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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退溪의 拾遺詩

      鄭錫胎 영남퇴계학연구원 2008 퇴계학논집 Vol.1 No.-

      이 글은 退溪의 拾遺詩48제 69수(이 글 맨 끝의 「題武夷九曲 圖次櫂歌韻」 1제 10수는 제외함)를 모아서 엮은 것이다. 저작 연 월이 밝혀지는 작품들부터 순서대로 일련번호를 붙여서 먼저 엮 은 다음, 그 뒤에 저작 연대 미상인 작품들을 소재 문헌 등을 기 준으로 분류해서 이어 붙였다. 수록한 작품들은 『退溪集』 草本, 『韓國文集叢刊』과 『退溪學資料叢書』 등에 수록된 退溪와 유관한 인물들의 문집과 연보, 退溪관련 자료, 서화 관련 도록과 읍지 등 문헌 자료와 누정의 시판 등을 조사해서 찾아내었고, 그런 다 음 그 하나하나에 대한 습유 여부와 저작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저작 연월이 밝혀지는 작품들은 대부분 편자의 『退溪先生年表月日條錄』 1∼4(퇴계학연구원, 2001∼2006)를 통 해 이미 소개한 적이 있지만, 나머지 저작 연대 미상인 작품들 은 이번에 처음 소개하는 것이다. 이 글을 엮은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각 작품은 제목을 먼저 들고, 그 옆에 저작 연월과 저작 장소, 그리고 연작시의 경우는 작품 편수를 밝혔다. 2. 작품 원문은 연작시 경우만 매 작품마다 행을 달리해서 기록 하고, 한 편일 경우에는 그대로 이어서 기록하였다. 3. 작품 원문은 각 구가 나누어지는 곳에 한 칸씩만 띄어 놓았 고, 현대식 부호를 사용한 별도의 표점은 하지 않았다. 4. 각 작품에는 자료 관련 사항, 연월 고증 내용, 편집 관련 사항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해설을 붙였다. 이 글에 수록한 退溪의 拾遺詩48제 69수는 현전하는 退溪詩 2,300여수(이 글에 수록한 拾遺詩를 포함함. 하동)를 두고 본다 면, 실상 그리 많은 작품을 수집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退溪詩의 경우 『退溪集』 편집 당시만 해도 4,000수에 이를 것으 로 추정되는 2,000여제가 수집되었다가, 그 중 2,243수만 문집에 실리고 나머지는 유실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拾遺詩 는 이 글에서 찾아 수록한 48제 69수 외에도 앞으로 작품이 더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은 평상적으로 조사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곳에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가령 개 인 소장 유묵 등의 형태로 말이다. 이번에 자료를 소개하는 것을 계기로, 詩뿐만 아니라 退溪의 다른 저작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데 주변의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이것은 편자뿐만 아니라, 편자가 작업자로 참여하고 있는 퇴계학연구원 정본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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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退溪의 《梅花詩帖》 賞析

      洪瑀欽 영남퇴계학연구원 2008 퇴계학논집 Vol.1 No.-

      退溪李滉(1501-1570)은 16世紀朝鮮文壇에서 대표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理學者였다. 그는 자신의 천성과 학술적인 의취에 의해 특별히 매화를 좋아하여 상당히 많은 매화시를 지었을 뿐만 아 니라 또한 64題91首의 자작 매화시를 자필로 초사하여 한 권의 《梅花詩帖》을 간행하기까지 하였다. 때문에 이《梅花詩帖》은 후대에 매우 깊고 넓은 影響을 끼치게 되었다. 1983年, 필자가 〈李退溪梅花詩帖硏究〉이란 논문을 써서, 《梅 花詩帖》을 소개한 뒤에 여러 학자들이 계속 退溪의 梅花詩를 연구하여 적지 아니한 학술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금까 지의 연구 성과는 퇴계이전 한중 역대 문단에서 전해온 매화문 학의 배경과 퇴계가 힘을 다해 추구했던 理氣心性과 결부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주목할 만한 견해를 제기하지 아니했다. 만일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퇴계의 매화시를 연구해도 그 것이 지니고 있는 미적인 진면목에 접근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 다. 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본고에서 퇴계 이전 한중 문단에서 전해온 매화를 주제로 한 시문학을 소개함과 아울러 퇴계가 일관되게 주장한 「사단은 이에서 발현한 것으로 착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四端, 發於理而無不善.)란 철학적인 논리를 매화시와 결부시킴으로써 퇴계의 매화시에 내포된 철학적인 특 수 함의와 미학적 가치를 탐색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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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의 表箋과 上樑文

