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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일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8 한국학연구 Vol.64 No.-
This research is the roundup of ‘A Study on Korean Students Studying Magazines(First Publication) in Japan’ and the follow-up study of ‘A Study on Korean Students Studying Magazines in Japan’(“Jouranl of Korean Studies”55, Center for Korean Studies, Korea Univ. 2015) and ‘A Study on Korean Students Studying Magazines in Japan Before 1910’(“Jouranl of Korean Studies”58, Center for Korean Studies, Korea Univ. 2016). This research takes its subjects of following volumes: 5 volumes of Hakwoo(Classmate), which is the magazine of Korean students in Japan university, Hoebo(Chosun student alumni bulletin in Meiji University), Hoeji(Woori alumni bulletin in Chuo University), Hoebo(Chosun student alumni bulletin in Kyoto Imperial University), Dongchanghoehoeji(Woori alumni bulletin in Waseda University), and 10 volumes of Nakdongchinmokhoe-Hakbo(Bulletin of Nakdong-Chinmokhoe, Daehanhakhoe-Wuelbo(Bulletin of The Korean Society), Daehanhung-Hakbo(Belletin of Daehan-Hung), THE HAK KIE BO(Bulletin of Academic World), Geundae-Sajo(Modern Trend), Hakjigwang, Yeojagye(Women’s World), Samkwang(Three Light), Hyundai(Modern Times), Geumgangjeo(Vajra), Hakjo, THE KAICHUCK, Hakhae except 8 volumes of Chinmokhoe-Hoebo(Bulletin of Chinmokhoe), Taegeuk-hakbo(Bulletin of Tae Geuk), Gongsu-Hakbo(Bulletin of Gongsu), Daehanyuhaksaeghoe-Hakbo(Bulletin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Students in Japan), Dongin=Hakbo(Bulletin of Dongin), published before 1910. The ‘First Publication’, which is focused on this research, is essential data for guessing the direction of the magazine, since it contains the purpose, intention and the way of publication. Especially, through the research of the ‘First Publication’ of the magazine, representative keyword of each magazine is identified and the meaning inside is presented. The research of the contemporary magazine has its meaning on that it is the outcome of exploring how Korean international student recognized the reality and overcame it under the specific circumstance of Japanese colonial era. 본 연구는 「재일본 한국유학생 잡지 연구」(『한국학연구』,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5.12)와 「1910년 이전의 재일본 한국유학생 잡지 연구」(『한국학연구』,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6.12)의 후속 연구로, ‘재일본 한국유학생 잡지 <창간사 및 발간사>’ 연구의 종합편이다. 본 연구에서는 재일본 대학 소속 한국유학생 잡지인 <학우>, <회보>(명치대학조선유학생동지회회보), <회지>(일본중앙Chuo대학우리동창회회지), <회보>(경도제국대학조선유학생동창회회보), <동창회회지>(조도전대학우리동창회회지)의 5종 잡지와 1910년 이전에 발행된 <친목회회보>, <태극학보>, <공수학보>, <대한유학생회학보>, <동인학보>, <낙동친목회학보>, <대한학회월보>, <대한흥학보>의 8종 잡지를 제외한 나머지 10종(<학계보>, <근대사조>, <학지광>, <여자계>, <삼광>, <현대>, <금강저>, <학조>, <개척>, <학해>)의 ‘창간사 및 발간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연구를 수행하였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고 있는 ‘창간사’와 ‘발간사’는 잡지 간행의 목적 및 의도, 방법이 녹아있는 만큼 잡지 전체의 방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특히 연구 대상 잡지의 <창간사 및 발간사> 연구를 통해서 각 잡지의 대표적 키워드를 확인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였다. 이 시기 잡지에 대한 연구는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 아래 놓여있던 한국유학생들이 어떻게 현실을 인식하고 극복하려 했는가에 대한 모색과 탐색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를 갖는다.
