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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슐라이어마허의 절대의존감정과 조나단에드워즈의 신앙감정 비교연구

      이성윤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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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의 연구 목적은 슐라이어마허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주된 신학사상인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하는데 있다. 우선 그들의 생애와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독특한 사상을 창출해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았다. 슐라이어마허는 신조나 교의 또는 성경 본문이 아닌 인간의 종교적 경험 혹은 기독교인의 자기 의식을 신학의 토대로 간주했다. 그는 교리적인 신조 배후에 있는 살아 있는 경험으로 돌아감으로써 신학의 새로운 토대를 확립하려 했다. 신학의 과제는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발견되는 종교적인 감정을 기술하는 것”이다. 신학은 사변학이 아니라 기술학이기 때문이다. 또한 슐라이어마허는 신학을 과거의 도식의 단순한 반복으로 간주하지 않고 현대 세계와의 살아 있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교의 신학은 주어진 시대의 기독교회에서 널리 유행하는 교리를 체계화하는 학문이다." 슐라이어마허는 현대의 상황에서 신학의 발전을 문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관을 수용하고 그 관점으로부터 기독교 진리를 재진술한 최초의 신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경험을 신학의 주된 자료로 받아들임으로써 신학에 새로운 활기와 관심을 불어넣었다. 또한 인간 감정에 나타난 자기 의식과 하나님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라고 주장함으로써 사변적인 철학으로부터 신앙과 신학의 독립을 확립했다. 슐라이어마허는 정통 신학을 도그마틱한 '위로부터의 신학'이라 혹평하고 계몽주의적 자연신학을 ‘아래로부터의 신학’이라 폄론하면서 절대의존의 감정을 핵심으로 하는 자신의 신학을 하나님과 인간을 잇는 진정한 신학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신학 체계에는 우리가 믿는 계시관이 들어 갈 자리가 없음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신적 계시란 어떤 개념이나 문장으로 주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모든 개념을 초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와 동일시하는 것은 일종의 권위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계시는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를 위해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계시는 어떤 외부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우리가 내적으로 받아지지 않는 것은 결코 나에게 계시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어떤 객관적이고 외부적인 계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는 성경을 한 종교(기독교)의 감정을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경험 혹은 감정이지 문자로 기록된 성경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이 내적, 주관적 감정의 표현이라는 차원에서 슐라이어마허는 성경을 기독교 경전으로 본다. 심지어 성경에서 나오지 않는 교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통 고백서를 중요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가 의미하는 진정한 계시란 자율적으로 해석되는 종교적 ‘감정’이라는 것이다. 단지 성경이나 고백서는 그 감정을 해석하는데 사용되는 상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의 절대 의존적 감정의 차원에 두는 것은 사실은 '아래로부터의 신학'에 불과한 것이다. 슐라이어마허 자신이 비판한 자연주의 신학과 그의 신학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왜냐면 그가 말하는 감정이란 영원한 것 혹은 절대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이 어디서 오느냐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 안에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에 존재한다는 것이 인간이 직접적으로 의식한다고 그는 주장하지만, 인간이 그 어떠한 것을 의식한다 해도 그것은 인간의 의식 일뿐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은 결국 자신의 자율적 판단내지는 순간적인 신념일 뿐이다. 결국 그가 말하는 감정은 일종의 인간에게서 나오는 추론(postulate)에 불과한 것이다. 에드워즈의 가장 큰 탁월성은 신앙에 있어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점에 있다. 깊은 경건과 예리한 지성이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경우라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천부적 지성으로써 신학적 영적 진리들을 해부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신학적 작업을 단지 이성의 능력만으로 행하지는 않았다. 그의 저술과 설교의 대다수는 자신의 깊은 영적 체험의 산물이었다. 자신이 직접 맛보고 깨닫고 감동받은 체험의 뒷받침 속에서 그는 성경의 계시와 진리들을 가르치고 제시했다. 에드워즈는 단지 복음에 대한 이론적 지식만으로 참된 믿음이 이루어 질 수는 없다고 믿었다. 그는 그 지식, 혹은 교리 위에 성령의 빛이 비칠 때 비로소 그 지식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된다고 보았다. “영적 눈”이 열려 복음의 진리를 “감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단순한 지적 이해가 아니라 “영적 이해”이며 사변적 지식이 아니라 “영적 지식”으로 일종의 “체험”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과연 감지되는 체험이 회심에 필수적인가? 감지되는 은혜의 역사가 내면에 있어야 참으로 회심한 것이라는 주장이 옳은 것인가? 이것은 회심보다는 구원의 확신에

    • 유동식의 풍류신학 연구

      김성은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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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학국에서 신학이 토착화되는 과정속에 나타는 유동식의 풍류신학을 중심으로 연구함으로 한국에서의 신학의 가능성과 과제를 살피고자 하였다.