      심경호(Sim, Kyung-ho) 영남퇴계학연구원 2021 퇴계학논집 Vol.- No.28

      본고는 퇴계집 권44에 수록된 表箋과 上樑文 작품을 중심으로 퇴계의 騈文이 지닌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영토 분쟁을 둘러싼 명나라와의 외교의 장에서 작성된 퇴계의 表箋은 어떠한 외교적 메세지를 담고 있으며 그 목적의식은 달성되었을까. 경복궁 화재 후 동궁과 사정전의 중건 후 작성된 두 상량문은 국가 경영과 관련된 어떠한 중요한 이념을 담고 있으며 그 사회문화적 기능은 무엇이었을까. 국왕의 선물 하사 받은 후 올린 謝箋과 관직의 제수를 완곡하게 거부하는 辭命箋에서 퇴계는 어떠한 레토릭으로 자신에 기대어 자신의 謝意와 謙退의 뜻을 적절히 표현했을까. 본고는 이러한 의문을 바탕으로 퇴계집에 수록된 다음과 같은 퇴계의 변문 작품을 분석하기로 한다. 表文으로는 조선과 명 사이의 긴요한 외교 사안에 대해 외교용 표전으로서 작성된 「夾江禁耕謝恩表」, 「謄黃謝恩表」을 분석한다. 箋文으로는 55세 되던 1555년 2월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명종이 음식물을 하사한 것에 대해 올린 「謝賜食物箋」, 70세 되던 1570년 치사를 청하기 위해 정월, 3월, 9월 세 차례 올린 세 편의 「乞致仕箋」을 검토한다. 상량문으로는 1553년 9월 경복궁에 화재가 난 후 이듬해 동궁과 사정전이 중건될 때 제진한 「東宮上樑文」과 「思政殿上樑文」을 분석한다. This article explores T’oegye s pianli-wen (駢儷文) writings focused on Biaojian (表箋) and Shangliang-wen (上樑文) included in his Collection of Toegye’s Works. What was the diplomatic message contained in his Biaojian works written in the chapters of diplomacy with the Ming Dynasty over territorial disputes, and was the purpose achieved? What was the ideology for state management contained in the two Shangliang-wen writings composed after the reconstruction of the Tonggung Hall and Sajŏongjŏn Hall after the fire at Kyŏngbokgung Palace and what were their socio-cultural functions? What were his rhetorical strategies in his Xiejian (謝箋, letter of gratitude) with which he expressed his gratitude for the king s gift, and in his Cimingjian (辭命箋, letter of rejection of the order) with which he obliquely refused to accept the official position? Based on these questions, this article analyzes the following Toegye s pianli-wen works contained in in his Collection of Toegye’s Works. Among Biao-wen (表文), we will look into “夾江禁耕謝恩表” and “謄黃謝恩表” both written as diplomatic documents on important diplomatic issues between Chosŏn and Ming. Among Biao-wen (箋文), we will consider “謝賜食物箋” with which he expressed his gratitude for King Myŏngjong s offering of food after his resigning in February 1555, at the age of 55, and series of “乞致仕箋” which were submitted three times i.e. January, March and September in 1570 at his age of 70 to clarify his resignation. Among Shangliang-wen, we will analyze “東宮上樑文” and “思政殿上樑文” that were compoesd when the Tonggung Hall and Sajŏongjŏn Hall were reconstructed in September 1553.