????고려사?????에 나타난 팔관회의 음악양상 및 그 사상적 배경에 관한 고찰
한흥섭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06 한국학연구 Vol.24 No.-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study a music aspect and thought background of the Palgwan-hwae Ceremony on the Koryosa. A-ak(Chinese music of the royal court religious ceremonies), Dang-ak(Chinese music of royal court party ceremonies), and Sok-ak(Korean popular music)had been performed at the Palgwan-hwae Ceremony. Among them, A-ak had been played for showing the strict manner at a place and impressive ornamentation of salutation in accordance with Yae-ak Sasang. Various music performance of neighboring nations, which expressed a view of Koryeo-centralism would be an important repertory with 'Baekhee' public performance at that day. Dang-ak and Sok-ak also had been performed at a regular party of the palace. They can be distinguished by their contents of performance. Dang-ak was thick Taoistic disposition and Sok-ak was dense to Confucian disposition. However there is no historical evidence what exact title of Dang-ak and Sok-ak had been played at the regular party, we can say that three of Dang-ak, 'Dang-ak Jungjae' had been palyed at a concert as it had been represented Taoism very much. As I mentioned above, lots of Koyreo's music(and the music of neighboring nations) had been performed at Palgwan-hwae Ceremony. By contents or thought, various of culture had been represented at Palgwan-hwae Ceremony, like Confucianism ceremonies which was from Yae-ak Sasang, Taoism, Buddhism, and 'Backhee' plays, showing a faithful of local gods at Palgwan-hwae Ceremony. Therefore, Palgwan-hwae Ceremony was symbol as a national ceremony that had expressed diversity of Koryoe's culture. 이 논문에서는 고려사에 나타난 팔관회의 음악양상과 그 사상적 배경을 탐구하였다. 팔관회의 의례절차를 분석한 결과 아악, 당악, 속악이 연주되었음은 물론, 고려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여러 주변국의 음악과, 토속신에 복을 비는 백희가무가 이날 행사의 매우 중요한 하이라이트였음을 확인하였다. 아악은 예악사상에 따라 왕을 중심으로 한 예의 엄격한 절차와 장엄한 수식을 위해 주악되었다. 그리고 이때의 아악 가운데 고려 태조 원년(981) 이후 송에서 ‘대성아악’이 들어오기 전에는, 삼국(사국)시대 혹은 통일신라시대 이래의 “궁중에서의 제사활동이나 조회의례에서 사용하는 음악”이라는 의미의 아악이 사용되었다. 또한 고려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여러 주변국의 음악이 매우 중요한 의례절차로 주악되었으며, 신라유풍인 백희공연에서 가무를 통해 토속신에 복을 기원하는 의례절차 역시 팔관회의 본질적 의식임도 확인하였다.그리고 본격적인 연회에서는 당악과 속악이 연주되었는데, 내용상 당악은 도교적 성향이, 속악은 유교적 성향이 농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곡들이 주악되었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어 단언할 수는 없으나, 당시 궁중의 도교 취향 이외에도, 신선이나 장생불사(長生不死)와 같은 도교사상의 색채와 궁궐의 성대한 연회를 노래한 내용을 감안하면, 당악은 도교 취향의 ‘당악정재’ 가운데 ‘오양선’, ‘포구락’, ‘연화대’가 공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악곡이 연주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속악 가운데서는 속악정재인 ‘무고’, ‘동동’, ‘무애’가 공연되었으며, 노래는 ‘풍입송’이 연회 끝 무렵에 연주되었고, 삼국속악은 거의 불리지 않았다. 이처럼 팔관회 행사 때에는 고려시대의 아악, 당악, 속악은 물론 여러 주변국의 음악이 주악되었고, 사상적으로는 예악사상에 따른 유교적 의례, 도교적 신선 취향, 사찰 방문이라는 불교적 행사, 그리고 백희가무 공연에서의 토속신에 대한 신앙 등이 총체적으로 연출되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팔관회는 고려국의 드높은 위상과 고려문화의 다양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국가제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방병선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7 한국학연구 Vol.63 No.-