    • 결혼 제도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복음주의 신학적 고찰

      박선의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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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3F의 시대가 될 것이라 예측한다. 앞으로의 사회는 여성(Female)과 감성(Feeling)과 상상력(Fiction)이 중요시 되는 시대가 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남성적인 특성보다 여성의 특성들로 앞으로의 시대를 이끌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사회를 ‘핑크칼라 시대’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적인 예측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종속적인 존재로 냉대를 받으며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이러한 미래학자의 예측처럼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여성들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세계적으로 여권운동(feminist movement)이 확산되어 일어났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여권운동과 더불어 신학적으로 해방신학의 한 유형으로 여성신학이 뿌리를 내렸다. 여성신학은 성(性)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범주를 다루고 있으며, 이 성에 대한 사고의 전향은 새로운 역사관, 인간관, 문화관,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있다. 여권주의 여성신학자들은 종래의 모든 학문 영역이 남성 중심적으로 이루어왔다는 전제 아래, 신학을 여성 중심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1980년대 한국여신학자협회가 결성되도록 하였다. 여성신학의 첫 세대 안상님, 손승희, 이우정, 이화여자대학교를 중심으로 장상, 박순경, 정현경 등에 의해 활발히 여성신학 책들이 기술, 번역되어 오고 있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여권주의 여성신학자들은 가부장제가 남성의 사회적 지배와 여성들의 열등성과 예속성을 가르쳤으며, 성서가 2천 여년의 역사 속에서 교회 안에서 여성들에게 남성에게의 복종을 강조하고 성차별주위를 강화하며, 남성중심 주의를 정당화하고 그 지속을 보장하는 신념으로 작용하여 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가부장제가 남성과 여성의 갈등과 문제를 일으키는 궁극적인 근원이며, 이것을 전복시키는 것만이 여성이 해방되어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라 주장한다. 여성해방주의자, 여권주의자들 및 여성신학자들의 주장과 이론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여성의 참정권, 교육권,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들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여성의 영향력이 더 증대될수록, 또한 남녀평등이 더 잘 이루어지는 사회로 발전해갈수록 여성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의문을 갖게 된다. 여성에 대해 중요시 하며,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어지는 이 시대에 교회는 여성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여권주의적 여성신학자들의 주장처럼 가부장제의 전복을 위해 투쟁하여야 하는가? 성경적 여권주의자처럼 여성안수를 주장하여야 하는가? 이들의 관점과 신학은 여성을 중심으로, 그 존재의 존귀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家庭)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단위 안에서 여성은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자녀의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엄마들, 해마다 증가하는 이혼율, 경제적인 어려움, 갈등과 불신 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 속에서 교회는 여성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제시와 여성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겨진다.

