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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韓高等工程敎育比較硏究從國家創新體系的角度出發

        이춘근 北京師範大學 1998 해외박사

        RANK : 248655

        본 논문은 국가혁신체제의 관점에서 중국과 한국의 공과대학을 비교, 분석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혁신체제에서 공과대학이 차지하는 기능을 교육기능과 연구기능으로 구분하고, 시기를 80년대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주요 논점들은 다음과 같다. 1.공과대학이 국가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그 나라의 국가혁신체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대학이 발전하려면 선진국의 대학을 일방적으로 모방할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각 혁신주체들의 특성과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 중한양국의 공과대학도 80년대 초 양국 혁신주체들의 변화에 따라 크게 변화하였다. 2.공과대학의 교육과 연구활동에 기업의 기술혁신 특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기업의 기술혁신 능력이 부족할 때는 학생들의 현장적응력을 강조하고, 적극적으로 기업의 응용연구에 참여한다. 기업의 혁신능력이 우수할 때는 창의적 능력 배양을 강조하고 기초연구중심으로 기업을 지원한다. 현재 중국은 전자에 한국은 후자에 치중하고 있다. 3.80년대 이전에는 중.한 양국 모두 대학이 기업의 수요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중국은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산업계 수요가 증가했으나, 공과대학은 정치투쟁과 지식인 정책,문화대혁명 등의 영향으로 이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한국은 경공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대학의 지나친 인문화로 공과대학과 기업이 분리, 발전하였다. 4.80년대 이후에는 양국 모두 공과대학의 학생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연구활동도 활발해졌다. 단 중국은 구체제의 유산인 대학 관리권의 분산,중복 투자, 규모효율의 저하, 경직된 교과과정 등의 제약을 받고 있다. 산학연협력에서는 기업을 보유한 행정 부서에서 대학을 운영하는 중국이 상당한 장점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아직 본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5.중국은 단과대학의 합병과 관리권 통합, 규모효율의 개선, 교과과정 개혁, 세계수준의 소수 우수대학 육성, 우수 연구소의 육성 등을 통해 공과대학의 기능을 재정비함으로써 새로운 국가혁신체제의 개편에 대응하고 있다. 한국 역시 교과과정 개혁과 연구중심대학 육성, 대학 특성화 등을 통해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대응하고 있다. This dissertation investigates the role of the pioneer Korean christians in beginning indigenous Presbyterian churches in Korea and in translating the Gospels into the Korean vernacular. Protestant christianity was introduced in Korea at a time when traditional religions were in a state of decay. The peoples receptivity to Protestant Christianity was closely related to the religious climate, since they were looking for something new that would quench their religious thirst. They were quick to appreciate the gospel. In addition, the instability of the socio-political situation that wae created through a series of criese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encouraged people in Korea to turn to Protestant Christianity. Pioneer Korean Christians who came mainly from northwestern Korea established the first indigenous Presbyterian churches, beginning the first Protestant missions in the forbidden land in which bo missionary was allowed to work, Most of these indigenous churches were self-supporting and self-propagating from the beginning. The indigenous Christians also played a renarkable role in translating the Fospels into the Korean vernacular. They produced two indigenous versions of the Gospels, the Yesoo Shung-Kyo version in Manchuria and the Yi Soo-Chung version in Japan, before growth of Protestant Christianity in Korea, laying the biblical foundation for the Korean Protestant church. The foreign missionaries in Korea carried on their work in the indigenous Protestant churches. They did not claim to be the founders of the Protestan church in Korea, bur they played a remarkable role in training indigenous leadership the developing the soul-winning churches.