Joseon potter Shim Soo Gwan was kidnapp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from 1592 to 1599 and first lived in Gorai-cho and then moved to Naeshirogawa. The 12th Shim Soo Gwan(1835-1906) established the personal pottery kiln of Kyokugozan[玉光山] in 1871 and a pottery painting studio in 1888. From 1878 to 1897, he opened a Tokyo branch office and exported Satsuma ware under the supervision of his brother Shim Soo Sung[沈壽誠]. In the early years, Shim Soo Gwan family maintained Joseon style of pottery but from the 5th generation, the Satsuma style was fully explored. The 12th generation established his own style of Kinrande and over glazed ware and also black glazed bowls. 본고는 임진왜란 당시 피랍 도공 심수관가의 기원과 전개, 도자 양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심수관가는 일본 납치 초기 사쓰마 고라이쵸에서 지내다 지금의 나에시로가와로 이주하여 대대로 藩窯에서 작업하였다. 廢藩 직후 12대 심수관(1835-1906)은 1871년 나에시로가와 도기회사에서 일하면서 국내외 박람회 등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직접 玉光山陶器製造場과 陶器畵硏究所를 차렸으며, 동경 지점에서는 동생 沈壽誠 감독하에 수출용 사쓰마 도자기를 제작하였다. 심수관요는 사쓰마 인근의 백토와 天草 도석을 원료로, 유약은 균열유를 기본으로 백유와 흑유, 갈유 등을, 가마는 연방식 등요를 사용하였다. 심수관요 초창기는 조선 도기 양식이 주를 이루었으나 5대부터는 사쓰마 도자양식을 따랐다. 특히 12대 沈壽官은 白薩摩를 바탕으로 한 금채자기, 상형백자 등을 제작하여 사쓰마 자기의 典範으로 자리하였다.
송혜진(Song, Hye-jin)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4 한국학연구 Vol.51 No.-
본 연구에서는 세종대의 국가 음악 정비 과정에서 노정된 동아시아 예악에 대한 인식을 주요 쟁점별로 정리하고 이를 세종대에 간행된 악보를 통해 재검토하였다. 세종대에는 국가 의례음악 정비과정에서 예악의 불균형, 예악 전거(典據)의 선별과 습용(襲用) 범위, 아악전용과 향악겸용 문제, 조종의 공덕을 기리는 악무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예에 비해 소홀히 취급된 악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서 촉발된 예악정비는 고제(古制)를 전형으로 삼고 경전과 역대의 주요 역사서와 사전류를 참고하되, 중국의 예악 전승도 ‘순정’하지 않으므로 ‘고례(古禮)’와 ‘시의(時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귀결되었다. 아울러 세종 전반기에는 고제의 예악론에 따라 속악을 버리고 아악만을 전용하자는 논의가 우세하였지만, 점차 ‘조선의 음악이 중국과 다르다’는 인식하에 향악 겸용론이 정착되었다. 세종 후반기에는 조종의 공덕을 기리는 교화 목적의 대규모의 악무 제정이 새롭게 추진되는데 이 과정에서는 전통적인 예악론에서 기피하는 속악을 과감히 채용함으로써 중국과 다른 국가의례음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세종대의 예악론의 인식과 국가예악 정비의 성과는 세종대에 세 종류의 악보로 완성되어 『세종실록』 권 136부터 권147권에 부록되어 전한다. 『세종실록악보』의 아악보는 군·신·민·사·물의 질서를 악률론으로 구현한 『율려신서』의 이론 중 일부를 채택하여 논리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활용하여 조회아악과 제사아악을 완성하여 악보화하였다. 이 악보는 중국의 원전을 조선의 방식대로 재편한 것이며, 중국과 다른 기보체계인 ‘궁상자보’를 새로 만들어 쓴 것이다. 신악보는 향악과 고취악에 기하여 조종의 공덕을 기리는 악가를 수록한 것이다. <봉래의>·<정대업>·<보태평>·<발상>의 42곡이며, 중국악보에서도 활용된 적이 있는 네모칸 악보를 응용하여 가사와 악기선율, 음높이를 적고, 여기에 중국과 달리 음의 시가를 표기할 수 있는 유량악보, 즉 정간보를 탄생시켰다. 세종대에는 아악 외에 전래의 속악을 정비하는데도 힘을 기울였다. 세종대에 속악 23곡을 수록한 『시용속악보』가 간행되었고, 이 중 두곡이 『세종실록악보』말미에 수록되었다. 이상과 같은 세종시대의 음악정비는 동아시아 유교의 근간을 이루는 보편적 예악론의 구현에서 출발하여 고제에 맞는 아악을 완성한데 이어, 예악론의 자율적 해석을 통해 조선 고유의 독창적인 신악을 창조하였다는 점에서 유례없는 음악사의 업적으로 평가된다.
