은 동정 결과, 모두 말백합을 소재로 제작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말백합의 패각은 두껍고 단단하며 손에 쥐고 사용하기 편리한 장점이 있어 패인의 소재로 선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예로, 고남리 패총의 경우에는 패각층을 구성하는 말백합의 비중이 0.1%로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소재로 말백합을 선택한 것은 이러한 의도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패인을 제작할 때 특정한 크기의 패각을 선택하였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식용으로 채집된 말백합과 패인의 크기를 비교해보았다. 을왕동 패총, 대죽리 패총1・2는 특정한 크기에 대한 선호도 없이 채집한 말백합을 식량으로 섭취한 후 패인으로 제작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고남리 패총의 경우에는 패각층 분석을 위한 말백합 시료 중 완형이 적어 정확한 판단은 어려웠다. 그러나 유적에서 출토된 패인이 인접한 대죽리 패총1・2에서 주로 채집되는 말백합의 크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고남리 패총의 패인 제작에도 특정한 크기 선택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노래섬 패총 패인의 경우 채집된 말백합에 비하여 크기가 큰 쪽에서 치우쳐 나타나므로 크기가 큰 말백합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패인의 제작 공정을 파악하기 위해 육안 관찰과 현미경 관찰을 실시하였다. 패인의 인부는 총 3단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1단계는 복연부 가장자리 주변을 거칠게 문질러서 마찰력을 높이는 단계로 예비 작업으로 판단된다. 2단계(1차 박리)는 도구를 이용해서 복연부의 외층을 일부 박리하는 단계이다. 3단계(2차 박리)는 2단계에서 복연부 외층을 떼어내고 얇게 만든 복연부를 눌러떼기법으로 잔손질하여 최종적으로 날을 세우는 단계로 판단된다. 패인의 제작방법에 따른 형식분류를 하였다. 3단계의 제작 공정 가운데 1・2단계는 모든 패인에서 같은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차이가 있는 3단계를 기준으로 분류하였다. 인부를 가공한 방법에 따라 크게 내부에서 외부로 박리한 것(Ⅰ형식)과 양방향으로 박리한 것(Ⅱ형식)으로 분류하였으며 인부가 세워진 위치에 따라 전측(A), 후측(B), 중앙(C), 전면(D), 기타(E)로 세분하였다. 이에 따라 형식분류한 결과, Ⅰ형식과 Ⅱ형식이 각각 61점(84.72%), 11점(15.28%)으로 Ⅰ형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ⅠD형식 25점(34.72%), ⅠB형식 21점(29.17%), ⅡD형식 9점(12.50%), ⅠC형식 8점(11.11%), ⅠA형식 4점(5.56%), ⅠE형식 3점(4.17%), ⅡB형식 2점 (2.78%) 순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살펴볼 때, Ⅰ형식에서는 ⅠD형식과 ⅠB형식을 선호했던 것으로 판단되며 Ⅱ형식에서는 ⅡD형식을 선호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연구 대상 유적별로 패인의 형식을 살펴본 결과, Ⅰ형식은 분석 대상 유적 모두에서 확인되며 ⅠB형식과 ⅠD형식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반면 Ⅱ형식은 을왕동 패총, 대죽리 패총2, 노래섬 패총에서만 확인되며 그 중 을왕동 패총, 노래섬 패총에서는 ⅡD형식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패인은 식량자원을 획득・손질하는 과정에서 절삭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생선 비늘 제거, 생선 절단, 동물 해체, 해조류 채집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패인의 구체적인 사용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 패각의 인부를 대상으로 현미경 관찰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일부 마모흔이 확인되어 패인이 실제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구 대상 패인이 풍화되거나 파손되어 구체적인 용도는 알 수 없었다. 향후 실험고고학적 관점에서 패인을 제작하고 해양자원과 육상자원을 대상으로 사용 및 해체하는 실험을 실시하여 패인의 구체적인 용도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A shell blade is a type of cutting tool made of bivalves with a sharp blade on the ventral edge of the shell. This study aimed to reveal the materials, production methods, form classifications, and purposes of the shell blades from the Neolithic Period sites of the west coast regions such as the Eurwang-dong shell midden in Incheon, the Daejuk-ri shell middens I and II in Seosan, the Gonam-ri shell midden in Anmyeon-do, and the Norae Island shell midden in Gunsan. A total of 72 shell blades were analyzed in this study, including 18 from the Eurwang-dong shell midden, 10 from the Daejuk-ri shell midden I, 33 from the Daejuk-ri shell midden II, 6 from the Gonam-ri shell midden and 5 from the Norae Island shell midden. Every shell blade analyzed in this study was confirmed to be made of hard clams(Meretrix petechialis). It seems that the hard clams were chosen as the material because they are thick, hard, and easy to handle. For instance, hard clams were used to produce the shell blades of the Gonam-ri shell midden despite taking up only 0.1% of the shell layers. This implies that they were intentionally selected over other more readily available clams due to such advantages. The size of the hard clams for food and the size of the shell blades were compared to examine whether the clams used in blade production were selected based on their size. The cases of the Eurwang-dong shell midden and the Daejuk-ri shell middens I and II did not show a preference for a specific size, implying that the blades were made with the shells of the hard clams consumed as food. In the case of the Gonam-ri shell midden, there is not enough sample of the hard clams for analysis, making it difficult to make an accurate observation. However, the size of shell blades from this site is similar to that of the hard clams collected from the neighboring Daejuk-ri shell middens I and II, suggesting that there was no size preference for producing the Gonam-ri shell blades. On