      • 京味 : 從文學到文化

        신석찬 北京大學 1999 해외박사

        RANK : 248655

        1980년대 초, 문화대명과 그 이전의 각종 정치운동들이 야기한 사회모순들을 비교적 단순한 정치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묘사한 문학작품들(이러한 문학현상은 후에 "傷痕文學"과 "反思文學"이라는 이름으로 개괄되어 짐)에 대한 독자들의 전폭적인 호응이 점차 시들어 갈무렵, 北京文壇에는 이러한 문학현상과는 사뭇 다룬 風格을 추구하는 문학작품들이 나타나게 된다. 북경작가들은 북경의 독특한 민속문화와 북경사람 특유의 생존방식 및 그들의 문화심리 구조의 탐색을 통해 북경사회의 역사발전과정을 고찰해 보는 문학작품들을 발표하게 된다. 이러한 문학창작 경향은 점차 많은 북경작가들의 참여와 독자들의 호응을 통해 하나의 문학현상으로 자리 매김 하게 되는데, 문학 평론가들은 이러한 문학현상을 京味文學(Beijing Style)이라 규정짓고 작품을 통해 나타나는 북경사람들의 언어(北京話)와 생활방식, 문화심리, 민속경관 등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표된 京味文學에 관한 논문은 대부분 어느 한 분야에 치유쳐 있거나 혹은 문학이론적 측면에서 京味文學을 평가하고 있어, 京味文學에 內包된 北京文化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반적인 이해를 하는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본 논문은 기존에 발표된 연구성과를 기초로 총체적인 각도에서 京味文學에 나타나는 북경문화의 역사변천과정과 그 특징들을 논하고자 한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위해, 본 논문은 京味文化(Beijing Style Culture)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京味文學의 토대를 쌓은 老舍와 그의 창작경향에 영향을 받은 當代作家들이 북경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북경문화를 지칭한다. 京味文化는 다시 「하드웨어」와「소프트웨어」로 구성되는데, 전자는 천안문광장, 자금성,胡同이라 일컫는 북경특유의 골목, 북경의 전통가옥인 四合院 ,북경사람들의 문화휴식 공간 이였던 茶館 등 북경의 古都景觀과 제3,4도시순환도로, 입체 교차로 시내 중심가인 西單에 형성된 대형 백화점과 상가거리 초현대식의 고층오피스텔 淸代건축양식을 모방해 재건한 琉璃廠의 문화거리 등 근래에 형성된 북경의 도시면모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하드웨어」는 바로 京味文化의 외형적 標識이다. 후자는 북경이 수 백년간 중국의 首都로 내려오는 동안 이러한 도시성격으로 형성된 북경사람들의 언어관습과 풍속, 교류방식,문화심리, 가치관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들 「소프트웨어」는 京味文化의 주요 부분에 해당한다. 본 논문에서 제기하는 京味文化란 바로 表層의 「하드웨어」와 深層의 「소프트웨어」가 서로 의존하고 호응하면서 형성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京味文化를 구성하고 있는 이 두 가지 요소는 모두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게 되는데, 京味文化의 개념 역시 이로 말미암아 변화하게 된다. 따라서 京味文化와 그것의 변천과정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京味文學속에 나타나는 북경문화에 대한 제반 자료들과 그것과 관련되는 전문지식( 예를 들면, 언어학, 민속학, 사회학,심리학,역사학,등)들의 종합적인 고찰에 의해서만 효과적인 연구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老舍와 當代 京味文學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京味文化와 그것의 역사변천과정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연구의 관련 범위가 상당히 광범하기 때문에 ,설령 그것에 대한 개략적인 논술을 하더라도 다방면의 지식과 이론적인 준비를 필요로 한다. 習俗과 언어환경이 다른 곳에서 성장한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연구대상이 상당히 고난도 임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본 논문의 중점적인 연구방향은 京味文學이 내포하고 있는 북경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을 하거나 혹은 京味文學에 나타나는 審美적 特徵들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 개인이 구비한 特定한 시각에서 京味(Beijing Style)가 문학과 문화의 영역에서 역사적으로 어떻게 生成되고 변화하고 왔는가의 과정과 그 조건들을 탐색하고자 한다. 이 연구 계획을 실천함에 있어, 본 논문은 文學資料와 文化史料를 다같이 중시하였으며 이들을 통해 논문제목에서 보는 봐와 같이 "문학에서 문화까지"의 京味(Beijing Style)를 논술하고자 한다.

      • 淸末民初無政府主義的文化思想

        조세현 北京師範大學 1999 해외박사

        RANK : 248623

        淸末시기의 각종 사회사조 - 예를 들어, 공화주의, 군주입헌주의, 국수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 - 는 비록 그들의 정치이상의 실현여부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었으나, 民國시기에 사회운동으로 이어져 여전히 그 생명력을 유지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본 논문의 주제인 중국 무정부주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중국 무정부주의자들의 문화사상의 특징을 밝히려는 것이다. 무정부 사회혁명의 정치, 경제, 문화(도덕)혁명의 3대 혁명 가운데 가장 중국적 특색이 드러나는 것이 "文化革命論"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필자가 가진 관점의 하나는 무정부주의가 청말 민국초 여러 사회사조와 대립과 융합의 과정을 거쳐, 新文化運動 시기에 이르러 신문화를 구성하는 주요한 부분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신문화운동은 자유주의적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무정부주의와 같은 사회주의의 영향력 역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한편 근대 중국의 무정부주의는 進化論과 科學主義의 산물이었다. 무정부주의가 중국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시대적인 보편사조의 흐름 속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결코 무정부주의는 우연하게 등장한 기형아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무정부주의에 대한 몇 가지 잘못된 편견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본 논문의 전반부에서는 청말 러시아, 일본, 프랑스 등의 무정부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중국의 지식인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았다. 그 방법으로 <天義>, <衡報>, <世界>, <新世紀>와 같은 청말 무정부주의자들이 출판한 잡지를 분석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國學을 가지고 무정부주의를 해석하는 전통주의 성향의 天義派와, 西學을 가지고 무정부주의를 해석하는 反전통주의적인 신세기파의 차이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 두 파벌의 봉건문화 비판과 문화혁명론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자 시도하였다. 후반부에서는 우선 민국 초기에 활동했던 江亢虎의 中國社會黨과 師復의 民聲派의 문화사상을 연구하였다. 이 두 파벌은 중국 내에 무정부주의가 토착화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으며, 나아가 신문화운동 시기에 일정한 사상적인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양자 사이에도일정한 차이점은 존재한다. 다음으로 신문화운동의 대표적인 활동 - 留法勤工檢學運動, 北京大學의 개혁, <新靑年>의 언론 -에 나타난 무정부주의의 영향을 살펴보았다. 특히 무정부주의자의 反권위주의 정신은 신문화운동 시기의 우상파괴 정신과 일치하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라 직접적인 계승관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여기서도 <社會世界>, <良心>, <民聲>, <新靑年>, <自由錄>, <進化>, <奮鬪>, <北京大學學生週刊> 등의 무정부주의 잡지를 이용하였다.