현대시의 돌봄 주체와 새로운 모성의 재현 연구 - 2000년대 여성시를 중심으로 -
김나영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22 한국학연구 Vol.83 No.-
시인과 시적 주체의 관계는 실제와 가상, 현실과 허구라는 대립된 이항으로 볼 수 없다. 시적 주체는 오히려 시인이 글쓰기를 통해서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시 텍스트 너머를 가정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로서 시에 자리한다. 본고는 시적 주체가 ‘시’와 ‘시대’의 관계와 요청에 의해 생겨난 개념이라는 전제 하에 시적 주체의 형성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사건으로서 ‘돌봄’이라는 타자와의 관계에 주목했다. 이러한 주체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전제를 바탕으로 본고는 시에서의 돌봄 주체와 그를 통해 새롭게 발명되는 모성을 논구하고자 했다. ‘새로운 모성’과 돌봄 주체에 대한 연구는 팬데믹 시기를 겪으며 드러난 돌봄 공백과 관련한 하나의 윤리적인 요청으로서 문학에서도 긴밀히 응답해야 할 최근의 과제이다. 모성을 가부장적 사회의 이데올로기로서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기보다, 모성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역설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이념과 사회 구조에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모성을 거듭 발명해야 한다. 본고는 2000년대 여성 시인 가운데 김행숙과 하재연의 시를 읽고, 각각의 시에서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일이 그를 어떤 새로운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들 시의 돌봄 주체는 아이를 돌보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돌보는 행위를 통해서, 여성주의가 모성에 대해 갖는 양가적인 태도를 극복하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 돌봄 주체를 통해 발휘되는 모성은 아이에 대한 돌봄 행위 속에서 자기 자신의 분열과 상실을 수습해가는 특성을 지닌다. 그로써 이들은 모성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동시에 새로운 모성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행위자와 피행위자 모두 소외되지 않는 방식의 돌봄에 대한 제안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돌봄 윤리와도 긴밀히 조응할 수 있다. 본고에서 다룬 2000년대 여성시의 돌봄 주체와 새로운 모성에 관한 문제의식은 차후 다른 시기의 한국 여성시에서 여성 주체와 모성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새롭게 맥락화 할 수 있는 주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1970년대 경제성장 정책과 전력체계의 재구성 -제2,3차 전원개발계획과 대규모 전력생산단지의 등장-
오선실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22 한국학연구 Vol.83 No.-
이 연구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이 본격화되던 시기, 그 기반으로써 전원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전원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은 발전원의 종류와 비율, 발전소의 크기와 위치, 전력공급계획까지를 포함해 한국에 적합한 기술 배치를 묻고, 한정된 자원과 물자를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기술적인 작업이었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의 방향과 속도, 그리고 그 경제성장을 가로막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전력량을 결정하는 정치적인 문제였다. 1970년대 전원개발 극대화 정책은 박정희 정부가 안보체계와 경제성장의 기반 모두에게 높아진 불확실성을 더 급속한 경제개발을 통해 돌파하는 과정에서 관철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전력체계에 대한 치밀한 구상 없이 성급하게 추진된 전원개발은 전력생산이 풍부해졌지만, 전력공급은 오히려 불안정해지는 기묘한 상황과 마주했다.