    • KCI등재후보

      퇴계 心性論의 토대인 心의 虛와 靈

      엄진성 영남퇴계학연구원 2011 퇴계학논집 Vol.8 No.-

      퇴계는 理氣二元論의 구조 아래 그의 철학은 전개 시켜 간다. 理氣二 元論의 구조는 본체와 현상을 둘로 나눈 것으로 이들은 각각 절대성과 상대성을 그 본성으로 한다. 절대성과 상대성은 서로 동일한 범주에 양 립할 수 없는 개념으로 이들은 각각 理와 氣로 표현 된다. 문제는 절대 성에 해당되는 理가 流行하는 세계의 법칙으로 존재할 때 이미 그 법칙 과 작용을 함께 수반하기 때문에 순수한 理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그 이름에 따른 작용도 함께 동반한다는 것에 있다. 이것을 퇴계는 사덕으 로 부르는데 퇴계의 구분에 따르면 이들은 流行하는 세계에 속한 법칙 으로 理의 본체인 太極과 구별되는 존재이다. 太極과 사덕을 구분 할 때 流行하는 세계에 속한 개념으로는 太極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진다. 때문에 퇴계는 虛의 개념을 통해 이것을 분석하고자 시도한다. 퇴계에 있어 虛는 미결정성과 동시에 모든 법칙을 생성에 가능성을 지닌 것으 로 그 자체는 어떠한 이름도 법칙도 없으면서 동시에 언제든 사덕이 될 수 있는 이의 본체인 太極을 형용한 개념이 된다. 퇴계는 다시 虛의 개 념을 사람의 心에 적용시킨다. 사람의 心에 虛를 적용시키는 이유는 사 람의 타고난 形氣가 偏하지 않고 正하기 때문이다. 正하기 때문에 부여 받은 理를 훼손하지 않고 보존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심은 반드시 이 의 본체인 虛를 그 속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心은 虛를 본성 의 한 부분으로 삼게 된다. 虛는 미결정성과 동시에 모든 법칙을 생성 에 가능성을 지닌 것이 되기 때문에 虛를 지닌 心 또한 동일한 기능을 그 본성으로 삼게 된다. 그리고 虛를 지닌 心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사람의 정감이 된다. 퇴계는 虛라는 공통점 아래 太極의 기능과 心의 기능을 비교하고 궁극적으로 心이 가지는 직분이 무엇인지를 논하는데 그의 학문에 목적으로 맞춘다.

    • KCI등재후보

      退溪 文集의 정본 편성 과정에 대한 일 고찰 - 惺齋手筆 『退溪先生書』에 수록된 자료들을 중심으로

      문석윤 영남퇴계학연구원 2015 퇴계학논집 Vol.- No.17

      惺齋 宗家에 보존되어 온 惺齋手筆 ?退溪先生書?는 퇴계가 惺齋 琴蘭 秀(1530-1604)에게 보낸 書簡과 詩들을 성재 스스로 작성 날짜순으로 정리하고 淨書한 자료로서, 퇴계 사후 문집 편성 작업이 시작되었을 때 납본되었다가 中草本이 편성된 후 다시 성재 종가로 반환된 것으로 추정 된다. 그것은 이후 수차례에 걸친 퇴계 저작의 定本 편성 사업에서 母本 의 역할을 한 中草本 ?退溪先生集?의 편성을 위한 祖本으로 활용되었으 며, 또한 특히 續集의 편성에서는 底本의 역할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크 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해당 자료에서 퇴계 저작의 원형에 가장 근접한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으며, 아울러 문집의 中草本 편성이 어떤 방식으 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이후의 定本들의 편성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깊이 할 수 있다. 더욱이 그에 수록된 시 3首는 아직 세상 에 알려지지 않은 逸詩라는 점에서 그것의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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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退溪 李滉의 聖學에 대한 현대적 성찰