    • 한국신학 연구 : 안병무의 『민중신학 이야기』를 중심으로

      정성삼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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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신학의 '스스로 함' 한국신학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국 사람의 구원과 해방을 지향하는 신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한국'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에서 신학의 본뜻을 펴자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함'이란 함석헌 선생의 '씨□ 사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생명의 근본 원리로서 민중은 누구보다도 생명의 근본 바탕에 가까이 있기에 그들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열어갈 수 있다는 삶의 원리이다. 이것은 곧 '나'의 삶 속에서 '나'의 '스스로 함'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 '한국신학'이라는 이름 뒤에 '스스로 함'을 붙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지금까지 한국신학은 한국신학자들의 많은 노력으로 인해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한국신학이 서구신학계나 제3세계 신학계에서보다 오히려 자신의 신학의 바탈로 삼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본 필자는 이에 대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한국신학계가 여전히 서구선학에 데한 '사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구신학에 물들고 그래서 서구적 사고 방식에 물들어 있는 많은 한국의 신학자들이 기존의 서구신학적 방법론이나 이를 통해 도출해 낸 결과물과는 전혀 새로운 방법론과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한국신학을 이해할 수도 또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한국이라는 사회의 현실적 특수성과도 연결되고 있다고 본다. 개인과 사회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스스로 함'을 세우고자 한다면 그 개인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도 당연히 '스스로 함'이 세워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불행히도 '스스로 함'이 확립된 나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단된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 해결의 주체가 남과 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과 북의 문제에 미국과 같은 세계 강대국들이 주체가 되고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는 주권 즉 '스스로 함'이 제대로 세워져있지 못하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불행한 현실 속에서 한국신학도 그 '스스로 함'을 세우는 일이란 예수의 십자가의 길과도 같은 고난의 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현실 속에서 한국신학의 '스스로 함'을 세운다고 하는 것은 심심하면 주권을 침해받는 이 땅의 현실을 극복하는 것에 참여하는 것으로도 이어지게 될 것이다. 특히 한국신학은 바로 한국이란 공간(상황)과 시간(역사)에서 그리스도교의 진리의 당위성을 증명해 내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곧 이 땅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가지고 구체적인 구원의 기쁨 즉 복음의 소식을 줄 수 있는 신학적 작업을 해내는 일인 것 이다. 이렇게 봤을 때, 한국이라는 이 특수한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스스로 함'을 바로 세움을 통한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 회복과 확립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신학의 작업을 함에 있어서 주의할 것은 서구신학이 범했던 잘못 즉 자신들의 신학이 보편의 신학이라고 하는 '교만의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데 있다. 즉 우리에게는 신학 그 자체(the theology)는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신학(a theology)이 있을 뿐인 것이다. 이는 특수신학을 통해 보편신학으로서의 하나의 길을 제시해 보자는 말과도 같다. 여성신학이 여성들의 인권 신장을 통해 세계 인류의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처럼 한국신학을 세계에 내놓음으로 인해 세계 속에 하느님의 궁극적 진리에 온전히 이르기 위한 하나의 초석이 되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2. 민중신학은 한국신학이다. 민중신학의 형성 배경은 한국사회의 70, 80년대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 민중들의 사건을 하느님의 사건으로 증명하고자 태동되었다. 또한 기존체제의 교회로 인해 왜곡되고 변질된 성서를 우리의 토양을 가지고 새롭게 해석함을 통해 이 땅의 민중에게 구체적 복음을 제시하고자 한 신학 조류이다. 그런데 앞서 한국신학은 한국이라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진리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민중신학은 한국신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안에서 신학을 하더라도 서구의 방법론과 사고를 그대로 따라서 신학 작업을 한다면 그것은 한국신학일 수 없다. 하지만 민중신학은 철저히 이 한국이라는 특수 토양에서 신학 연구를 실시해 왔고 그에 따른 빛과 소금과 같은 결과물들도 내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학문의 한 분야로서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놓여있지만 한국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은 여전히 서구신학을 정통신학으로 고집하는 한국신학계와 '책상의 신학'을 고집하는 서구신학계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성서를 보게 함으로써 그들의 눈을 민중으로 향하게 하는 '한(恨)의 사제'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게 될 것이다. 3. 민증신학의 발전 모델 '씨□신학' 지금까지 필자는 본 논문을 통해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소개하면서 '민중'이라는 말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하지만 본 논문은 한국신학의 '스스로 함'을 바로 세우고 나가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계획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민중신학에서의 '민중'이라는 말도 우리 한국에 '스스로 함'을 위해 '스스르 함'의 실천적 모습의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민중'이라는 말을 '씨□'이라는 말로 바꿔 사용해야 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민(民)'이란 말 속에 지배·피지배의 관계, 다시 말해 봉건 제도의 잔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민'이 봉건 시대를 표시한다면 '씨□'은 민주주의 시대를 표시한다. 두 번째로, 우리의 민족 혼, 우리의 '스스로 함'을 되찾기 위함이다. 중국의 한자 문화에 눌려 잃어버린 민족정신과 언어를 찾기 위해 순수한 우리 말인 '씨□'을 쓰자는 것이다. 또한 '씨□'을 '씨알'로 쓰지 않고 '씨 □'로 쓰는 것도 '민'의 주체성을 찾고자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민중'이라는 말을 '씨□'이라는 순수 우리말로 바꾸어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 '씨□'이라는 말은 함석헌 선생의 스승인 유영모 선생에 의해 처음 사용되고 함석헌 선생에 의해 보편화되기 시작한 말이다. 이 '씨□'이란 말은 '씨'라는 말과 '□'이란 말을 한데 붙인 것이다. 보통으로 하면 '종자(種子)'라는 뜻이다. 이것을 순전한 우리말로 하면 '씨앗' 혹은 '씨갓'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의미는 '씨□'이란 말은 '민(民)', 'people'의 뜻인데, 우리 자신을 모든 역사적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격을 스스로 닦아내기 위해 일부로 새로 만든 말이다. 또한 '□'은 발음을 '알'과 같이 할 수밖에 없지만 이 한 단어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즉 'ㅇ'은 '극대(極大)' 혹은 초월적인 하늘을 표시하는 것이고 '·'은 '극소(極小)' 혹은 내재적인 하늘 곧 '자아(自我)'를 표시하는 것이며, 'ㄹ'은 활동하는 생명의 표시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신학의 한 걸음 더 나아간 발전된 모델로서 '씨□신학'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민중신학이 한국의 '씨□'들 편에서 그들의 '스스로 함'을 신학적 근거로 삼아 '씨□'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운동을 실현 하고자 하는 한국신학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국 '민중'을 제대로 된 이름인 '씨□'로서 부르는 작업을 통해 이를 시작으로 이 한국 땅의 올바른 '스스로 함'을 세워나가자는 의도인 것이다. 이렇듯 '민중'을 '씨□'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사용하는 것을 통해 한국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이 좀 더 '스스로 함'을 그 신학함에 철저히 세워나가기를 바란다. 따라서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을 새로이 하여 발전된 모델로서 '씨□신학'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민중신학'의 발진 모델로서의 '씨□신학'이 풀어나가야 할 여러 과제 중에 필자가 깨닫게 된 중요한 하나의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본 논문을 끝맺고자 한다. 그 과제라고 하는 것은 민중신학도 '민중의 현장'으로 다시금 성육신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안 민중신학이 발전해 오면서 민중신학은 기존의 정통신학과는 달랐던 가장 큰 독특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는 초기 민중신학과 지금의 민중신학 즉 제 1세대 민중신학과 2세대 민중신학은 차별성보다는 계승 발전이라는 연속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의미는 민중의 고난을 증언하는 신학으로서 민중신학은 70년대 말까지 그 내용과 방법의 기본골격을 이미 다 완성해 놓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제2세대 민중신학은 '민중의 현장'에서 점차 멀어져 또 하나의 '사변적 신학'으로 타락해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의 발전 모델로서 제시하는 '씨□신학'은 이러한 민중신학의 문제를 직시하고, 앞서 밝힌 바대로 다시금 민중의 현장으로 내려가 그 신학함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에 따른 구체적 행동 방식으로 지식인들의 언어로 점철되어가고 있는 민중신학의 언어들을 이 땅의 '씨□의 언어'로 재창조하는 것을 제안해 본다. 그래서 '씨□'이면 누구나 하느님의 복음을 대할 때에 그 의미를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씨□'들의 삶 속에 철저히 와 닿는 구체적인 복음을 말하는 '씨□의 신학'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는 본 필자는 물론이고, 앞으로 한국신학의 '스스로 함'을 갈망하는 많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의 끝없는 연구를 통해서만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이리한 한국신학의 '스스로 함'이 온전히 세워져, 이 한국이라고 하는 땅에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온전히 세워시기를 바라며 이것이 불시가 되어 한국사회에 '스스로 함'이 확립되는 하느님 나라 운동이 활화산같이 터지기를 기대한다.