      • 《傷寒論》在韓國的學術發展史硏究

        이은주 北京中醫藥大學 2005 해외박사

        RANK : 248623

        상한잡병론은 동한말년의 장중경(서기150-219년)으로부터 저술하고 모두16권의 장대한 분량으로 중의학의고전이요 제일처음의 임상의학전문서이다. 장중경은 상한등 급성 열병분야의 오장육부변증체계를 건립하여 중의학의 발전을 위하여 변증론의 기초를 세웠다. 동방의학의 발전을정리하면 장중경의 상한론은 전통의학의지침서이고 그이론의 실천가치는 21세기 오늘에도 여전히 보편적이며 긍정과응용학적인 것들을 얻을수있다.한국은물론 중국.일본에서도 상한론이 모두 전통의학학술연구의 중신체계이고 지금까지 의학의 필수교재와 임상의사의 의료실천의 경전이돼고있음은 두말할나이없다. 상한론이 한국으로 전해진후 한국적 특색에 맞게 계승 발전하였다.그러나 한국의 역대 문헌중에는 상한론을 언급한 내용은 비교적 적고 드물게 상한론에 대한 전문저작이있고 그리고 살항론을 집중연구한 논문은 극히미미하다 그래서 상한론의 한국 발전과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수있다. 우선상한론의 전입이 한국고대 의학발전상 현대의 한국상한론 연구 개황 상한론이 한의학 교육중에서의 지위에대해 연구의 중점을 이루었다. 본논문은 연구와토론을거쳐 정확하고 긴밀하게 한국의학의 고대저작 역대의 각해설 진료기록중의 상한론 고나련부분을 골라 수록한 구체적인내용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하여 정리를 진행하고 상한론의 한국에서의학술발전사의 윤곽을 묘사하고 사람들이 상한론한국학술발전사를 이해 하기 쉽게 작성했다. 동시에 구체적인 의술의 학술이론에 대해 비교적철저한 인식을 하고 옛것을 정확히 받아들이고 새로운것을 창조할수 있도록 이론기초를 제공하여 임상에서ㅕ의 도움을 죽ㅎ자한다. 《傷寒論》是中國傳統醫學的經典代表著作,至今有1800多年的曆史。東漢末年,張仲景著述的這本中醫學經典,曆經歲月的錘煉,到如今依然是中醫學理論和臨床研究的指針書。其理論和實踐價值在21世紀的今天仍能得到普遍的肯定和應用。無論是在韓國,還是在中國或日本,《傷寒論》都是傳統醫學學術研究的中心體系,至今成爲醫學徒的必修教材和指導臨床醫家醫療實踐的寶典,從中能夠切實地感受到其學術上的地位和臨床實踐方面的實用性。 據記載,《傷寒論》在統一新羅時代傳入到韓國。此後韓國曆代醫家對其進行過研究和應用,並通過繼承和發展,創立了一些具有韓國特色的醫學理論。但是曆代文獻中關於《傷寒論》的內容很少,更沒有系統進行全面論述的關於《傷寒論》的專著。雖然近年韓國國內對《傷寒論》的研究逐漸深入,但是研究方向和內容比較分散和繁雜,難以得到對它的宏觀認識。所以首先探索韓國《傷寒論》研究的學術發展面貌是非常必要和有現實意義的,也是擺在韓國《傷寒論》學者面前的一項重要課題。 基於上述的現實需要,也是爲了彌補目前韓國國內外沒有系統整理和研究《傷寒論》在韓國學術發展史的論文或專著的空白,作者通過本論文首次對韓國《傷寒論》的學術發展史進行比較系統全面的論述,利用文獻學研究方法,詳盡全面地收集和調查相關資料。在對有關資料進行鑒別、考證、分類、歸納的基礎上,加以綜合,並進行比較、分析和評論。 爲了更好地讓學者了解《傷寒論》在韓國的發展史,首先把韓國醫學從上古時代至今的曆史分爲上古時代、三國時代、統一新羅時代、高麗時代、朝鮮時代前期、朝鮮時代後期、高宗時代、日帝時代、解放以後等9個階段簡要地進行介紹,接著在這一整體韓國醫學史發展脈絡中,尋找《傷寒論》的學術發展軌跡。目前沒有對《傷寒論》傳入韓國年代的明確記錄,金鬥鍾在《韓國醫學史》中認爲《傷寒論》在統一新羅時期傳入韓國,但是無法考證具體年代,大約在公元700年到800年之間,當時對它的研究並不活躍。 在第二部分,主要探討《傷寒論》傳入韓國以後到解放以前的研究概況。這個時期,韓國醫學家對《傷寒論》的應用和研究並不活躍,作者重點選擇在韓醫學上最具代表性的專著許浚的《東醫寶鑒》和李濟馬的《東醫壽世保元》,分析和探討《傷寒論》對韓國解放前醫學的影響。 