      退溪,,戊辰六條疏」,聖學,惟精惟一,科學,객관적인식,본성실현,상보적융합 영남퇴계학연구원 2012 퇴계학논집 Vol.- No.11

      退溪(1501-1570)는 戊辰年(1568)에 宣祖에게 「戊辰六條疏」를 바쳤 다. 退溪 聖學十圖를 저술하기 이전에 이 「疏」에서 聖學의 의미를 명 쾌하게 밝히고 있다. 退溪에 의하면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 執厥中.”은 聖學의 淵源이다. 大學의 格物致知와 中庸의 明善은 “惟 精”에 해당하며, 大學의 誠意, 正心, 修身과 中庸의 誠身은 “惟一”에 해당한다. 致知를 통하여 至善에 대한 眞知를 얻고, 力行을 통하여 至善 을 실천하게 되면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알고 실천하는 聖人이 된다. 科 學은 객관적 사실을 인식하는 학문인데 반하여 聖學은 자신의 본성을 인 식하고 실천하는 학문이다. 과학자의 객관적 인식과 聖學의 본성실현의 학문은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방법도 다르다. 이 두 가지의 차이에 대한 정확한 인지는 科學과 聖學의 상보적 융합을 크게 도울 수 있을 것 이다.

    • KCI등재

      퇴계는 ‘이도(理到)’를 어떻게 읽었는가 - ‘이도’ 독법(讀法)을 통해 본 ‘활물(活物)로서의 리(理)’ -

      이원준(Lee Won-Jun) 영남퇴계학연구원 2018 퇴계학논집 Vol.- No.23

      1. 서론 2. 퇴계의초기 독법과 ‘물리도심’ 비판 3. 고봉이제시한 ‘이도’ 독법의정합성 4. 퇴계의독법 변화와 고봉 독법 사이의간극 5. 퇴계의최종 ‘이도’ 독법과 ‘활물로서의 리’ 6. 결론 본 논문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의 ‘이도(理到)’ 및 관련 문구의 독법(讀法)을 통해 그의 인식론인 이도설(理到說)의 사상사적 의의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이도(理到)’는 흔히 ‘(사물의) 理가 스스로 이르다’라고 해석된다. 이러한 해석법을 형이하 영역에서 전개되는 물리적 내도(來到)로 파악한다면 무위의 원칙인 리에 활동성을 부여하였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당초 퇴계는 ‘사물의 리가 내 마음으로 내도한다’로 해석되는 ‘이도’를 부정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 1527~ 1572)으로부터 ‘이도’가 틀린 문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예문을 접한 후 변화하였다. 고봉의 견해에 따른다면 ‘이도’라는 어휘는 ‘물리가 마음에 이른다’가 아니라 ‘이치가 지극해진다’로 해석된다. 형이하의 측면에서 ‘이도’를 이해할 경우 ‘도(到)’를 ‘내도’로 읽힐 혐의가 있는 ‘이르다’가 아니라 ‘지극하다’ 혹은 ‘다하다’의 의미로 읽는 것이 합당하다. 고봉에게서 ‘이도’와 관련된 제 문장을 접한 퇴계는 기존 견해를 고쳐 ‘사물의 이치가 마음에 이른다[物理到心]’로 읽혀질 수 있는 ‘이도’를 인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퇴계는 󰡔대학혹문󰡕의 내용을 참고하여 ‘이도’를 풀이하였고, 결과적으로 ‘리’의 체(體)와 용(用)을 구분함으로써 ‘용’의 측면에서 ‘리’가 ‘스스로 이르다[自到]’라고 읽어도 틀리지 않다고 보았다. 고봉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대한 진술로서 ‘이도’를 이해하고서 해당 어휘의 문법적·논리적 정합성을 고려하여 ‘도’자를 읽었다. 반면, 퇴계는 ‘물리’와 ‘심’의 관계를 형이상의 차원에서 고찰한 결과 ‘物理到心’으로 읽히더라도 ‘이도’ 자체는 틀린 표현이 아니라고 보았다. 퇴계는 ‘용’을 ‘드러냄[發見]’으로 정의함으로써 물격의 공효를 현실에서는 분리되어 있는 사물의 ‘리’가 ‘심’ 속에서 하나의 ‘리’로 관통되는 것을 물리의 입장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인식하였고, 이러한 ‘리’는 결코 ‘죽은 것(死物)’이 아니라고 보았다. ‘리’의 ‘체용’ 구조는 ‘이도’ 독법에서 발생한 형이하의 방소에 대한 논란을 제거함으로써 ‘물리가 마음에 이른다’라는 독법에 타당성을 제공해 주지만, 퇴계의 ‘이도’ 독법은 단순히 문법적 정합성을 고찰하는 문제를 넘어서는 지점에 있다. ‘리’의 작용(혹은 발현)을 통한 ‘이도’의 승인은 그의 ‘리’에 대한 관념이 이제껏 형이하의 사실적 측면에서만 이해되던 격물·물격에서도 논증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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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은(林隱) 정복심(程復心)의 『사서장도(四書章圖)』와 퇴계(退溪)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전병욱 퇴계학연구원 2012 퇴계학보(退溪學報) Vol.132 No.-