    • 기독교신앙의 한국적 토착화 방법론 연구

      진성한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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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 선교 역사 100여 년 동안 우리는 미국의 보수주의적 근본주의 신학이 전해준 교리적 그리스도를 복음과 동일시하며 비판적 성찰 없이 받아들였다.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인의 얼과 혼에서 우러나오는 신학과 신앙의 토착화를 이루지 못한 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미국의 문화와 그들의 사고 체계까지 복음과 혼동하며 그렇게 살아야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성도의 할 일 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초기 선교사들은 거의 20대로써 신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신학적인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거나 전개해볼 시간적인 여유를 가져보지 못한 상태에서 낯선 우리나라에 들어와 선교를 했기에, 복음과 전통문화의 조화라든지 복음의 토착화나 한국적 기독교 형식을 주형하는 작업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그들에 의해 잘못 전해진 복음은 그 큰 줄기를 타고 오늘날까지 기독교계의 큰 맥이 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기독교는 서구 문화일 수 없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미국인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그들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피부색은 누런 색인데 파란 눈에 하얀 피부를 가진 서양인의 문화를 흉내내며 그들이 가르쳐준 방식대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된 소식은 아닌 것이다. 미국인은 미국인의 모습으로 한국인은 한국인의 모습과 생각대로 인도인은 인도인의 전통 위에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참된 복음이라고 믿는다. 복음이 우리 땅에 와서 우리의 문화와 융화, 또는 순응해서 좀 더 불신자들과 문화와 전통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토착화 문제는 60년대 토착화 논쟁 때부터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교회에 큰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전통문화를 적대시했던 초기 선교사들로부터 이어받은 근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신학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교회로부터 공감을 잃어버린 토착화 논의는 한국 교회 일반의 관심사로부터는 점점 멀어져가고 몇몇 사람들의 외침만 남아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미 토착화 되어진 요소들 중에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효과적인 복음전파와 세계 선교를 위해 토착화 논의는 앞으로 계속 되어져야 할 과제이다. 선교에 있어서 토착화 과업은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성육신 사건을 토착화의 모델로 삼아 효과적인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 바람직한 토착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토착화운동 정신(spirit)은 언제나 성령의 역사에 깊이 응답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며, 토착화에 많은 관심과 이에 맞는 신학적 이론이 뒷받침이 되어야하고, 토착화는 성경적이어야 할 것이다.