《傷寒論》傳入韓國後直到朝鮮前期,對它的研究依然甚少,比如在當時比較推崇的醫籍《鄉藥集成方》和《醫方類聚》中對《傷寒論》的應用很少。 到了朝鮮中期許浚的《東醫寶鑒》中《傷寒論》也沒有得到重視。《東醫寶鑒》對《傷寒論》的直接應用甚少,主要引用的是《內經》和金元醫學,引用最多的是《丹溪心法》的內容。《東醫寶鑒》之前韓國醫學因爲沒有相應哲學理論的支持而一直不成體系,沒有作爲獨立的醫學而存在。當時韓醫學最需要的是醫學哲學理論的導入,這就是《傷寒論》得不到重視而《黃帝內經》受到重視的原因。許浚的《東醫寶鑒》成立了韓國的自主醫學,此後與中國的醫學交流趨向減少,《東醫寶鑒》作爲新的醫源而發揮作用。 直到李濟馬的《東醫壽世保元》以後,《傷寒論》才真正在學術高度上受到重視。李濟馬在《壽世保元醫源論》中高度評價張仲景、朱肱、許浚等醫家,在書中最多引用的是張仲景的《傷寒論》,李濟馬四象醫學的形成很大程度上受到了《傷寒論》的影響。《東武壽世保元》中引用的文獻總共是22種,在137例文中對《傷寒論》的引用文多達66條,將近達半數。從此可見《傷寒論》是東武病證理論的重要基礎。《東醫壽世保元》在注重個人體質特性的基礎上,結合《傷寒論》的辨證內容進行再解釋,建立了更加具體的辨證體系。《傷寒論》是曆代辨證論治的指南針,其豐富的辨證內容始終影響著四象醫學的辨證體系。比較《傷寒論》和四象醫學,《傷寒論》是從恒動觀出發,把疾病分爲三陰三陽六個類型進行觀察的動態醫學;四象醫學是從個體體質的差異中把握人體爲太少陰陽四個固定模式的靜態醫學。但是動靜的概念亦與陰陽、先天和後天、形和氣一樣,包含動中之靜、靜中之動的兩面性,兩者是相輔相成的。 在第三部分,重點整理和分析解放以後的韓國《傷寒論》學術發展動態,分爲理論研究、臨床研究兩個部分進行全面詳細的介紹。在理論研究部分介紹了對《傷寒論》的翻譯和注釋、對《傷寒論》六經辨證體系的研究、關於《傷寒論》的文獻整理和研究等;在臨床研究部分介紹了傷寒方的基礎實驗研究、傷寒方的臨床應用研究,並附帶介紹傷寒方治療驗例。對原文的翻譯與注釋是學習和理解《傷寒論》的基礎;在《傷寒論》理論體系研究中,大多數爲對中國文獻的參照和應用,少有獨到見解;而傷寒文獻的整理和研究從多角度較全面地歸納和分析《傷寒論》相關內容,頗爲詳盡和全面。在基礎實驗研究方面,大體研究內容和方法跟中國沒有太大差別,主要是利用現代先進的科學手段,來證實和分析相關傷寒方劑。在臨床應用方面,主要進行對某類方劑系統研究的基礎上,對傷寒方劑的療效進行驗證,並對其適應範圍進行擴充,詳細記述了相關傷寒方的臨床治療驗例,爲以後學者的臨床應用奠定了基礎。 在第四部分,介紹韓國《傷寒論》教育情況,分爲韓國國內主要的《傷寒論》教育機構、《傷寒論》教育狀況、《傷寒論》研究大家等三個方面進行介紹。目前,韓國《傷寒論》教育面臨著嚴峻的考驗,在韓醫科大學未受到足夠的重視,甚至有人企圖廢除《傷寒論》在韓醫科大學的教育。韓國人曆來重理論而輕實踐,在醫學領域中普遍存在“重內經而輕傷寒”的現象,這是《傷寒論》在韓國學術發展的不利因素。所以必須確立《傷寒論》在臨證醫學中的主導地位,放在與《內經》同等重要的韓醫學的經典書籍的地位,通過國內《傷寒論》研究者共同努力,加強國際交流,開辟新的局面,走在韓醫臨床醫療的前沿,這是擺在《傷寒論》研究者面前的嚴峻任務。 最後,通過總結和分析《傷寒論》在韓國學術發展曆史,指出今後的發展方向。在這一部分,將解釋韓醫學和東醫學這一概念,提出韓醫學和《傷寒論》發展中存在的問題,指出韓醫學和《傷寒論》今後的發展方向。與西方醫學相比,韓國國內對韓方醫學的重視程度不夠,在政策和投入方面都顯得相對薄弱。在醫療政策方面,尤其在韓醫學領域中,對《傷寒論》和傷寒方的重視不夠。在治學思想方面,缺乏對《傷寒論》的重視,沒有明確樹立《傷寒論》在臨床醫學中的重要地位。在研究主體方面,關於文獻的整理和研究比較全面,但是關於臨床應用方面的研究太少,這與《傷寒論》是關於臨床醫學指針書的地位不相符。在《傷寒論》教育方面,師資力量相對薄弱,在韓醫科大學中的課程安排中沒有占有顯著地位。所以,今後要加強韓醫學領域中的南北韓交流和國際協作,制定相關法律,在教育、研究、貿易等各個領域,推進持續的發展。政府要認識到韓醫學協作和交流的重要性,要制定相對優越的相關政策。韓醫科大學和大韓韓醫學學會認識到問題的現實性,致力於確定關於韓醫學和《傷寒論》研究方向、研究人員、研究經費的長遠戰略方針,制定具體系統的研究計劃。從思想上確立《傷寒論》在整個韓醫學領域中的重要地位,把《傷寒論》作爲臨床醫療前沿的指針書,進一步研究和發展其理論和方劑。