Corpus - based Translation of Korean Weather News into English
이동영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6 한국학연구 Vol.57 No.-
Weather news is reported several times every day to convey constantly changing weather conditions, which have an influence on our daily life. Thus, weather news has practical value to us. This study aims to translate diverse linguistic units that are used in Korean weather news into English on the basis of the corpus of Korean weather news and that of English weather news. Both corpora are constructed through the collection of online news from web sites, and thus they contain vivid expressions that are really used in the domain of weather news. This method of corpus-based translation enables us to obtain the product of translation that is free from translationese and to construct a parallel corpus that is useful to machine translation.
성격이 비극을 만든다 -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와 최인훈의 『광장』 비교 연구
손영도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22 한국학연구 Vol.83 No.-
주인공이나 주요인물에게 비참한 재난이 닥쳐오는 비극의 주요 원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적 결함(hamartia)를 드는데, 그중에서도 비극에서 가장 흔한 원인은 신의 경고를 무시하거나 중요한 도덕률을 어기게 하는 오만(hubris)이다. 휴브리스는 인간의 성격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오만한 성격 이외에도 이기주의나 이상주의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성격적 결함이 인간의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영국의 소설 중 고전 비극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로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을 꼽을 수 있는데, 그의 작품 속 많은 인물이 그러한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비극을 맞게 된다, 그의 작품 중 『미들마치』(Middlemarch)에서 성격으로 비극을 맞게 되는 인물들을 살펴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소설 중에서는 최인훈의 『광장』을 자신의 성격적 결함으로 인해 비극을 맞이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매우 보기 드문 소설로 보고 두 작품을 비교 연구하였다.
남영희,이순욱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22 한국학연구 Vol.83 No.-
<낙동강>은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에서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연대하여 제작한 영화다. 이제껏 영화필름의 미발굴로 실체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2022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원본필름을 발굴했으며, 디지털화 작업을 거쳐 10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다. 이 논문은 실체가 공개된 <낙동강>의 제작 과정과 제작진의 성격, 영화음악과 주제 등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연구다. 이 영화는 향토문화연구회의 주도로 경상남도 공보과에서 제작비 1천만원을 지원받아 제작한 16mm 흑백 다큐멘터리 영화다. 1951년 말 제작을 완료하여 1952년 2월 14일 오전 10시 문화극장에서 시사회를 열었으며, 2월 23일 부민관에서 개봉했다. 촬영기간 40일, 제작기간은 총 3개월에 불과했다. 낙동강변을 배경으로 후방사회의 지원과 결집을 강조하는 선무적인 주제를 담고 있었다. 이 영화의 제작 동기는 낙동강전선의 승리를 기념하고, 유교·불교·도교 기반의 영남문화를 소개하며,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데 있었다. 당시 많은 매체에서 문화영화로 분류하면서도 새로운 형식의 문화영화로 평가하였다. 윤이상의 영화음악과 조용자의 무용을 통해 감정표현을 강조했다는 점,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문화영화와는 차별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예산과 기자재가 부족한 환경에서 전문영화인이 아닌 지역예술인들이 폭넓게 결합하여 낙동강의 심상지리를 잘 반영했다는 점에서 지역문화사적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다.