    • 신학과 자연과학의 대화 : 판넨베르크의 신학을 중심으로

      박성준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33263

      신학적 질문이 발생하는 장소를 경험세계, 곧 이성이 주도하는 보편역사로 보았던 판넨베르크는 신학의 위상을 분명 교회의 학문으로부터 보편 학문에로 상승시켰다. 종교개혁 이래로 '오직 성서로만'이라는 원리에 갇혀 특수 학문으로 게토화된 신학적 주관주의를 극복하여 학문의 객관성을 담보한 점과 교회 중심의 신학이 아니라 전 우주 자연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창조 망각의 기독교 전통을 회복시킨 사실들은 보편사 신학으로서의 판넨베르크 자연신학의 위대한 공헌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는 그의 위대성은 과학의 권위에 의기소침해지지 않고 신학의 입장에서 오히려 과학의 한계를 지적한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판넨베르크는 하나님이 우주 창조주인 한 하나님에 대한 진술 없이 과학의 자연 설명은 불충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판넨베르크의 자연신학은 자연 실재 모두를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로 보아야 할 당위적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판넨베르크의 자연신학의 문제점은 그의 과도한 신학적 해석에서뿐만 아니라 현재과학에 대한 제한적 지식으로 인해 과학자들 사이에서 실제로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넨베르크는 하나님이 자연과학적 실재의 범주들 속에서 이해된다고 역설하였다. 바로 이것이 자연과학이 제시하는 장(場)이론이 하나님에 대한 실재적 지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었던 판넨베르크 사유의 핵심이다. 즉 하나님은 자연세계 내에서 실재로서 경험되고 과학을 통해 구체화되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실재로서 하나님을 말하는 판넨베르크의 자연신학이 인간 역할을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판넨베르크의 자연신학은 인간 요소가 배제된 채 우주에 미치는 힘들의 장 속에서 하나님과 사물들 간의 관계구조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판넨베르크의 우발성에 대하여는 그가 수차 지적했듯이 자연 세계 및 그 현상을 필연적 법칙으로 이해했던 근대 과학의 세계관을 우발성의 빛에서 정당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자연 세계 내에서 결정론적 법칙을 거부하는 점에서는 동의할 수 있으나 신의 영역 및 그 역할을 강조할 목적으로 자연법칙 일체를 우발성으로 보는 것은 자연과학자들이 긍정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판넨베르크는 신학에 과학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할 만큼 신학과 과학의 방법론적 유사성을 강조한 학자이다. 그럼에도 과학은 주어진 자연 조건과 원인에만 국한되어 연구하는 방법론적 한계를 지닌 반면 신학은 종말과 같이 예측 불가능한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였다. 신학은 본질상 실재를 과거와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를 포함해서 총체적으로, 종말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영역을 강조함으로써 신학과 과학간의 대화는 빗나가게 된 듯한 인상이다. 미래를 실재적으로 예측하려는 신학적 작업은 신학 고유의 일이긴 하되 간학문적 대화를 위해서는 어려운 주제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자들의 논의 밖에 있는 형이상학, 기독교 교리의 전제를 가지고 과학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경험적 신학이 요구되는 현실에서 방법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알기 위해서 믿어야 할 뿐 아니라, 믿기 위해서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디트리히 본회퍼의 그리스도론 연구