      • 沈從文與城市文化 : 北京, 上海 = Shen cong-wen and urban culture : Beijing, Shanghai

        길정행 北京大學 2002 해외박사

        RANK : 248623

        This article is mainly analysis the relation of Shen cong-wen and urban culture: Beijing culture and Shanghai culture. In 1923 year Shen cong-wen had arrived Beijing, in Beijing have lived about 13 years. Shen cong-wen unavoidablely had received a great influence of Beijing culture. As a observer of Beijing city, he vivdly depicts the city of Beijing and the people of Beijing. In 1928 year, Shen cong-wen had arrived Shanghai, in Shanghai have lived about 3 years. Also, Shen cong-wen unavoidablely had received a great influence of Shanghai culture. As a observer of Shanghai city, he vividly depicts the city of Shanghai and the people of Shanghai. The dissertation comprise of seven chapters: Chapter 1 depicts Shen cong-wen and the city of Beijing; Chapter 2 the city of Beijing and the people of Beijing which Shen cong-wen had described; Chapter 3 the country memory and imagination which Beijing culture had aroused; Chapter 4 depicts Shen cong-wen and the city of Shanghai; Chapter 5 the city of Shanghai and the people of Shanghai which Shen cong-wen had described; Chapter 6 the country memory and imagination which Shanghai culture had aroused; Chapter 7 "Jinghai lunzheng"

      • 15·16世紀朝漢對音硏究 : Research of 15th and 16th Century Korean-Chinese Transliteration

        주성일 北京大學 2000 해외박사

        RANK : 248607

        본 論文의 目的은 15,16세기 朝鮮에서의 漢語 對譯音 資料를 통해 明代官話의 性質과 基礎方言 문제 그리고 北京語音의 漢語史的 위치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考察함에 있다. 本文은 총 6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괄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第1章은 序論으로서 본 論文의 硏究 方法과 目的 그리고 旣存의 硏究 狀況을 기술하였다. 第2章에서는 朝鮮 初期의 言語 政策과 訓民正音을 이용한 中國語 注音의 學術的 價値에 대해 論하였다 第3章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中國內外 학자들의 明代 官話에 대한 認識을 基礎로 하여 明代 官話의 性質과 北京語音의 漢語史的 地位를 살펴보았고 두 번째로는 각종 歷史 文獻의 記錄을 통해 먼저 朝鮮 史臣들의 對明 使行路와 目的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당시 朝鮮人들이 學習의 目標로 삼았던 中國語의 性質에 대해 알아보고 한걸음 나아가 당시 北方官話의 漢語史的 地位를 深度있게 分析해 보았다. 第4章에서는 당시 朝鮮의 對譯音 資料 즉 <洪武正韻譯訓>, <四聲通考>, <四聲通解>등의 韻書와 中國語 會話 敎材로 널리 사용되던 <飜譯考乞大>돠 <飜譯朴通史>에 보이는 "正音", "俗音", "今俗音" 그리고 "左音", "右音"에 대한 각각의 性質을 알아보고 申叔舟와 崔世珍이 각각 취하였던 中國語의 對譯音 體系와 각각의 差異와 限界들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注音 體系가 결국 反映하고 있는 것은 모두 北京語音이었음을 밝혔다. 第5章에서는 위에 言及한 對譯音 資料들과 당시 中國에서 유행하던 韻書들이 반영하고 있던 語音 體系들을 직접 比較하고, 이를 통해 15,16세기 北京語音을 기초로 한 北方官話의 語音 體系를 再構해보았다. 第6章은 本 論文의 結論으로서 각 章에서 얻은 結果들을 綜合하여 敍述하였다.