      這篇文章是討論林隱《四書章圖》結構與其對朝鮮前期學者的影響的。朝鮮前期的一部分理學家重視《四書章圖》, 一部分理學家輕視《四書章圖》。 退溪代表前者, 高峰代表後者。 近代以來,因爲國內和中國都失傳《四書章圖》, 所以對朝鮮前期理學史的硏究引起不少問題。 幸而最近李承歡敎授在日本的一所圖書館發現《四書章圖》, 從而發表一篇文章, 以矯正部分誤繆。 這篇文章是接著李敎授的硏究講的。 《四書章圖》的結構問題, 有的學者已有硏究。《四書章圖》是由《四書章圖纂釋》和《四書章圖隱括總要》構成的。 不過, 朝鮮理學家幾乎都是只看過《四書章圖은괄總要》。 他們所說的《四書章圖》就是這個《四書章圖은괄總要》三卷。其書的上卷講的是, 《太極圖說》和《西銘》; 中卷講的是, 心、仁 等 《四書集注》的主要槪念; 下卷講的是, 《四書集注》提到的名物制度。 整個內容是,提供在學習《四書集注》時所需要的基本知識。 朝鮮前期利用《四書章圖》的學者都是成均館大司成。 他們用這本書敎給儒生們一些理學基本槪念和命題。 以靜庵爲代表的重視實踐功夫的道學派學者, 幾乎都輕視這本《四書集注》的參考書。 他們認爲, 這本書對身心修養的爲己之學, 沒有什마幇助。退溪是執其兩端而用之者。他以爲, 道學派在理論方面有限界, 需要通過《四書章圖》這樣的書來彌補。而且, 這本書裏包含著풍富的有關性向二元論思想資料。這些資料會支持退溪的思想。可是, 高峰輕視這本宋季元朝的 朱學末流”的理論。所以栗穀學派也不重視《四書章圖》。 還有, 退溪後學也不認爲這本書會提高“李夫子” 的尊嚴。 所以, 這本書再國內被失傳, 而現在, 在硏究朝鮮前期理學史, 當成一個흔大的迷宮了。 這篇文章是爲解脫這個迷宮而做的一個試論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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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退溪와 高峯의 만남과 대화 - 만남과 知와 사랑[仁]의 대화, 그리고 그 자취[故]를 따라서[憶]