      유용선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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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의 주된 대상은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이다.제 Ⅰ 장은 연 구의 목적과 연구방법을 다룬다. 제 Ⅱ 장은 본회퍼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우선 본회 퍼의 생애를 살펴본 후,본회퍼의 시대적 배경과 그의 신학적 세 가지 배 경(루터의 십자가 신학,자유주의 신학,바르트 신학)을 살펴봄으로써 본 회퍼의 신학 특히 그리스도론에 끼친 영향을 규명하고자 한다. 제 Ⅲ 장은 그리스도의 인격적 현존에 중심을 둔 그리스도론적인 구조인 ‘나를 위한’(prome)구조를 고찰하고,그리스도의 인격적 현존 형 태를 다루고자 한다.또한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으 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즉 말씀,성례 전,교회공동체로서의 그리스도의 인격적 현존이라는 중심사상을 통해 그 리스도론적 구조를 고찰하고자 한다. 제 Ⅳ 장은 인격적으로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위치,즉 그리스도가 인간 존재,역사,자연의 중심과 중보자로 계심을 고찰하고자 한다. 제 Ⅴ 장에서는 본회퍼의 학문적 그리스도론이 발전하여 실천적 그리스도론으로 완성된다.실천적 그리스도론의 중요한 명제들(신앙,값 비싼 은혜와 값싼 은혜,그리스도의 혁명,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칭의 와 성화)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마지막 제Ⅵ장은 결론 부분으로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을 요약하고,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 인지를 알아보고 본 논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목회상담에서 신학과 심리학의 관계

      지현민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11 국내석사

      RANK : 233263

      목회상담에서 신학과 심리학의 관계를 연구하고자, 두 학문의 상호 관련성과 상호 영향을 살펴보고, 서로 관계해 온 역사와 다양한 입장들을 고찰하며, 통합적 관점에서 돈브라우닝과 토마스오든의 입장을 정리하여결론을 내었다.