      • 戴震的“治學”與“明道” : DaiZhen's Scholarly Research and Philosophy

        박영미 北京大學 2005 해외박사

        RANK : 248607

        대진(1723-1777)은 청대 건가시기의 저명한 고증학자이자 철학자이다. 대진은 문자, 음운, 천문, 수학, 지리학에 기초한 훈고, 고증을 통하여 경전의 의리와 성인의 도를 밝히고자 하였다. 건가시기 학술의 주류는 고증학이였다. 하지만 대진은 자신의 학문영역을 훈고 고증에 한정하지 않고. 이를 기초로 하여 자신의 철학사상체계를 세운다. 따라서 대진의 학문은 두 가지 경향성을 보이게 된다. 하나는 경전의 고증을 중시하는 것으로, 이는 건가학파와 동일하다. 다른 하나는 경전의 의리와 성인의 도를 밝히는 것을 자신의 학문 목적으로 삼는데, 이는 건가학파와 다르다. 본 논문은 대진의 치학과 철학에 관한 연구이다. 대진사상에서 치학(治學)과 명도(明道)은 분리하여 논의될 수 없다. 치학은 철학을 목적으로 삼으며, 철학은 치학을 기초로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필자는 대진의 치학 정신, 방법, 과정 및 이들과 그의 철학과의 관계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대진사상의 변화과정에 대해 논의한다. 그의 사상은 고증을 중시하는 단계에서 이를 기초로 철학체계를 정립하는 단계로 변화되어 간다. 두 번째, 대진의 치학에 대해 논의한다. 그에게 치학은 지식을 구하는 것이다. 그는 충분한 근거가 없는 지식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는 학자는 반드시 충분한 근거를 가진 정확한 지식을 얻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대진의 경전해석에 대해 논의한다. 그는 지식을 구하는 것과 도를 구하는 것, 모두 경전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식을 구하는 것과 도를 구하는 것에 대한 그의 노력을 그의 경전해석과정 속에서 살펴본다. 네 번째, 대진의 철학사상에 대해 논의한다. 도를 밝히는 것은 대진의 치학의 궁극적 목적이다. 《맹자자의소증》에서의 해석 방법은 그가 추구한 치학 방법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철학사상은 그의 치학 목표를 반영하고 있다. 대진은 이 저서에서 리(理), 천도(天道), 성(性), 인도(人道), 지(知) 등의 송명리학의 개념들을 고증학적 방법을 통해 재해석한다. 戴震 (1723-1777) 是在淸乾嘉時期最著名的考據學者及思想家. 戴震由基于文字. 音韵, 天文學, 算學, 地理等的訓詁考據入手尋求經書義理與骨人之道. 在乾嘉時期,考據學已經成爲當時的學術主流. 其中, 戴震是唯一的把由訓詁考據以解經明道的宗旨徹底實薦的學者. 因此, 戴震的學問具有兩方面的趨向: 一. 重視訓詁考據的宗旨, 平生用力在訓詁考據上, 從這一方面着, 他可以說是乾嘉學術的承襲者; 二. 治學以明道爲目的, 而且志在揭開古今治亂的源頭. 所以. 其學問不能只爲知識而求知, 從這一方面着, 他不同于一般乾嘉學者. 本論文是關于戴震的 "治學" 與 "明道" 的硏究. 依戴震思想看. "治學" 不只是指訓詁考據方面, 而是他必須以明道爲目的; "明道" 不只是指論義理方面, 而是他必須以訓詁考據爲基출, 因此,. 雖然說爲 "治學" 與 "明道", 其實他們決不能分開說的. 戴震的這種學術宗旨的突出表現就是《孟子字義疏證》. 在 《孟子字義疏證》中, 戴震批評宋明理學的錯誤幷發揮自己的哲學思想. 不過其解釋方法與科程完全基于訓詁考據以釋文與解經. 由此可知. 戴震終于把自己的治學精神與方法徹底實薦而建立了新的義理之學. 本論文的內容分爲四個部門: 一. 首先討論戴震的思想演變. 戴震的思想演變顯現一個學者對于學問嚴謹與求精的態度及其思想變化的過程. 從重視訓詁考據的階段到發揮義理之學的階段, 他一步步實踐自己的學術主張. 二. 其次討論戴震的治學. 戴震的 "治學" 就是 "求知" 他主張, 沒有充分證據的知識("意見")導致 "害于事, 害于政" 因此學者必須力求具有充分根據的正確知識("十分之見"). 三. 再次討論戴震的治經. 戴震表示. 求知與求道就是以經典爲根底. 因此, 在他的治經成果中, 可以體驗到他如何試圖將求知與求道的結合. 四. 最后討論戴震的明道. "明道" 是戴震的治學目標. 在 《孟子字義疏證》中, 他把其治學方法反映在解釋體例與解釋方法中, 把他的治學目標反映在其解釋內容卽哲學思想中. 戴震對于理, 天道, 性, 人道, 知的理學範疇進行分析而重新解釋.