      박종용(Park Jong-Yong) 영남퇴계학연구원 2018 퇴계학논집 Vol.- No.23

      1. 先儒를 그리며 2. 眞儒와通儒의 만남과對話 1) 眞儒와通儒의 만남 2) 知와 사랑의 對話 3) 宮聲과徵聲의 조화 3. 梅香과遺香의別離와記憶 1) 退溪와梅花의香氣 2) 高峯과百世의遺香 3) 別離의記憶을넘어 4. 마음에담아서 필자는 ‘退溪(李滉 1501~1570)와 高峰(奇大升 1527~1572)의 만남과 대화’를 본 논문의 주제로 삼았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려는 것은 한 세대 가까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대대관계로서의 대화를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독려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해 나가는 모습과 자세이다. 만남은 주체적인 ‘나’가 또 다른 주체자인 ‘너’에게로 다가섬이고, ‘너’가 ‘나’에게로 다가옴이다. 만남은 대화를 낳게 되는데, 대화란 곧 이성의 나눔을 뜻한다. 대화가 맑은 영혼과 부드럽게 정화된 빛에 싸여 순수한 이성을 그려낼 때, 그 대화는 사랑이라는 예술로 승화하게 된다. 사랑이 한 사람의 ‘너’에 대한 한 사람의 나의 책임이기에 그 어떤 감정에도 있을 수 없는 것, 즉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한결같음이라고 한다면, 퇴계와 고봉의 만남과 그들의 영혼이 깃든 사랑의 대화는 성찰의 시간에 대한 다른 이름이자 자신의 자기 비춤에 다름 아니다. 高峰이 32세에 退溪를 처음 만난 것은 1558년 10월이었다. 이후 퇴계와 고봉의 만남은 대략 5차례 정도로 추정되지만, 지적 대화의 깊이로 헤아려 본다면 이들의 만남은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遭遇를 통해서 즉, 책보다는 인간을 통해서 인간다움을 알게 되는 순간으로 이해 할 수 있다. 특히 학문을 함에 있어서 소중한 것은 인간적인 만남을 통한 대화이다. 그래서 학자가 대화를 멀리하는 것은 결국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퇴계는 이를 두고 학문을 강론하면서 대화할 벗들이 없이 쓸쓸히 지내는 것을 ‘鈍滯의 근심’이라고 하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나, 제어하기 어려운 것, 또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종종 강제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조화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퇴계와 고봉도 대화의 근본적인 의도가 道를 밝히는 데 있고 두 사람 모두 私意가 없는 경우라면 반드시 異見이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하였다. 즉, 근본이 같다면 사소한 것은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끝내는 반드시 의견이 같아질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이러한 자세는 후유들이 퇴계와 고봉이라는 오래된 未來에 다가 갈 수 있게 해주는 道理이자 그 정신을 이어가야할 所以然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의 隔絶에도 불구하고 선유들의 사유와 실천을 대물림한다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後儒들이 체험하여 실행하지 않을 수 없는 ‘先儒들의 영혼의 울림이자 자각의 채찍’이라 할 수 있다. 두 巨儒의 탁월한 철학적, 학문적 유산은 그들 스스로가 획득한 저 ‘자의식의 빛’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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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두 번의 만남 -대화와 소통을 화두로-

      崔英成(Choi Young-Sung) 영남퇴계학연구원 2018 퇴계학논집 Vol.- No.23

      Ⅰ. 머리말 Ⅱ. 23살의청년이58세의 老大家를 찾다 Ⅲ. 안동 ↔강릉에서의 서신 교류 Ⅳ. 두 번째 만남과 퇴계의별세 Ⅴ.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그리고 대화와소통 이 글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인간적 만남’을 주제로 한 것이다. 학술 차원의 문제보다 ‘인간적 교류’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퇴계와 율곡은 일생토록 두 차례 만났다. 만남의 횟수가 사귐의 깊이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퇴계와 율곡의 역사적 만남이 있었던 1558년은 퇴계와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이 처음 만난 해이기도 하다. 퇴계의 입장에서 ‘1558년’은 기념할 만한 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퇴계는 일생토록 율곡을 아끼는 후학으로 예우하였고, 율곡 역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퇴계를 존숭하고 그의 업적을 기렸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와 함께 동방유학의 양대 종장(兩大宗匠)으로 받들었다. 율곡이 퇴계에 대해 “퇴계에 이르러 유자(儒者)의 모양이 갖추어졌다”고 한 논평은 퇴계를 보는 율곡의 관점을 대변한다. 퇴계와 율곡은 학설상으로도 차이가 나는 것을 빼놓고는 대립할 만한 소지가 크지 않다.. 퇴계⋅율곡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이론 설명의 방식에 있다.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를 대립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조선후기 성리학사는 대화와 소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퇴계와 율곡의 만남은 일부 뜻 있는 후학들에 의해 시도되었고, 일정 부분 성취되었다. ‘대화와 소통’이라는 시대의 화두를 통해 퇴계학과 율곡학을 읽어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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