    • 성 버나드와 이용도의 신비주의적 영성 비교연구

      유연태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5 국내석사

      RANK : 233263

      장구한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기독교가 생명력을 잃어가고 신앙의 정도가 변질되어가는 상황 가운데 그 시대를 책망하고 또한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는 선지자 역할을 감당한 사람 중 사랑의 영성운동가인 버나드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시대적으로는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영성으로 일제하 한국교회를 책망하고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원하려 몸부림 쳤던 이용도 목사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들이 뿜어내는 사랑의 열기는 각자의 지대를 뒤흔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시대에까지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두 사람의 신비주의를 분석하기에 앞서 신비주의의 개념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한다. 버나드와 이용도는 신비주의적 영성 운동가이다. 오늘날 대부분은 '신비주의' 라는 용어를 부정적인 말로 오해하고 있다. 즉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성격이 강하며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기독교와 신비주의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기독교는 신비 자체이다. 그리고 버나드와 이용도의 신비주의는 철저히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신비주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속신앙에 의한 신비적 요소가 강하게 이미지화 되어 있으나 기독교 신비주의는 성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관계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신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먼저 12세기 버나드의 신비주의적 영성을 살펴보기 위해 버나드 당시의 시대적·종교적 상황을 살펴보았다. 당시에는 스콜라신학에 의한 이성주의가 신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콜라신학과는 대조적으로 이성을 초월하고자 속세를 벗어나 은둔생활을 하며 신과의 합일을 이루려는 수도원 운동이 한창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이 두 가지 흐름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신학의 이성적 조명을 강조하는 스콜라와 이성보다는 경험과 감성을 중시하는 수도원 중심의 신비주의는 몇 세기동안 각자의 자리를 지켜왔다. 한편 버나드는 신비주의적 사상가이지만 그의 신학 전반에는 지적인 내용이 많이 나타난다. 혹자는 버나드가 '스콜라 신학에 반대하는 신비주의자'라고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만, 그의 신비주의적 사상은 일부 스콜라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당시 버나드는 지적인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을 발휘했고, 반대로 평범한 대중에게는 그의 경건하고 검소한 삶의 모범을 통해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게 하는 놀라운 흡입력을 가지게 되었다 버나드는 시토수도원에서 경건의 훈련을 쌓았다. 클루니수도윈의 개혁운동이 힘을 잃어갈 즈음에 시작된 버나드의 역할은 수도원 운동에 활기를 불어 넣어준 것이다.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접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비우고 헌신하는 훈련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신비주의자이자 사회에 개혁을 일으키는 사람이 된 것이다. 버나드 신비주의의 핵심을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로 그의 모든 사상이 그리스도에 집중되며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의 신비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여 신성에 접근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 신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신적체험을 위한 유일한 접촉점이다. 둘째로 버나드의 사랑 신비주의는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의 견인이자 점진적이다. 영적진보의 삼단계로서 발에 입맞춤으로 시작해서 손의 입맞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그리스도의 입술에 입맞춤은 사랑의 최고경지로 인간으로 하여금 황홀경을 느끼게 해 준다. 또한 사랑의 완성을 위한 네 단계의 사랑에서도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위한 자기사랑'의 이기주의적 사랑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단계의 상승은 하나님의 사랑의 견인으로 이루어진다. 이렇듯 버나드의 사랑 신비주의는 계속되는 인간의 영적 경험의 수반을 강조하며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는 것이다. 셋째로 버나드는 인간의 자기사랑(인식)을 하나님 사랑의 출발점으로 보는 독특성을 보인다. 이성적으로 자기를 인식함이 가장 우선시되며, 나아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자기애(自己愛)는 이기적이지만 이 사랑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정확히 설명한다. 이것은 버나드가 보는 인간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며, 모든 인간을 하나님 사랑의 파트너로 인정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자기애를 단지 하나님 사랑과 대치되는 부정적인 사랑으로 판단하고 있다. 넷째로 버나드는 사랑의 완성은 주님의 부활시에 영원하며 이 땅에서는 잠시 그 맛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설명한다. 그 황홀경의 체험은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체험되는 것이며, 그 사랑의 체험으로 고통의 아픔을 잠시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버나드의 사랑에 대한 견해는 믿음을 가진 인간으로 하여금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고 이 땅에서는 이웃을 위한 사랑과 헌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용도의 신비주의적 영성에 대해 정리하면, 우선 그가 자라난 시기가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압박을 받는 시기로서 민족의식을 하나로 묶는데 중요한 시대였다. 이때에 교회는 초창기에 정치적인 요소를 제거하여 오히려 경건의 신앙 운동으로 부흥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차츰 민족의 위기 극복을 위해 앞장서는 역할을 감당해 냈고 종교적지도자가 곧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을 정점으로 일본의 종교적 탄압은 교회에 대한 간섭으로 심하게 나타났고, 한국 교회 내에서는 또 다른 민족운동의 일환인 사회주의 사상이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교회는 분열되고 혼란을 가져왔으며 올바른 제사장적 기능을 수행해 내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기독교는 종말론적 타계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한편 개신교가 수용된 지 16년밖에 되지 않은 1901년에 태어난 이용도는 10대의 세월을 독립운동에 바쳤고, 24세에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 정신적인 혼란과 폐병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개인적인 자살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변화되는 전환기를 맞이한다. 소위 성령의 체험은 25세때 휴양차 갔던 강동에서 부흥회 인도 중에 일어났으며, 그 후 계속되는 성령의 인도와 특별히 첫 목회지에서 사탄과의 영적싸움은 짧은 인생의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이용도는 성령체험 후 민족의 아픔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게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자신의 아픔을 대비시키면서 민족의 구원까지 확대하여 해석하는 눈이 생긴 것이다. 