      • 通俗小說在當代(50-70年代)的流變 : The reheology of popular fiction in the modern times(1950s to 1970s)

        김효영 北京大學 2005 해외박사

        RANK : 248607

        본 논문은 40-70년대 중국 대륙의 변화하는 문학 환경 속에서 통속소설이 처한 상황을 주요하게 다룬 것이다. “오사(五四)”신문화운동과 “문학혁명”으로부터 탄생한 “신문학(新文學)”은 장기간 청말 민초(淸末民初) 자생(滋生)하고 발전한 통속소설을 자신의 대립면으로 삼아왔다. 20세기의 20-40년대에 신문학 진영은 지속적으로 통속소설을 비판해왔지만, 항전(抗戰)직후 40년대까지, 신문학과 통속문학은 상당히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당시의 특수한 사회문화적 상황 및 문학의 자체 발전 중 직면한 제반 문제로 인해 신문학과 통속문학(통속소설) 사이의 대립이 어느 정도 완화되기 시작했고, 개별 작품 간 상호침투 현상 역시 비교적 분명해지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중국공산당이 통제하던 근거지와 해방구에서는 조수리(趙樹理)를 대표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속소설”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40년대 후기, 주로 좌익문예계의 주도로 시작된 “새로운 인민문학[新的人民文學]”을 구축하고자하는 문학의 전형[轉折]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문학 “성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와 그들 사이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는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본 논문은 상술한 제반 문제와 당시에 발생한 몇몇 중요한 문학 현상과 사건 및 50-70년대 통속소설이 자발적 혹은 강제적으로 겪게 된 변화에 대해서 초보적인 묘사를 시도함으로써 “고아(高雅)”, “통속(通俗)” 관계의 측면으로부터 당대문학(當代文學)의 특질과 면모를 파악하고자 시도하였다. 서론은 80년대 이래 통속소설 관련 연구 상황을 검토하고 본 논문의 문제의식, 연구 시각, 연구 방법 등을 설명하였다. 제 1장은 40년대 통속소설의 상황을 검토하였다. 즉 유희적, 상업적 문학경향이 두드러졌던 기존의 통속소설계에 항전기간 동안 문학의 참여의식과 기능을 중시하는 “신문학화(新文學化)” 경향과 “고급화(高級化)” 추세가 출현한 상황과 “신문학” 진영이 보여준 통속문학에 대한 상대적, 우호적인 태도는 40년대 항전이라는 상황의 “특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본문은 “장한수(張恨水)의 길”이라는 비교적 전형적인 사례를 통해서 40년대 통속소설과 신문학 사이 상호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던 상황과 원인 및 성과 등을 살펴보았다. 제 2장은 40-50년대 소위 문학의 전형[轉折] 시기에 통속소설이 직면한 각종 “문제”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의 존속 가능성과 한계 등을 고찰하였다. 이미 문학의 주도권을 획득한 죄익문학 진영은, 정치적 원인 때문에 대중문학의 실천을 중시해왔는데, 통속소설과의 공통지대 역시 그 “대중성”과 “통속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40년대 후기와 50년대 초에 대중문예 실천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여러 가지 충돌과 모순은 통속소설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이하 몇몇 문제들을 포괄한다. 즉, 해방구의 “새로운 통속소설[新型通俗小說]”을 이상적인 대중문학 형식으로 설계하고, 적극적으로 검토한 것 ; 40년대 후기 홍콩에서 진행되었던 “방언문학”과 소설 〈하구 이야기[蝦球傳]〉와 관련된 토론 ; 1949년 〈문예보(文藝報)〉가 주재한 회의에서 “구식 연재 장회체 소설” 형식을 개조해서 당대문학의 형식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자 가설(假設)한 것 ; 1949년 상해에서 벌어진 “소자산계급을 표현해도 좋은가”의 토론과 소야목(蕭也牧)의 창작경향에 대한 비판이 전해주는 것처럼 도시 시민계층을 독자대상으로 하면서 소비성 기능을 지닌 통소소설의 존재를 부정하고자 하는 태도 등등. 제 3장은 50년대 통속소설이 정치권력에 의해 “통제”된 상황을 다루었다. 