the other hand, the Norae Island shell blades are larger than the hard clams for food, suggesting that larger shells were intentionally selected to make the shell blades. In this study, visual and microscopic observations were made to understand the manufacturing process of shell blades. The blades seem to be produced in three stages. The first stage appears as a preliminary step that increases friction by roughly rubbing the ventral edge. The second stage(the 1st flaking) is to use tools to partially flake off the outer layer of the ventral margin. The third stage(the 2nd flaking) is to use the pressure technique to finish polishing the edge of the blade. The shell blades were classified by their production method. The shell blades were classified based on their 3rd stage of production because they all shared the 1st and 2nd stages in common, only showing significant differences in the 3rd stage. According to how they were processed, the blades were classified into two types: type I is flaked from the inside out, and type II is flaked both inwards and outwards. They were further classified into five types according to the position of the edge: type A(close to the anterior margin), type B(close to the posterior margin), type C(the center of the ventral margin), type D(the entire ventral margin), and type E(other). Out of the 72 blades, the majority of them were classified as type I, with 61(84.72%) classified as type I and 11(15.28%) as type II. 25(34.72%) blades were classified as type ID, 21(29.17%) as type IB, 9(12.50%) as type IID, 8(11.11%) as type IC, 3(5.56%) as type IA, 3(4.17%) as type IE, and 2(2.78%) as type IIB. Based on the analysis, it seems that types ID and IB were preferred among the type I blades, and type IID was preferred among the type II blades. After examining the shell blades from each site, type I was found across all sites, with types IB and ID being the most widely distributed. In contrast, type II was only found in the Eurwang-dong shell midden, the Daejuk-ri shell midden II, and the Norae Island shell midden, with type IID being the most widely distributed in Eurwang-dong and Norae Island. The shell blades were presumed to be used to cut things while acquiring and treating food resources. For example, they could be used for removing fish scales, cutting fish, butchering or skinning animals, and gathering seaweed. Microscopic observations were conducted to identify the evidence pointing to the specific purpose the shell blades. As a result, a few wear scars were found, implying that the shell blades have actually been used. However, it was difficult to identify the specific purpose of the shell blades because they were weathered and damaged. In a subsequent study, I plan to make shell blades and test them on marine and terrestrial resources in order to study their specific use from the point of view of experimental archaeology.
이유림 한서대학교 국제디자인융합전문대학원 2024 국내석사
동합금 부식물 제거 방법에는 물리적 제거 방법과 화학적 제거 방법이 선택 및 병행되고 있다. 두 방법들은 부식물 처리 효과는 우수하지만, 처리 과정에서 소지 금속에 대한 2차적인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동합금 부식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면서도 소지 금속에 안정적인 부식물 처리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본 연구에서는 소지 금속에 안정적이면서도 동합금 부식물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부식물 처리제를 제조 및 평가해 보고자 하였다. 부식물 처리제는 크게 알칼리성 계열과 약산성 계열로 분류할 수 있으며, 조성 성분에 따라 각각 6종으로 제조하였다. 6종의 부식물 처리제 중 동합금에 가장 안정적인 조성을 선정하고자 인공 부식 시편을 이용한 부식물 처리제 선정 실험을 진행하였다. 1차 실험 결과, 부식물 처리제의 조성 성분 제외 및 증량은 표면 색상 변화, 과도한 부식물 용출, 처리 효과 저하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렇기에 문제점이 있는 조성을 제외하고, 알칼리성 처리제 1종과 약산성 처리제 1종을 최종적으로 선정하였다. 2차로 선정된 부식물 처리제를 이용한 적용성 실험을 진행하였다. 2차 실험 결과, 실제 동합금 부식물에 대한 처리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1회나 2회 처리만 으로도 부식물 처리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3회 처리 후에는 표면 색상 변화가 발생하여 1회 또는 2회 처리가 안정적일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적용성 실험 결과를 통해 부식물 처리제의 선택적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상물의 손상도가 높아 안정적인 처리가 필요한 경우, 알칼리성 처리제 적용이 용이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대상물의 상태가 양호하여 처리 시간을 단축하고자 할 경우, 약산성 처리제가 용이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모든 동합금류에 대한 부식물 처리제의 적용성을 판단하기에는 어 려움이 있었으나, 1차·2차 실험을 통해 동합금 부식물에 대한 부식물 처리제의 처리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표본 데이터를 확보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선정된 부식물 처리제가 동합금 부식물 제거 연구에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제어 : 동합금, 부식물, 부식물 처리제, 적용성 실험, 알칼리, 약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