그러한 이용도의 복음의 시각에는 한국 전체를 품을 수 있는 선각자의 자세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연합을 갈망하는 그의 헌신적인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용도의 신비주의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이용도 신비주의는 철저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집중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피상적으로 보지 아니하고 내면적으로 체험한 결과이기도 하다. 가난함 속에서 성장하였고, 후에는 질병까지 갖게 되어 당하는 자신의 육체적 고난, 그리고 민족의 수난 등은 현실적으로 급박한 문제였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둘째로 이용도의 신비주의는 그의 신비적 체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사단과의 영적 싸움을 통해 강한 카리스마적 색채를 띠게 한다. 이것은 서양의 기독교 역사에서 찾아보기 드믄 현상이다. 대개 금욕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신비주의와는 달리 이용도는 금욕주의적 삶을 사는 동시에 여러 가지 점철된 위기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이러한 환경이 특이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랑의 신비주의자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된 것 이다. 셋째로 이용도는 사랑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구분한다. 세속애와 자기애는 지옥에 속한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천국에 속한 것으로 본다. 이와 관련 전자는 육에 속한 것이고, 후자는 영에 속한 것으로 오직 영에만 생명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육과 영의 이원론의 주장이 마니라 영의 세계를 사모하며 강조하는 설명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넷째로 이용도는 기독교 신앙을 믿음의 단계에서 사랑의 단계로의 전환을 이루어야 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신앙만으로는 만족을 느낄 수 없고, 또한 긍휼을 베풀 수 없기에 사랑으로 가능하며 사랑은 마지막 완성의 단계인 것이다. 따라서 이용도의 신비주의는 그 형성과정과 사상에 있어서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버나드와 이용도의 신비주의적 사상은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집중되며, 그 유사점과 차이점들을 간파할 수 있다. 이러한 두 사람의 신비주의적 사랑의 영성은 시대를 변화시킬 만큼 큰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람다면 이제 두 사람의 신비주의적 영성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 부정적인 것들은 비판하며, 본받고 실천해야 할 사항을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교회나 사회의 개혁은 외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시키고,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사랑의 힘으로 삶의 본을 보여 주며, 사랑을 실천해 나갈 때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버나드는 신비적 명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사랑의 연합을 이루었고, 이용도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임없이 이루어 나간다. 이들에게는 기도가 하나님의 임재의 통로이다. 밤을 새며, 허리가 펴지지 않을 정도로 드렸던 눈물의 기도는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영적 힘의 근원지였다. 오늘날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가운데 대다수는 기도보다는 교회의 사역이나 프로그램 등 부차적인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 개신교 초창기에 가졌던 오랜 시간의 사경회나 기도회의 열정은 이제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개인의 심령이나 교회가 다시 서기 원한다면 오직 기도의 사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셋째, 버나드는 처음부터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나님을 찾는 훈련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로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은 욕구와 열정을 가지고 수도원에서 훈련을 쌓은 것이다. 그 후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기독교의 금자탑을 쌓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용도도 육체적·정신적 혼란 가운데 하나님을 만남으로 회심 체험을 하게 되고, 이후에는 겸손과 기도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민족의 영적 지도자이자 부흥사가 된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온전하고 깊은 관계 회복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정립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용도는 현대 교회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바로 예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넷째, 버나드와 이용도가 가졌던 사랑의 영성이야말로 다원주의 사상이 농후한 현대시대에 가장 유일한 해결책이며, 교파문제와 사이비종파의 문제로 심각한 오늘날에 가장 적합한 판단의 기준점이다. 전자에 대하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의 영성으로서 그리스도 중심의 구원론이 그 해결책을 제시해주며, 후자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관계를 통한 이웃사랑과 실천의 영성을 통해 그 기준을 가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버나드와 이용도의 신비주의적 사랑의 영성은 시대를 초월하여 기독교 역사에 큰 공헌을 하였고, 또한 그들의 사상은 오늘날까지 시간의 벽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버나드가 보여주었던 점진적인 사랑의 원리는 경험을 중지하면서 그 과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며, 이 용도가 말한 그리스도의 사모의 정도에 따른 영의 깊이에 대한 이해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과 복음과의 창조적 융합을 잘 설명해 준다. 그리고 당시 버나드와 이용도가 외쳤던 교회개혁사상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부흥이라는 슬로건 아래 물량주의만을 지향하는 왜곡된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채칙질을 해 준다. 또한 회심이나 구원의 확신 없이 영성훈련만을 중시하여 기독교인이란 가면을 쓴 현대인들에게 영성훈련이 무엇인지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즉 버나드와 이용도는 구원받은 사람들로서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영성은 훈련이 아니라 아닌 오직 구원의 결과로 나타난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자체이다. 이러한 버나드와 이용도의 신비주의적 영성은 앞으로도 다가오는 시대에 맞추어 새롭게 조명되어질 가치가 있고, 나아가 학문적 차원에서 내면적 인식의 단계로 끊임없이 계승되어야 할 신앙적 유산인 것이다.

    • 정보화시대 교회학교의 역할에 관한 연구 : 교육신학을 중심으로

      안윤태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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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적, 교회 내외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본 연구자는 먼저 한국개신교회교육이 정보화시대의 세계화 물결이라는 대세에 밀려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에 지금 교회가 처한 상황과 교회학교의 현주소를 찾아봄으로써 교회학교교육의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먼저 분석해 보려고 하였다. 다음은 그 위기의 원인들의 근저에는 주일학교의 역사 속에서 교회과 교육의 관계 정립이 잘못되었던 유산과 교육신학의 왜곡에 있었다는 소중한 발견을 전제로 하여, 과거 미국에서 일어났던 교회학교에 대한 교육신학적 논쟁이 남긴 학자들의 통찰을 거울로 삼고 21세기 정보화시대 교육신학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교육신학적 기초작업의 토대 위에 정보화시대 교회교육의 새로운 역할과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 것이 본 논문의 집필 동기와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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