특히 50년대 이래 점차 완비되어가던 출판법규의 제정, 문학 간행물과 서적 출판발행제도의 확립이 어떤 방식으로 통속소설 존재의 기본적 물적 조건을 동요시켰고, 이를 통해 근본적이고 은폐된 방식으로 통속소설의 유통과 발전을 유효하게 억제했는가의 문제를 토론하였다. 이밖에, 통속소설(이는 단순히 연애소설, 무협소설, 탐정소설을 주요 유형으로 하는 통속소설뿐만 아니라, 해방구에서 발전해온 “새로운 통속소설”도 포함한다)과 당시의 주류(主流) 문학과의 등급관계를 토론하였다. 주목할 점은 당시 “원앙-호접파(鴛鴦-胡蝶派)”에서 발전한 통속소설과 해방구의 통속소설이라는 서로 다른 유형의 통속소설 작가가 신분, 존재방식의 측면에서유사하게 모두 “낮은” 지위에 속해 있었고, 각각 서로 다른 정도의 “주변화” 현상을 경험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대문학(當代文學, 사회주의문학)이 표방한 문학 목표로부터 살펴보든, 혹은 당시 존재했었던 방대한 수량의 독자군의 각도로 보든, 당시에 통속소설이라는 문학 “유형(類型)”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혹은 완전히 버림받을 수는 없었다. 이러한 “유형”이 포함하는 일정한 “요소(要素)”는 당시 문학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써, 적잖은 소설 텍스트에 흡수되었고, 심지어 일종의 “대체 유형”이라고 부를만한 통속소설의 텍스트가 출현하기까지 하였다. 제 4장에서 주요하게 다룬 것은 이러한 “요소”와 기존 현실주의 문학텍스트와의 상호 융합과 “대체”유형이 출현한 여러 가지 상황 및 이러한 상황이 통속소설의 예술성과 문학사 위상 정립에 미친 영향이다. “당대(當代)”, 통속소설, 문학의 일체화, 아속관계(雅俗關係), 신형통속소설, 대체 유형 本論文主要時論通俗小說在 50-70 年代大陸中國文學中的處境. "五四"新文化運動和"文學革命"所催生的"新文學", 在很長時間里是把淸末民初滋生繁榮的通俗小說作爲對立面的. 在 20世紀的 20-40 年代, 新文學陣營對通俗小說的批判持續不斷. 不過, 在抗戰開始前 40年代, 由于特殊的社會文化情勢, 以及文學自身發展遇到的問題, 新文學與通俗文學(通俗小說)之間對立出現某種程度的緩和, 部分作品之間的相互滲透也表現得明顯起來. 同時, 在中共控制的根据地和解放區, 又誕生了以趙樹理爲代表的新型的"通俗小說". 在 40 年代後期開始建構"新的人民文學"的轉折中, 如何對待這些不同文學"成分", 處理它們之間的關係, 成爲重要問題之一. 本論文嘗試對這些問題, 對當時發生的一些重要現象, 事件, 以及俗小說在 50-70 年代發生的"流變", 做出初步的描述, 以期從"雅", "俗"關係的方面, 來把握當時文學這一時期的特質與面貌. 結論部分, 討論 80 年代以來有關通俗小說硏究的狀況, 說明本論文關注這一問題的原因, 和試圖解決的問題, 以及硏究選擇的視角, 方法. 第一章主要討論通俗小說在 40 年代的情況. 一方面, 在抗戰中通俗小說出現趨于"高雅", 重視文學社會參與意識與功能的"新文學"化傾向, 另一方面, "新文學"陣營對通俗文學的對立, 批判姿態也有所緩解. 論文通過 40 年代"張恨水道路"的這一具有典型意義的个案, 描述通俗文學和新文學之間在 40 年代出現的一種新的關係. 第二章考察 40-50 年代文學轉折期, 通俗小說在"當代"的可能性的種種探素. 對于逐漸取得文學主導權的左翼文學界來說, 由于政治, 社會的原人格外重視大衆文學的實踐, 因而在 40 年代後期和 50 年代, 在探素多種與通俗小說有關的大衆文藝實踐的方案中出現諸多的矛盾, 衝突. 這包括對解放區"新型通俗小說"作爲理想大衆文學藍圖的肯定; 40 年代後期在香港展開的有關"方言文學"和小說《蝦球傳》的討論; 1949 年《文藝報》主持者試圖改造"舊的連載, 章回小說"以納入當代文學組成部分的設想; "可不可以寫小資産階級"討論和對蕭也牧創作傾向批判所傳遞的否定以城市市民階層爲讀者對象, 具有消費型功能的通俗小說存在的信息; 等等. 第三章討論 50 年代通俗小說被"規訓"的情況, 特別是 50 年代逐漸完善的出版法規的制定, 與文學刊物, 書籍出版發行制度的確立, 如何動搖通俗小說存在的基本的物質條件, 以根本的, 隱蔽的方式有效的制約通俗小說在當代的發展. 第一章還討論了通俗小說(不僅是以言情, 武俠, 偵探爲主要類型的通俗小說, 也包括解放區發展起來的"新型通俗小說")在五六十年代的處境. 同時, 也考察了不同類型的通俗小說作者在這一時期身分, 存在方式的變化及不同程度的邊綠化現象. 但是, 不管從當代文學所要承担的任務, 還是從存在着數量龐大的讀者群的角度看, 通俗小說這一文學"類型"不可能完全消失或完全被放棄. 這一"類型"的某些"元素", 作爲重要的構造成分, 被吸納不少小說文本之中, 甚至出現某種可被稱爲通俗小說的"替代類型"的文本. 第四章主要考察的是這種"元素"融合和"代替性"類型出現的諸種情況, 和這一情況對通俗小說藝術成規, 文學史定位産生的影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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