김은경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9 한국학연구 Vol.70 No.-
In the Joseon Dynasty, white ceramic culture continued to develop through active exchanges with China, which had a high level of ceramic culture. The pottery exchange with the Ming Dynasty continued from the early Joseon period, According to the records, especially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世宗), Chinese ceramics were handed down to the royal family of Joseon by Xuande(宣德) Emperor of the Ming Dynasty. The porcelain ware of the Ming Dynasty, unearthed in Korea, is quite specific and diverse, including when it was made, where it was produced, and what kind of products it was, which makes one guess at the active exchange of ceramics with the Ming Dynasty at that time. The absolute majority of Ming Dynasty ceramics introduced into Joseon are Blue and White Porcelains produced in Jingdezhen of Jiangxi Province, followed by Blue and White Porcelains and Wucai Porcelains produced in Fujian Province. There are some questions in this situation, and the most notable of them is the fact that no Porcelains from the Royal Kiln of Ming Dynasty has been unearthed. Until now, all of the Ming Dynasty ceramics from Korea are known to be privately produced, however Based on the 『Veritable Records of the Joseon Dynasty』(朝鮮王朝實錄), 「Five Rites」(五禮儀), Presented by Xuande Emperor to King Sejong, and the official-style of Ming Royal Kiln in early Blue and White porcelain of the Joseon Dynasty, It is highly likely that the porcelain of Royal Kiln of the Ming Dynasty came into Joseon through this fact. In this regard, a comparison between held the Vassal State of a foreign country of Joseon and other Vassal State of Ming Dynasty countries, can give a clue as to the inflow of porcelains of Royal Kiln or higher-level privately produced ceramics into Joseon. Next, many of the excavated relics are biased toward blue-and-white porcelain. The patterns and forms of blue-and-white porcelain are also limited to certain patterns, so it is not possible to see in Korea the variety of materials and types of colors that were popular in China during the same period. Only a small amount of Docai(鬥彩), Wucai(五彩) porcelains, which has exploded since the mid Ming Dynasty, was excavated in Korea, which is worth considering whether it was a result of the aesthetic feelings of the Joseon people at that time or for other reasons. Fortunately, a considerable number of Ming Dynasty ceramics have been reported in Seoul's consumer sites in recent years, providing important data to expand and move forward in previous research. In this study, intend to discuss a series of inflow situations and related issues that arise during the process of exchange of ceramics between Joseon and Ming Dynasty through accumulated data. 조선시대의 백자문화는 이웃 국가이자 당시 선진 자기문화를 이끌었던 중국과의 활발한 교섭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였다. 명과의 도자교류는 조선 초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세종년간에는 명나라 선덕제로부터 많은 도자기가 조선왕실에 전해졌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출토된 명대의 자기는 제작 시기, 생산지, 종류 등 상당 구체적이면서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어 당시 명과의 활발한 도자 교섭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한다. 조선에 유입된 명나라 자기의 절대 다수는 江西省 景德鎭窯에서 생산된 청화자기이며, 이어 복건성 일대에서 제작된 청화자기 및 오채자기들이 뒤를 잇는다. 이러한 출토상황을 살펴보면 몇 가지의 의문점이 따르는데, 그 중 가장 주목되는 상황은 바로 명대 관요품의 미출토이다. 지금까지 한국 출토 명대 자기 모두는 민요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朝鮮王朝實錄』,「五禮儀」등의 문헌기록에서 선덕제가 직접 하사한 그릇이나 禮器 관련 기록, 조선 전기 청화백자에서 명 官樣 요소의 확인 등을 통해 명대 관요품이 전해졌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와 관련하여 外藩國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조선과 명나라 藩國과의 비교는 당시 관요품 자기 혹은 이에 준하는 상급 민요품의 조선 유입에 대한 일말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다음으로 출토 유물의 상당수는 청화백자에 편향되어 있다는 점이다. 청화백자의 양식 및 기형 또한 특정 문양에 한정되어 있어 동시기 중국에서 유행하였던 다양한 문양소재와 기형들의 다채로움을 한국 내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명 중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유상채 자기인 두채, 오채 자기 역시 한국에서는 매우 소량만 출토되었는데, 이는 당시 조선인들의 미감에 의한 결과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지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볼 만 하다. 다행히 근래 들어 서울 사대문 내의 주택지에서 상당한 수량의 명대 자기들이 출토 보고되고 있어 과거 기존 연구에서 한 단계 확장되어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